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괜찮아, 너만 XX인게 아니란다” 대학생 최지현(26)씨는 퇴근길 만원 지하철에 끼여 스마트폰을 보던 중 웃음이 새어나왔다. 화면을 꽉 채운 한 장짜리 그림 속에 담긴 사이다 같은 한 마디 때문.
연애 중인 직장인 한현지(25)씨도 요즘 신혼부부 에피소드를 담은 한 장짜리 그림을 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강씨는 “커플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에피소드를 위주로 핵심만 한 장에 볼 수 있어 항상 공유하게 된다.”고 말했다.
위의 사례에 등장하는 한장 짜리 그림과 같은 콘텐츠들을 일컬어 ‘스낵컬처(Snack Culture)’ 콘텐츠라고 부른다. 스낵컬처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스낵처럼, 출퇴근 시간이나 점심시간 등에 간편하게 문화생활을 즐기는 라이프스타일 또는 문화 트렌드를 뜻한다.
최근 한국인터넷진흥원이 공개한 ‘2016 모바일 인터넷 이용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들은 하루 평균 3시간 44분을 스마트폰과 함께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응답자의 89.1%는 동영상, 웹툰, 전자책 등을 즐기기 위해 스마트폰을 사용한다고 응답했다. 이처럼 스마트기기가 대중화되고 콘텐츠 역시 모바일 기기에 맞춰 발전하면서 스낵컬처는 계속 진화하는 양상이다.
지난 2015년 KT경제경영연구소와 20대 전문 연구기관 ‘대학내일 20대 연구소’에서 발표한 ‘20·30대 모바일 콘텐츠 통계’에 따르면, 20·30대 모바일 사용자들이 생각하는 콘텐츠의 적정 길이는 ‘최대 10장의 그림, 43.1초 영상’이었다. 쉽게 말해 20·30대 이용자들이 ‘짧은’ 콘텐츠를 원하고 있다는 것. 또한 이들이 소비하는 동영상, 사진, 그림, 텍스트 등으로 대표되는 모바일 콘텐츠들의 완독률은 평균 50% 이하로 나타났다. 그만큼 20·30 세대들이 긴 콘텐츠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젊은이들의 니즈에 맞춰 최근 급속도로 뜨고 있는 콘텐츠가 바로 ‘짤툰(사진을 의미하는 신조어 ‘짤’과 만화를 뜻하는 ‘cartoon’의 합성어)’이다. 다시 말해 짤툰이란 한 컷짜리 만화로 일종의 삽화 형태로 그린 콘텐츠다. 그렇다면 이 짤툰은 대체 어떻게 생겨난 걸까?
‘3초만에 슥’ 뚝딱 소화할 수 있는 이 짤툰은 놀랍게도 스마트기기가 없었던 과거에도 있었던 콘텐츠다. 신문 등 출판물에 게재되던 만평을 비롯해 199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광수생각’ 등이 짤툰의 시초인 셈. 이후 인터넷 사용이 활성화되고 스마트기기가 발전하면서 스낵컬처 흐름에 따라 다시금 짤툰이 주목받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하루에도 셀 수 없을 만큼 쏟아지는 모바일 콘텐츠들의 홍수 속에서 고작 한 컷짜리 짤툰은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나는 너 너는 나, 생활밀착형 짤툰
20·30대 SNS(사회적 네트워크 관계망 서비스) 사용자들에게 각광받고 있는 짤방. 기존의 웹툰과는 달리 짤툰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몇 가지 특징들이 있다.
우선 짤툰의 작가가 평범한 일반인이라는 점이다. 기존 웹툰의 경우 주로 미술 혹은 애니메이션 전공 출신의 전문성을 갖춘 작가들이 대부분인 반면, 짤툰은 평범한 일반인들이 취미 생활처럼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작가가 곧 일반 대중이다보니 평범한 일상 속의 특정 순간 혹은 상황묘사가 더욱더 직설적이고 사실적이다. 문화사회연구소의 김성윤 교수는 “(짤툰은) 웹툰의 서사가 파괴된 모습을 보이지만 일상성을 체현하는 특성을 갖고 있어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고 덧붙였다.
