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4차 산업혁명' 승부수

'뉴 ICT 생태계' 조성 위한 행보 가속화<br>4차 산업혁명 주도할 '새 판 짜기' 올인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2017년 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지난해 성장 정체로 위기론이 불거진 국내 이동통신업계 부동의 1위 SK텔레콤이 올해를 도약의 해로 삼고 ‘새 판 짜기’에 돌입했다. 그 중심에는 SK C&C에서 경영능력을 입증한 바 있는 박정호 신임 SK텔레콤 사장이 서 있다. 과연 박 사장 체제의 SK텔레콤은 위기론을 불식하고 업계 1위로서의 면모를 다시금 보여줄 수 있을까?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왼쪽)이 CES 2017 삼성전자 부스에서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 (사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박정호 SK텔레콤 사장(왼쪽)이 CES 2017 삼성전자 부스에서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 (사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실적 자체는 부진했으나 기대 수준에는 부합했다. 반전의 기회는 충분하다.”

증권가의 주요 애널리스트들은 지난해 SK텔레콤 실적을 이렇게 평가했다. 2016년 3분기 기준 SK텔레콤의 매출은 4조2,438억 원이었다. 영업이익은 4,243억 원, 순이익은 3,221억 원을 기록했다. 매출의 경우 이전 분기 대비 0.6%, 전년 동기 대비 0.4% 감소한 수치다. 업계 전문가들은 SK텔레콤의 지난해 전체 매출 역시 다소 아쉬운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갤럭시노트7 발화 사태, 주요 자회사들의 부진이 겹치며 4분기에도 이렇다 할 반전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특히 SK텔레콤은 지난해 사활을 걸고 추진했던 CJ헬로비전 인수합병(M&A)에 실패했다. KT와 LG유플러스는 이른바 ‘반(反) SK텔레콤’ 진영을 형성하며 양사 합병이 통신·방송시장의 독과점과 성장 정체를 가져올 것이라고 반발했다. 결국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7월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M&A에 대해 ‘불허(不許)’ 판정을 내렸다. 당시 공정위는 “이동통신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이 알뜰폰 1위 사업자인 CJ헬로비전을 인수합병하면 시장 지배적 사업자의 독과점이 심화할 것”이라며 불허 이유를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SK텔레콤이 새해 벽두부터 업계 1위의 자존심 회복을 위한 행보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2017년 1월 SK텔레콤의 새로운 수장으로 부임한 박정호 신임 사장의 취임 일성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었다.

SK텔레콤이 구축한 사물인터넷(IoT) 전용망 로라SK텔레콤이 구축한 사물인터넷(IoT) 전용망 로라


취임 일성에 담긴 미래 전략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정보통신산업의 새로운 판을 짜겠다.”

지난 1월 2일 서울 을지로 SK텔레콤 본사에서 열린 시무식에 참석한 박정호 사장은 강한 어조로 SK텔레콤의 향후 청사진을 밝혔다. 이는 곧 박 사장의 취임 일성이기도 했다. 박 사장은 말한다. “모든 것이 연결되고 융합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국경과 영역이 없는 전면적인 글로벌 경쟁이 시작될 것입니다. 우리는 기존 경쟁 패러다임을 넘어 새로운 사업 모델을 혁신해내고, 글로벌 성장을 이뤄낼 수 있는 새로운 판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그룹 내 모든 정보통신(ICT) 역량을 총결집하고 과감한 투자와 글로벌 사업자들과의 협력을 이어나갈 것입니다.”

업계에서는 박정호 사장의 취임 일성이 향후 SK텔레콤의 미래 전략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고 말한다. 장진호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말한다. “박 사장은 SK그룹 내에서 소위 ‘M&A를 통한 기업 경쟁력 제고’에 특화된 승부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미 그룹 내 또 하나의 ICT 회사인 SK C&C를 경영한 경험을 기반으로 통신시장에 대한 이해도 역시 높다고 알려져 있죠. 고착된 이동통신 시장에서 그의 장점을 발휘해 또 다른 먹거리와 성장동력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는 신년사를 통해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박정호 사장은 그동안 SK그룹이 성사시킨 주요 M&A에서 성과를 내왔다. 지난 1989년 선경에 입사한 박 사장은 이후 SK텔레콤 해외사업팀, 사업개발실장, 사업개발 부문장 등을 거쳤다. 또 SK그룹의 한국이동통신 인수, 하이닉스반도체 인수 등 굵직한 M&A에 관여했던 대표적 인물로 손꼽힌다. 특히 이러한 성과를 기반으로 최태원 회장의 비서실장을 역임하며 이른바 ‘최태원 복심’의 대표적 인물로 불리기도 한다. 최 회장은 성장과 하락의 기로에 선 SK텔레콤의 새로운 수장으로 자신의 복심인 박정호 사장을 내세웠다. 그만큼 박 사장의 어깨도 무거울 수밖에 없다.

