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지금도 짝사랑

정희성 作



사람을 사랑하면

임금은 못 되어도


가객歌客은 된다.

사람을 몹시 사랑하면

천지간에 딱 한 사랑이면

시인詩人은 못 되어도

저 거리만큼의 햇살은 된다,

가까이 못 가고

그만큼 떨어져

그대 뒷덜미 쪽으로

간신히 기울다 가는

가을 저녁볕이여!

내 젊은 날 먹먹한 시절의

깊은 눈이여!


사람을 사랑한다면 세습 왕조의 눈먼 임금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설령 서툰 가객이 되어 남의 심금 울리지 못하더라도 제 슬픔이야 종일토록 노래할 수 있지 않겠는가? 천지간에 딱 한 사랑이면 시인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만인을 사랑하겠노라 장담하는 이는 아무도 사랑하지 못한다는 자백이 아니겠는가? 겨우 상대 뒷덜미를 맴돌다 가는 햇살 같은 짝사랑이더라도 그 목덜미에 온기를 남기지 않겠는가? 알지 못하는 사랑이 우리를 받쳐주지 않던가?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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