한국이 장기 저성장으로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한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기업 구조조정과 서비스업 규제개혁, 노동시장 구조개혁 등을 서둘러야 한다고 국제통화기금(IMF)이 지적했다.
IMF는 최근 내놓은 ‘한국이 직면한 도전-일본의 경험으로부터 교훈’ 조사보고서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빠른 고령화, 인구 감소 전망, 잠재성장률의 극적인 하락 등 한국은 일본의 20년 전과 유사하다”고 밝혔다. IMF 조사 보고서는 IMF의 대표 의견은 아니지만 한국의 상황을 해외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1990년대 초반 주식, 부동산 버블이 꺼지며 경제성장률이 둔화했지만 부실채권 처리를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터질 때까지 미루고 있다 신용경색에 빠지며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IT 버블이 터진 2002∼2003년에야 기업과 금융권 구조조정에 착수했지만 다시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충격을 받았다. 이후 2012년 아베 신조 정권 출범 후 단행된 아베노믹스에도 아직 예전의 성장세나 물가상승률 목표치 2%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보고서는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이 100%로 과거 일본보다 양호하지만 좀비기업 정리 지연으로 금융사 연쇄위기가 발생했던 일본 사례에 비추어 선제적인 부실채권 정리 및 기업 재무건전성 강화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특히 조선업, 해운업, 석유화학업계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IMF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도 지적했다. 비정규직의 대표 격인 한국의 임시직 노동자의 비율은 2014년 2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평균의 2배에 달했다. 일본의 이 비율은 1990년대 초반 20%대에서 40%대까지 확대됐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성과에 대한 보상이 거의 없고, 자기발전에 투자하지 않기 때문에 노동시장의 분열은 생산성에 타격을 줬다. 전체적으로 보면 노동시장의 분열은 노동계층을 이분화해 불평등을 확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서비스업 규제개혁도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IMF는 한국의 “고차원 서비스업의 경우 규제가 과도하다”며 “철도, 가스, 전력 등 인프라 분야에서 2025년까지 OECD 상위 3개국 수준으로 규제를 완화하면 잠재성장률을 구성하는 3요소(노동, 자본, 총요소생산성) 중 총요소생산성(TFP) 증가율이 매년 0.25%포인트씩 확대된다고 분석했다. 2015년 2.9%(IMF 추정)로 떨어진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가계부채의 경우 현재 60%인 총부채상환비율(DTI)를 점진적으로 30~50%로 강화하고 집단대출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고령화가 물가상승률에 미치는 영향을 회귀분석한 결과 앞으로 5년간 고령화는 한국의 물가상승률을 0.3%포인트 끌어내리는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IMF는 내다봤다.
IMF는 한국의 탄탄한 재정상황을 봤을 때 한국은 재정정책을 통해 기업구조조정과 구조개혁을 장려하고, 단기적인 역효과를 완충할 여력이 충분한 것으로 평가했다.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