박정호 사장의 당면과제는 당연히 SK텔레콤의 실적 개선이다. 물론 기존 주력 사업의 경쟁력 강화와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을 위한 투자 및 M&A는 필수다. 하지만 실적 부진이 올해까지 이어진다면 박 사장이 내건 청사진에 다가가려는 시도조차 해보지 못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다행스러운 점은 당장 실적 개선의 문을 열 열쇠가 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SK텔레콤 실적 부진의 원인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확인할 수 있다. 이동통신업계 관계자 A씨는 말한다. “SK텔레콤의 2016년 3분기 실적을 자세히 살펴보면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별도기준 영업이익이 연결기준 영업이익보다 크다는 점이예요. 쉽게 말해 SK텔레콤의 실적은 괜찮았지만 이와 연결된 자회사들의 부진이 전체 실적에 영향을 줬다는 겁니다. 실제로 SK플래닛의 경우 온라인·모바일 커머스 플랫폼인 ‘11번가’ 사업 확대와 마케팅 비용 증가로 큰 폭의 영업손실을 기록하기도 했죠. 다행스러운 점은 당시 투자가 올해부터 수익성 개선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시장을 흔들 만한 변수가 없는 한, 당장의 실적 개선은 현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예상됩니다.”


전문가들의 평가처럼 SK텔레콤 실적 개선이 이뤄진다면 박 사장의 어깨도 한층 가벼워질 수 있다. 이는 곧 박 사장과 SK텔레콤이 내건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의 도약’이라는 과제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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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이 선보인 자동차와 IT 기술이 융합된 커넥티드카 솔루션 ‘T2C’.SK텔레콤이 선보인 자동차와 IT 기술이 융합된 커넥티드카 솔루션 ‘T2C’.


‘3대 차세대 플랫폼’ 구축 드라이브
지난 수년간 이동통신업계를 관통해온 이른바 ‘탈(脫) 통신’ 전략은 SK텔레콤 사업 재편의 핵심 키워드였다. SK텔레콤의 탈 통신 행보는 하성민 전 사장 및 장동현 전 사장 체제에서도 이어졌다. 지난해 SK텔레콤의 사업을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는 ‘플랫폼’과 ‘인공지능’이다. 이 역시 탈 통신 전략과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의 흐름은 박정호 체제에서도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SK텔레콤은 현재 ‘생활가치 플랫폼’, ‘통합 미디어 플랫폼’, ‘사물인터넷(IoT) 서비스 플랫폼’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3대 차세대 플랫폼’을 통해 진정한 플랫폼 사업자로 성장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전략에 발맞춰 다양한 전략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해 SK텔레콤은 자사 고객들만 사용할 수 있었던 국내 1위 모바일 내비게이션 서비스 ‘티맵(T map)’을 전 국민에게 무료 개방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이후 티맵은 3개월 만에 실사용자가 35%나 증가하며 큰 성장세를 기록했다. 티맵의 개방은 단순히 경쟁 통신사 사용자들이 사용할 수 있다는 차원 이상의 또 다른 의미가 숨겨져 있다.

박정호 사장은 SK C&C 사장 재임 시절부터 주요 미래 기술에 큰 관심을 드러내왔다. 사진은 한국IBM과 슈퍼컴퓨터 ‘왓슨’ 기반 인공지능 사업 협력 계약 체결식 모습.박정호 사장은 SK C&C 사장 재임 시절부터 주요 미래 기술에 큰 관심을 드러내왔다. 사진은 한국IBM과 슈퍼컴퓨터 ‘왓슨’ 기반 인공지능 사업 협력 계약 체결식 모습.


