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기업

'정치'에 발목 잡힌 초대형 M&A

"일자리 보호" 英 정치권 압박에

식료품업체 크래프트하인즈

유니레버 인수제안 공식 철회

자동차업체 PSA의 오펠 인수도

英·獨 정치권 반발에 부딪혀

‘일자리 지키기’에 사활을 건 유럽 정치권의 압박에 대형 인수합병(M&A) 협상이 잇따라 삐걱거리고 있다. 프랑스·독일 등 주요국이 줄줄이 선거를 앞둔 올해는 정치가 M&A의 발목을 잡는 현상이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 식료품 업체 크래프트하인즈는 19일(현지시간) 영국·네덜란드 합작 생활용품 업체 유니레버를 1,430억달러(약 165조원)에 인수하려던 제안을 공식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크래프트하인즈는 17일 유니레버 인수 제안을 일차적으로 거부당했지만 협상을 계속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영국 정치권과 여론이 크래프트하인즈의 유니레버 인수 시도에 거부감을 드러내면서 협상이 돌연 중단됐다. 양사의 거래가 완료되면 영국 전역에서 7,500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는 유니레버가 일자리 축소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크래프트하인즈의 전신인 크래프트푸즈는 지난 2010년 영국 초콜릿 회사 캐드버리를 인수하며 공장을 유지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인수 완료 후 이를 어긴 전적이 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지난해 7월 연설에서 이 사례를 콕 집어 지목하며 “주요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영국 기업 인수협상에) 개입할 권한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푸조·시트로엥 등의 브랜드를 보유한 프랑스 자동차 업체 PSA그룹도 미국 자동차 업체 제너럴모터스(GM)의 유럽 사업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정치권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GM은 독일과 영국에 각각 오펠(Opel)과 복스홀(Vauxhall)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영국 정치권은 두 회사 간 협상 개시에 다급하게 움직이고 있다. 메이 총리는 직접 카를로스 타바레스 PSA 최고경영자(CEO)와 만나 복스홀 공장의 고용을 보장하라고 요청할 예정이다. 그의 ‘하드 브렉시트(유럽연합 단일시장 및 관세동맹 탈퇴)’ 방침이 자동차 산업의 일자리를 없앴다는 정치적 비판을 피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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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9월 총선을 앞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일자리 불안이 정치 악재가 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뛰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인들의 일자리와 독일 공장을 지키기 위해 어떤 일이라도 할 것”이라며 이번주 자문단을 구성하고 오펠 매각안을 검토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PSA그룹의 오펠 인수는 4월 대선 1차 투표를 앞둔 프랑스에서도 정치권의 거센 개입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 미셸 사팽 프랑스 경제재무장관은 브리기테 치프리스 독일 경제장관과 23일 만나 이번 인수건이 경제에 미칠 파장을 논의하기로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프랑스 정부는 푸조 지분 14%를 들고 있다”며 “유세과정에서 끊임없이 프랑스의 일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마린 르펜 국민전선 대표도 변수”라고 설명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정황 때문에 PSA그룹과 GM 간 협상이 결국 깨질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데이비드 베일리 애스턴비즈니스스쿨 교수는 BBC에 “인수가 성사될 경우 (오펠의) 공장폐쇄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영국 정부는 어느 시점이 된다면 PSA와의 협상을 중단해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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