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15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서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 아우디는 좀 특별한 이벤트를 열었다. 잭이라고 이름 붙은 ‘A7’ 자율 주행 콘셉트카는 팰로앨토에서 CES가 열리는 라스베이거스까지 900㎞ 구간을 운전자 개입 없이 완전 자율주행으로 운행에 성공했다. 자율주행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CES에서는 메르세데스벤츠 역시 완전 자율주행차 ‘F 015 럭셔리 인 모션’을 공개했다.
# 올해 1월 라스베이거스에서는 현대자동차의 아이오닉EV 자율주행차가 야간 주행에 성공했다. 네온사인이 많은 라스베이거스 시내 4.3㎞를 운전자 간섭 없이 주행한 것이다. 현대차와 국내 자동차 산업에는 하나의 이정표였지만 이미 2년 전 아우디가 보여준 것과 비교하면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국내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은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왔다고 평가받는다. 가솔린·디젤·하이브리드·플러그인하이브리드·전기차에 수소차까지 양산하고 세계 5위 판매량을 자랑하는 자동차 업체를 보유한 몇 안 되는 국가다. 하지만 최근 자율주행차 등 미래 자동차 산업으로 가는 변곡점에서 적신호가 들어오고 있다. 상대적으로 더딘 발전 속도는 물론 경쟁사를 압도하지 못하는 기술력이 문제로 지적된다. 기술 발전을 이끌지 못하는 각종 규제나 국산차에 대한 반기업정서는 미래차 시대로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국내 자동차 산업을 대표하는 현대·기아차는 2000년도 초반부터 자율주행차 1~2단계에 해당하는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개발에 착수하는 등 관련 기술이 상대적으로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자율주행차 개발은 해외 주요 브랜드에 뒤처지고 있다. 이유는 적은 연구개발(R&D) 투자다. 현대차의 지난해 R&D 비용은 2조원 전후로 파악된다. 기아차까지 더하더라도 4조원에 못 미친다. 지난해 도요타는 1조800억엔(약 11조758억원), 폭스바겐은 136억유로(약 16조9,300억원)를 R&D에 투자했다. 현대차보다 판매량은 20% 정도 많지만 투자액은 2배 이상 많은 것이다.
기술 발전을 이끌지 못하는 규제도 문제로 지적된다. 구글의 자율주행차 개발 자회사인 웨이모는 자율주행차인 ‘퍼시픽카’를 최근 새롭게 선보였다. 자율주행차는 주행거리가 많을수록 기술 완성도가 높아진다. 자율주행차는 주변 지도나 사물 등에 대한 빅데이터를 수집하고 가공하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2014년부터 시작된 웨이모 자율주행차의 주행거리는 250만마일(약 400만㎞)을 넘어섰다. 연방정부에서 법을 만들기 전 캘리포니아 주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나서 자율주행차 운행 허가를 내준 것이 비결이다. 국내 포털 네이버의 자율주행 자회사인 네이버랩스는 이달 20일 국토교통부로부터 자율주행 임시 허가를 받았다. 당초 네이버로 허가를 받았다가 자회사 네이버랩스가 연구의 주축이 되면서 허가를 다시 받는 데 3주 이상이 걸렸다.
국토부는 자율주행차가 임시운행허가만 받으면 전국 어디서나 달릴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놓은 상태다. 이를 통해 전국에 12대의 자율주행차가 다니고 있다. 하지만 각각이 수집한 데이터는 연구실에만 처박혀 있다. 주행 데이터 공유 센터 등을 만드는 근거가 될 ‘지역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 프리존의 지정과 운영에 관한 특별법(규제 프리존 특별법)’이 19대에 이어 20대 국회에서 잠자고 있기 때문이다. 규제 프리존 사업에 주행 데이터 공유 센터가 포함돼 있는데 관련 특별법이 통과되지 않아 예산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차용 보험 개발이나 관련 교통제도 마련 작업도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여론도 문제다. 국내 자동차 산업이 현대·기아차로 대표되면서 각종 사업 정책을 위해 지원에 나설 경우 특정 기업을 지나치게 배려한다는 눈총을 받는다. 국산차에 대해 아니면 말고 식의 비난 역시 자율주행차 등 4차 산업혁명 핵심의 산업 바통을 끊기게 한다. 최근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는 벤츠와 BMW 등 수입차 판매가 크게 늘고 있다. 대부분 중형·대형 차종이다. 주요 브랜드들에 수익이 많이 남는 차다. 벤츠의 S클래스는 미국·중국에 이어 한국이 3번째로 많이 팔린다. E클래스는 5번째로 판매량이 많다. 한 업계 전문가는 “국내 수입차 판매 확대는 해외 브랜드의 미래차 연구 재원을 늘려주는 꼴이 되고 있다”며 “국내 자동차 업체들에는 진정한 위기”라고 말했다. 국내 자동차 업체가 노동조합 문제 등 개선에 빠르게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대·기아차의 귀족노조 문제를 오너가 나서서 적극 해결하려는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을 다시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