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이작가야]<6>‘그’가 살아있었다면 문화계블랙리스트에 올랐을까?

“백 선생님은 예술을 왜 하십니까”

“인생은 싱거운 것입니다. 짭짤하고 재미있게 만들려고 하는 거지요.”


‘예술계의 문제적(?) 반항아. 하지만 모두가 인정한 세계적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라고 불렸던 백남준 작가. 그는 열여덟 나이에 한국 땅을 떠나 세계를 떠돌며 드라마같은 인생을 살아온 비디오 아트계의 선구자다. 살아생전 남겼던 ‘예술이란 원래 사라지는 것’이라는 말처럼 백 작가 본인 역시 이 세상을 예술처럼 살다 사라졌다. 그는 1960년대 플럭서스(Fluxus·국제적인 전위예술 운동을 말함) 운동의 중심에 서서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공연과 전시로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며 수 많은 작품을 남겼다. 특히 그에겐 장난감과도 같았던 ‘TV와 비디오’를 이용해 마치 과학 실험을 하듯 기상천외한 작품과 퍼포먼스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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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작가 탐구 시간인 ‘이작가야’는 지난 5회 방송(▶바로 보기)에 이어 이번 6회 방송에서도 백남준 작가가 한국 미술사에 남긴 업적들과 함께 그의 러브스토리를 담았다.



백남준 작가는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평소 생활에서도 늘 직설적이고 도발적인 언행을 보여왔다. 일례로 1998년 미국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백남준 작가를 백악관으로 초청해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가 있었다. 그 당시는 클린턴 대통령이 백악관 여직원이었던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섹스 스캔들로 고역을 치를 때였다. 백남준 작가가 클린턴 대통령과 악수를 하려는 순간 바지가 벗겨지는 사고(?)가 발생하고 만다. 이에 대해 백남준은 즉각 ‘실수였다’라고 해명했지만 일각에선 클린턴 대통령의 성 추문을 풍자하려 했던 그만의 ‘해학’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 사례로 꼽기도 한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았던 백남준 작가의 파란만장한 인생기. 만약 그가 지금 살아있었다면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지시 아래 정부기관에서 작성했다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1순위에 오르지 않았을까. 안 보면 손해일 정도(?)로 재미난 백남준 작가의 일화들이 궁금하다면 이번 6회 방송도 사수하시길!

정가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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