통신업계 관계자 B씨는 이렇게 설명한다. “티맵의 개방은 곧 SK텔레콤이 수집할 수 있는 위치정보가 급속도로 증가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다른 통신사 고객들에게도 티맵을 개방하면서 얻을 수 있는 방대한 위치정보를 기반으로 다양한 사업을 더욱 치밀하게 구상하고 실행할 수 있죠. 특히 사물인터넷 플랫폼은 물론 커넥티드 카(Connected Car· 인터넷 및 모바일 통신망과 연결된 자동차), 전기차 사업에는 티맵의 플랫폼화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처럼 티맵 개방은 SK텔레콤이 내세운 3대 차세대 플랫폼 전략 실현의 출발점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AI) 역시 지난해 SK텔레콤의 혁신을 이끈 대표 기술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다. 특히 지난해 9월 국내 이동통신사 중 최초로 선보인 인공지능 음성인식 기기 ‘누구(NUGU)’는 인공지능 대중화 시대를 연 서비스로 주목받았다.

특히 SK텔레콤은 인공지능 비서 서비스 ‘누구’를 단순히 수익창출의 모델로만 보지 않는다. SK텔레콤 관계자는 “당장의 수익 창출보다는 서비스 기반 확대를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며 “스마트폰, IPTV 등 기존 플랫폼뿐 아니라 향후 선보일 커넥티드 카, 소셜봇(Social bot·사람과 사람, 사람과 기계를 연결해 교감할 수 있는 로봇) 등에도 누구의 소프트웨어를 접목시켜 플랫폼 사업의 허브로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호 사장 역시 취임 이후 ‘플랫폼’과 ‘인공지능’ 전략에 기반을 둔 이른바 ‘뉴 ICT 생태계 조성’을 핵심 가치로 삼아 광폭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신년사에서 언급한 ‘새 판 짜기’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SK텔레콤은 이를 위해 향후 3년간 총 11조 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겠다는 승부수를 띄우기도 했다.

SK텔레콤은 인공지능 비서 서비스 ‘누구’ 개발 공모전 개최를 통해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SK텔레콤은 인공지능 비서 서비스 ‘누구’ 개발 공모전 개최를 통해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글로벌 IT 기업들과 협력 강화
최근 SK텔레콤은 글로벌 IT 기업 및 스타트업들과의 뉴 ICT 산업 생태계 조성·육성을 위해 5조 원을 신규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신규 투자는 이종 산업간 융합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인공지능, 자율주행, 사물인터넷 분야에 집중된다. 박 사장은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7에 참석해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등 미래 기술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우리보다 앞선 기업들과 손잡고 빠르게 따라가는 전략을 써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실제로 당시 CES에서 박 사장은 글로벌 그래픽카드 제조기업 ‘엔비디아(Nvidia)’ 와 제휴를 맺고 자율주행차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현재 엔비디아는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테슬라, 벤츠, 아우디 등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와 관련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엔비디아의 플랫폼을 티맵의 위치정보 서비스 및 지도 데이터와 연계시켜 자율주행에 필요한 솔루션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이다.

SK텔레콤이 미래 먹거리로 선정한 사물인터넷 역시 뉴 ICT 생태계 구축의 핵심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SK텔레콤의 사물인터넷 전략에서 이종 기업 간 연계는 필수다. 현재 SK그룹에는 생활가전, 자동차 등 사물인터넷 플랫폼을 활용할 수 있는 사업군이 거의 없다. 이미 사물인터넷에 필요한 통신망 구축에 성공한 만큼, SK텔레콤 망 내에서 소위 ‘뛰어놀 수’ 있는 기기의 확보가 필수다. 박 사장은 CES에서의 바쁜 일정 속에서도 틈틈이 글로벌 기업뿐 아니라 역량 있는 사물인터넷 기반 스타트업 부스도 방문하며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처럼 박 사장은 취임 이후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광폭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기존에 박 사장을 설명하는 키워드 중 하나인 ‘M&A’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는 점이다. 박 사장 역시 “지금은 제대로 된 사업 방향을 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생태계 구축 전략을 세우는 것이 우선”이라며 당장 M&A를 시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무리한 M&A보다는 글로벌 파트너십과 협력체계 구축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로 풀이할 수 있다.

박정호 사장 취임 이후 SK텔레콤은 대규모의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눈에 띄는 대목은 기존 사업총괄 조직을 폐지하고 모든 조직을 CEO 직속으로 재편했다는 점이다. 이는 강력한 변화와 혁신을 이뤄내겠다는 박 사장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과연 박 사장은 2017년을 SK텔레콤 재도약의 해로 만들 수 있을까? 박정호 사장이 가져올 SK텔레콤의 변화에 귀추가 주목된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김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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