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조작된 도시’는 줄거리나 영화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FPS 게임 속 장면만 본다면 게임 속 가상현실과 실제 현실을 오가는 그런 류의 영화가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 쉬운 작품이다. 사실 이렇게 게임 속 가상현실과 실제 현실을 오간다는 설정을 내세운 영화라고 하면 가장 먼저 장선우 감독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 떠오르니 이는 썩 영리한 선택은 아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연 ‘조작된 도시’의 이야기는 오히려 게임 속 가상현실과 현실의 상관관계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오프닝에 등장하는 FPS 액션은 주인공 권유(지창욱 분)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장치이자, 이후 그를 도와주는 팀원들과의 관계를 맺어주는 연결고리로 작용할 뿐 가상현실이 무리하게 현실에 개입하는 설정 같은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작된 도시’는 오프닝의 FPS 액션 장면이 끝난 순간부터 몰입감 있게 게임 속 세계에서는 영웅이지만 현실세계에서는 평범한 백수에 불과한 권유(지창욱 분)가 완벽하게 조작된 증거로 인해 살인용의자가 되어 체포되고, 형식적인 재판을 거쳐 무기징역으로 교도소에 수감되는 장면을 숨가쁘게 보여주며 거침없이 내달린다. 그러니까 ‘조작된 도시’는 ‘게임영화’가 아니라 ‘게임을 소재로 한 영화’였을 뿐이다.
이후 ‘조작된 도시’는 한국에서 보기 드문 정통 케이퍼 무비의 스타일을 스크린 위에 구현해낸다. 지창욱이 극적으로 탈옥에 성공하는 모습부터 시작해, 게임 속에서는 민폐 캐릭터지만 현실세계에서는 천재 해커인 여울(심은경 분)을 비롯한 게임 속 팀원들의 도움으로 진실을 찾아나가는 모습이 펼쳐진다.
이 과정에서 ‘조작된 도시’는 다양한 액션을 구사해내며 현란한 스타일을 과시한다. 실제 충무로의 유명 특수효과팀인 데몰리션의 막내 데몰리션(안재홍 분)이 만들어내는 특수효과로 차량을 폭발시키고, 굴러가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낡고 퍼진 국민차 티코에 터보엔진을 다는 마개조를 해 후진으로 시속 100km를 뽑아내거나 레카차들과 싸우는 신들린 카체이싱 액션을 펼쳐내기도 한다.
백수가 되기 이전에는 전직 태권도 국가대표 출신이었다는 권유(지창욱 분)가 맨 몸으로 펼치는 액션신도 상당히 정교하고, 교도소의 실권을 장악한 마덕수(김상호 분)의 일당과 싸우는 모습도 상당히 흥미롭고 충격적으로 묘사된다.
현란한 액션이 눈을 사로잡는 가운데 펼쳐지는 악역들의 이야기도 흥미롭게 전개된다. CCTV 등 사회 저변에 깔린 정보들을 취합해 살인사건을 조작해내는 이야기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한 ‘빅 브라더’ 이후 꾸준히 회자되는 주제지만, ‘조작된 도시’는 여기에 오정세라는 매력적인 악역 캐릭터의 존재를 입히고 다소 ‘오버 테크놀로지’로 보일 정도로 화려한 시각적 효과를 더해 강한 주제의식을 부여한다. 이는 다시 게임 속 팀원들과 사건의 진실을 밝혀나가는 지창욱의 이야기와 연결되며 시각적인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낸다.
물론 이 과정에서 케이퍼 무비의 전형적인 공식을 충실히 따라가는 전개에 대한 아쉬움은 분명 남는다. 지창욱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모인 팀원들의 능력치가 게임 속 전개처럼 가려운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게끔 설정된 점이나, 사건의 해결방식이 전형적이라는 점은 영화 속 짜릿함을 다소 반감시키는 요인이다. 또한 ‘권법’을 연출하려다 포기한 박광현 감독의 의욕이 앞서는 몇몇 액션신도 전체적인 액션구성의 통일성을 떨어트린다.
‘조작된 도시’는 분명 이야기나 캐릭터 설정에서 틀에 짜맞춘 전형성이 엿보이고, 곳곳에 허술함도 보이지만 영화 자체는 그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126분이라는 상영시간 동안 눈 돌릴 겨를 없이 거침없이 내달리는 힘이 있다. 애초에 웰메이드한 블록버스터 영화가 아니라 짜릿한 ‘오락영화’를 추구했다는 박광현 감독의 말처럼 ‘조작된 도시’는 상영시간 내내 온 몸을 휘감는 액션의 쾌감 하나는 진품이라 자부할 수 있는 영화다. 2월 9일 개봉.
/서경스타 원호성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