둘째, 정해진 스토리나 주제가 아닌 일상 속 에피소드에서 느끼는 ‘감정’을 중점적으로 한 컷에 담아낸다. 한 컷 안에 육하원칙에 따른 구체적인 설명이 없기 때문에 콘텐츠 소비자 입장에선 언제 어느 때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석할 수 있고, 그에 따라 공감의 폭이 넓어졌다. 한창완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 교수는 “(짤툰은)스토리가 없기 때문에 작가 입장에서 내용 구성에 대한 부담이 없어 일반인 작가가 늘어나는 추세”라며 “기승전결 틀에서 벗어나 ‘감정’에 집중하다 보니 사람들이 공감하는 특정 지점만 잘 간파하면 대중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결국, 20·30대 사용자들은 전문가의 완벽한 작품보다 아마추어의 빈틈 있는 콘텐츠의 손을 들어준 셈.
무엇보다 이러한 짤툰의 성공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바로 ‘인스타그램’이다. 대부분 짤툰 작가들은 수많은 SNS 플랫폼 중에서도 인스타그램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이는 게시물 당 한 장의 사진을 올릴 수 있는 인스타그램(인스턴트+텔레그램)만의 독특한 특성이 한 컷짜리 짤툰에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인스타그램만의 ‘둘러보기’ 등 공유 기능이 탄탄하게 뒷받침을 해주고 있어 짤툰이 퍼져나가는 데 효과적이다. ‘둘러보기’란, 자신이 팔로잉하는 계정이 아니더라도 최근 인기있는 게시물이나 사용자가 좋아할 만한 추천 콘텐츠를 모아주는 기능이다. 따라서 평소 ‘짤툰’이나 그림·일러스트 등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 노출될 확률이 높다. 특히 인스타그램은 ‘해시 태그’ 기능이 활성화돼 있어, 이 콘텐츠를 볼 의지가 전혀 없었던 사용자들에게도 노출이 된다는 강점이 있다.
쉽게 공유하고 쉽게 소비하는 짤툰, 하지만 ‘불펌’은 안된다?
SNS 공간에서 3초 만에 소비되고 0.01초만에 공유되는 짤툰의 시대. 하지만 ‘좋아요 혹은 공유’라는 버튼만으로 빠르게 확산 되고 쉽게 소비하는 콘텐츠로 인식되다 보니 짤툰 작가들과 독자들 사이에서 ‘저작권 갈등’이 최근 잦아졌다. 대학생 이은수(가명, 23세)씨는 “홍보 대행사 인턴 근무 당시, 평소 즐겨보는 한 짤툰을 공유해 한 업체 제품을 홍보했다가 소송당할 뻔한 적이 있었다”며 “쉽게 공유할 수 있는 SNS 특성 때문에 (짤툰에 대한) 작품 저작권 또한 간과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취미로 짤툰을 그리고 있는 몇몇 일반인 작가들의 경우 “누군가가 불펌(불법으로 퍼가기의 줄임말)하더라도 많이 공유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저작권 문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렇다 보니 콘텐츠 소비자들 입장에선 짤툰의 저작권에 대해 느슨하게 생각하게 되는 셈이다.
반면 짤툰으로 수익을 얻고 있는 몇몇 전문 작가들은 큰 고충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사이다’ 같은 짤툰으로 직장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 양경수씨는 “(짤툰이) 쉽게 소비되는 만큼 쉽게 사용하는 몇몇 독자(혹은 기업)들이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양 씨는 “최근 들어 작가의 허락 없이 상업적인 목적으로 짤툰을 무단 사용하는 업체들이 있는데, 짤툰도 하나의 창작물로써 저작권을 존중 해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윤선희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기기와 플랫폼에 맞게 짧고 가볍게 소비될만한 콘텐츠들이 늘어났지만 소비자들의 ‘저작권법‘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부족한 상태다.”라며 “디지털 콘텐츠물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나 환경도 물론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우선적으로는 사용자 스스로가 디지털 콘텐츠 저작권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가람기자 최재서 인턴기자 garam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