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고용창출을 위해 법인세 인하에 나서고 있는데 우리 대선주자들은 거꾸로 움직이고 있다.
‘대기업=처벌 대상’이라는 프레임에 걸려 글로벌 경제가 돌아가는 흐름을 놓치고 있다. 성장동력을 잃고 있는 기업들은 한숨이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를 비롯해 해외 각국이 일찌감치 기업의 세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전환한 가운데 한국만 ‘기업 옥죄기’에 급급할 경우 투자·고용 여력이 크게 위축되면서 우리 기업이 글로벌 무대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서울경제신문이 10일 여야 주요 대권주자들의 공약 재원 마련 방안을 살펴본 결과 증세를 약속하지 않은 후보는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야 모든 주자 “법인세 인상” 공언=우선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고소득층 소득세, 상속·증여세, 부동산보유세, 법인세 실효세율 순서로 증세를 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기본소득 지급 등 복지 확대를 위해 과세표준 500억원 초과구간에 적용되는 법인세율을 22%에서 30%로 무려 8%포인트나 올리고 국토보유세도 신설하겠다고 공언했다.
여권의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도 법인세 최고세율을 이명박 정부의 감세 이전 수준(25%)으로 올리고 ‘중(中)부담-중(中)복지’를 실현하기 위해 소득세·재산세 인상도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안희정 충남지사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남경필 경기지사 등은 문 전 대표처럼 법인세 명목세율 인상에는 신중한 대신 비과세·감면 축소 등을 통해 실효세율부터 먼저 높이자고 주장한다.
이처럼 사실상 모든 주자가 증세를 위한 주요 타깃으로 기업들을 정조준하고 나선 것은 소득세나 간접세에 비해 법인세가 가장 조세저항이 작은 분야이기 때문이다. 포퓰리즘 공약 실현을 위한 방안조차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적 접근의 구태를 못 벗고 있는 셈이다.
송원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은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사람이 아닌 법인이 내는 법인세는 정치인들이 가장 만만하게 꺼낼 수 있는 카드”라며 “법인세의 급격한 인상은 시설 및 연구개발(R&D) 투자와 추가 고용 여력이 동시에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계 각국 감세 기조…“한국 기업 경쟁력 약화 불 보듯” 우려=재계에서는 비과세·감면을 점진적으로 축소하는 정책의 결과로 실효세율이 점차 오르고 있는 가운데 차기 정부가 추가로 세 부담을 지우면 급변하는 글로벌 경영환경에서 우리 기업의 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실제로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13년 16.0%였던 법인세 실효세율은 2014년 16.1%, 2015년에는 16.6%로 상승했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을 비롯한 해외 선진국들은 우리와 대조적으로 일관된 감세 기조 속에서 기업들의 투자 의욕을 북돋워주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국가 중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 법인세율을 낮춘 나라는 18곳이었다. 미국·일본·캐나다·영국 등 주요 선진국들이 모두 법인세 인하 대열에 동참했으며 법인세를 올린 나라는 포르투갈·그리스·칠레 등 재정위기에 직면한 나라들(6곳)뿐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항공 업계 최고경영자(CEO)들과 만난 자리에서 법인세 대폭 인하를 시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