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난에 몰린 국내 1호 시내면세점인 동화면세점이 호텔신라에 상환해야 할 700억원대의 자금을 둘러싸고 파열음을 내고 있다. 최대주주의 현금상환 능력이 없다는 게 동화 측 입장이지만 국내 면세업계가 봉착한 복잡한 실정을 드러내는 속내가 읽히면서도 이해하기 힘든 SOS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사건의 발단은 동화면세점의 최대주주인 김기병 롯데관광개발(롯데관광) 회장이 지난 2013년 5월 용산 프로젝트 투자 실패로 위기에 처한 롯데관광개발을 지원하고자 호텔신라에 지분 19.9%(35만8,200주)를 매각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김 회장은 동화면세점 보유 주식을 600억원에 매각하면서 3년 뒤 되사는 풋옵션 계약을 체결했고 담보물로 주식 30.2%(54만3,600주)를 설정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김 회장이 이자를 포함한 715억원의 주식 재구매 의무를 이행하지 않기로 하면서 담보물인 주식이 호텔신라로 넘어가게 됐다. 김 회장이 최종 상환에 실패할 경우 호텔신라는 지분 50.1%를 확보한 동화면세점의 최대주주가 되고 김 회장과 특수관계인의 지분은 49.9%로 줄어든다.
문제는 양측의 계약 체결 이후 중소·중견 면세점에 대한 지원이 강화되고 관련법이 정비되며 이 지분이 대기업인 호텔신라로서는 휴지 조각이나 다름없게 됐다는 점이다. 2014년 초 신설된 관세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중소·중견 면세점은 △3년 평균 매출 5,000억원 이하 △총자산 1조원 이하 △자산 1조원 이상 기업의 30% 이상 투자 및 최대투자 금지 등의 요건이 요구된다.
44년 역사의 동화면세점은 2015년 말 특허권 재심사를 앞두고 중소·중견 면세점으로 공식 변신, 특허권이 자동 연장되며 연말 롯데 월드타워점과 워커힐면세점의 탈락을 낳았던 면세 대란을 비켜갔다. 대기업인 호텔신라가 중소·중견 면세점인 동화면세점의 지분을 30% 이상 소유하거나 최대주주가 될 수 없게 된 것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호텔신라가 동화면세점의 최대주주가 될 경우 동화면세점에 부여된 중소·중견 특허는 무효로 취소된다.
동화면세점은 “용산 개발 프로젝트와 관련해 2,200억원대 소송이 진행 중이지만 개인이 당장 대량의 현금을 마련하기 어려워 부득이하게 주식을 넘기게 된 것”이라며 “주식매매계약서상 명시된 사항이어서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다급해진 쪽은 되레 채권자인 호텔신라와 관세청이다. 불과 700억원으로 지난해 역대 최대인 3,225억원의 매출을 올린 알짜 시내면세점을 삼킬 기회인 듯 보이지만 현실은 경영권은커녕 투자비도 회수하지 못하고 기업 이미지만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호텔신라는 끝내 채무 변제가 안 될 경우 소송 등 관련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관세청도 난처하기는 마찬가지다. 국내 1호 시내면세점을 둘러싼 갈등을 강 건너 불구경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관세청은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경영권 매각, 특허 반납, 청산 등의 ‘컨틴전시 플랜(위기대응 전략)’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면세점 경쟁이 치열해지고 갈수록 수익 내기가 어려워진 점이 김 회장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는 견해가 크다. 그럼에도 여전히 김 회장의 정확한 의중은 오리무중이다. 채무 변제를 포기한 김 회장이 전후 사정을 몰랐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동화면세점은 “지난해 중기 특허를 얻게 됐지만 시행령 신설 이후 등장한 신규 업체가 아닌 만큼 관세청의 유권해석 여지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사업 포기나 영업중단은 와전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국내 굴지의 여행사인 롯데관광의 최대주주로 보유 지분 43.55%의 시장 가치는 1,500억원대다. 계열사인 동화투자개발은 동화면세점 입점 건물을 포함해 기천억원대의 자산을 갖고 있다. 롯데관광개발은 6,600억원을 들여 제주도에 리조트도 짓고 있다. 일시적인 자금난을 겪을 수는 있겠지만 상환능력은 충분하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면세점업계가 위기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번 채무 변제를 둘러싼 잡음은 ‘위기 아닌 위기’로 보인다”며 “유예 기간이 수개월에 달한다는 입장도 있어 업계가 상반기 내내 파열음에 시달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