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별검사가 수사 착수 이후 처음으로 기간 연장을 화두로 꺼낸 배경에는 최순실 국정농단 수사가 자칫 용두사미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재용→최순실→박근혜’로 이어지는 뇌물 수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크게 흔들렸다. 관련자 진술과 증거자료 확보에도 불구하고 혐의를 입증할 확실한 물증을 찾지 못해 제자리걸음하고 있던 터라 수사가 미완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작용한 것이다.
수사의 한 축인 최순실(61)씨도 묵비권을 행사하는 등 비협조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청와대 압수수색은 ‘보안시설’을 내건 청와대 측 반대에 부딪혀 시작조차 못했다. 청와대가 제출하는 자료만 갖고 와야 할 처지에 놓였다.
수사기간 연장을 처음 언급한 게 그만큼 핵심수사 진행이 더디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특검은 수사 초기만 해도 “기간 연장이 사실상 쉽지 않으리라고 보고 1차 수사 기한인 오는 28일까지 수사 결과는 내놓겠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이날 “현재 수사 진행 정도가 조금 부족하다고 판단된다”며 말을 바꿨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법원이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 발부를 거부한 지 보름 넘게 지났으나 특검은 여전히 재청구 여부조차 결정하지 못했다”며 “박근혜 대통령 수사에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특검이 수사기간 연장 카드를 고려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특검법 2조는 최씨 일가 국정농단 의혹과 미르·K스포츠재단 관련 의혹,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관련 의혹 등 총 14개에 ‘수사 중 인지한 사건’까지 총 15개를 수사 대상으로 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수사는 정유라씨 이대 입시 비리 의혹과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 정도다. 그나마 순조로운 수사로 의료농단 관련 의혹을 추가해도 여전히 갈 길은 멀다.
하지만 수사기간 연장으로 최씨 국정농단 수사를 마무리 짓겠다는 특검의 계획이 제대로 이행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결정권을 쥐고 있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측이 “요청이 들어오면 그때 검토해보겠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으나 결국에는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어서다. 법조계 일각에서 특검이 청와대 압수수색 협조 요청에 이어 기간 연장 카드를 꺼낸 게 황 대행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또 다른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황 대행이 청와대 압수수색 협조 요청을 사실상 거부한 상황에서 특검이 수사기간 연장을 언급한 데는 또 한 번 정치적 압박을 가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고 말했다. 황 대행이 연장 요청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인데 이 같은 상황에서 여론과 정치권의 개입을 유도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특검의 수사기간이 연장되더라도 대통령 탄핵심판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측면에서 다른 의도가 숨어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특검 활동기간 연장 논의 전부터 국회 측은 재판 지연을 이유로 특검의 수사 결과를 탄핵재판의 증거로 신청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이미 명확히 했다. 탄핵심판은 국회 소추위원 측이 제시한 사실관계에 기초해 재판부가 채택한 증거로 탄핵 여부를 판단하는 구조다. 법리상 특검의 수사기록을 재판부가 증거로 채택하지 않는 이상 탄핵심리 일정이나 결론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재판부는 탄핵 사유를 5개의 쟁점으로 압축하는 과정에서 법률 위반에 해당하는 사유를 하나의 쟁점으로 묶기도 했다. 쟁점 5개 가운데 4개가 헌법 위반 사유인 만큼 탄핵 인용 여부를 가를 사유는 법률 위배가 아닌 헌법 위배에 있다는 것이 법조계의 관측이다. 다만 재판부는 특검의 시각에서 정리한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못하고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게 됐다. 사실관계를 두고 내린 헌재의 법적 평가가 특검과 일맥상통한다면 재판관 개개인이 탄핵심판의 공정성을 확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헌재는 이번 심판 결과가 헌정사에서 지니는 의미를 염두에 두고 있다.
/안현덕·김흥록·진동영기자 alway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