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특검, 삼성 수사] '정부와 업무협의'에 까지 칼날...재계 "겁나서 공무원 만나겠나"

법개정·인허가 앞두고 의견교환 일반적인데

물산합병 순환출자해소·금융지주사 추진 등

"특혜" "로비" 엮어 삼성에 포괄적 의혹 제기

" 美처럼 기업의견 전달 시스템 제도화해야"

뇌물공여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4일 새벽 피의자 신분으로 15시간에 걸친 조사를 마친 뒤 굳은 표정으로 특별검사팀 사무실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뇌물공여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4일 새벽 피의자 신분으로 15시간에 걸친 조사를 마친 뒤 굳은 표정으로 특별검사팀 사무실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사실상 해체되는 마당에 앞으로 대기업들이 정부와 업무협의라도 제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공직자들 사이에서도 ‘기업인은 아예 안 만나고 말지’라는 보신주의가 확산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우려됩니다.” (정부 고위관계자)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영장 재청구가 임박한 가운데 새롭게 제기된 각종 의혹들이 삼성과 정부 부처를 동시다발적으로 겨냥하면서 기업·정부 간 소통이 단절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재계와 관가에 확산하고 있다. 로비와 청탁의 대가로 특혜를 준 것이라면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번에 제기된 의혹 중 상당수는 일상적인 기업과 정부의 업무협의 과정을 ‘뇌물죄’의 잣대로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이런 ‘엮기 수사’라면 정부와 기업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사실상 없어진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법 개정이나 새로운 정책 수립, 인허가나 규제 등을 앞두고 기업과 정부가 의견을 주고받는 것은 선진국에서도 일반화된 일인데 이번 특검의 뇌물죄 잣대는 너무 포괄적이라는 것이다. 대통령 탄핵 정국 와중에 삼성 비리에 연루됐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는 관가는 더욱 얼어붙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특검이 결론을 내고 이를 찾아가는 수사를 하는 것처럼 보여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실제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 재청구를 앞두고 특검 안팎에서 제기된 의혹들은 석연찮은 부분이 많다. 반복해서 거론되는 것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따른 순환출자 해소 문제에 공정거래위원회가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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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는 지난 2014년 7월 ‘신규 순환출자 금지 조항’을 담은 공정거래법을 시행했는데 이 법이 처음 적용된 사례가 삼성물산 합병(2015년 7월) 과정이다. 신규 순환출자 금지란 계열사 합병·매각 과정에서 새롭게 순환출자 문제가 발생하거나 강화되면 6개월 내 지분 매각을 통해 이를 해소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삼성물산 합병은 삼성의 순환출자 고리가 ‘단순화’되는 효과가 있어 순환출자가 강화됐다고만 보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이에 따라 삼성은 공정위에 유권해석을 의뢰했고 공정위 역시 기준을 세우기 위해 삼성 측의 의견을 들었다. 핵심은 ‘삼성물산 합병을 통해 늘어난 삼성SDI의 삼성물산 지분을 얼마나 처분해야 하느냐’였다. 특검은 공정위의 내부 검토가 1,400만주→1,000만주→500만주로 바뀐 과정에서 삼성 측의 로비가 작동했다는 의혹을 갖고 있다. 하지만 삼성이라는 기업 입장에서는 주식 처분 규모를 줄여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당연했다. 특히 합병의 성격에 대해서도 법리적 논란이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공정위가 합리적인 ‘절충점’을 찾았다는 게 일반적인 관가의 시각이다. 공정위를 상대로 삼성 고위층의 요청이 있었다고 해서 이를 뇌물죄로 엮기는 무리라는 것이다.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 추진을 위해 금융위원회를 상대로 삼성이 로비를 했다는 의혹도 마찬가지다. 금융위는 삼성 측이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 가능성을 문의해오자 금융제도팀과 보험과 중심의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이 문제를 심도 있게 진단했다. 삼성생명이 국내 보험 업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과 수많은 보험 계약자들에게 미치는 파급 효과를 감안하면 금융위 입장에서 당연한 업무였다. 이 사안과 관련해 금융위는 ‘매우 까다로운 조건을 맞춰야 한다’는 결론을 삼성 측에 전달했고 부담이 커진 삼성은 금융지주회사 설립을 잠정 중단했다. 여기서는 특혜 논란조차 성립하지 않았다.

관가의 분위기도 재계만큼 싸늘하다. 이미 특검의 압수수색을 거치며 쑥대밭이 됐고 청와대에 파견 갔던 공무원들 전체가 도매금으로 엮이고 있다. 차기 정부가 들어서도 당분간은 기업과 정부 간 소통창구가 열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이병태 KAIST 교수는 “기업이 정부에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로비 자체를 불온시하고 있다”며 “미국 등 해외에서는 로비스트법에 따라 기업이 정부나 국회에 정당한 로비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하는데 국내에서는 이 같은 법안이 몇 년째 통과되지 않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어 “기업의 의견을 정부에 투명하게 전달할 수 있는 창구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홍우·김현진기자 seoulbird@sedaily.com

윤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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