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완공된 뉴욕의 고가 철로 ‘하이라인’이 철거 위기에 놓이자 젊은 예술가들은 그곳에서 자라는 야생화 사진을 비롯해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며 ‘보존과 재생’을 주장했다. 결국 이같은 시민 청원이 받아들여져 2006년 착공한 ‘하이라인 파크’는 연간 600만명 이상이 찾는 뉴욕 명소가 됐다. 여기다 방점을 찍은 게 2015년 이전 개관한 휘트니미술관이다. 철도왕 밴더빌트의 손녀이자 미술가였던 휘트니(1875~1942)여사가 미국의 젊은 예술가들을 후원하고자 1931년 설립한 휘트니미술관은 메트로폴리탄·구겐하임·모마(MoMA)와 더불어 뉴욕4대 뮤지엄으로 꼽힌다.
맨해튼 도심 한복판에 있던 휘트니미술관이 건축가 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신축 공간으로 옮기는 데 든 비용은 총 7억6,500만 달러. 옛 미술관을 처분한 9,500만달러를 제외한 6억7,000만 달러(약7,500억원)는 기부금과 각종 후원으로 충당했다. 많은 기업과 개인이 이토록 큰 돈을 온전히 미술관을 위해 기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23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해 한남동 디뮤지엄에서 열린 ‘2016 프로젝트비아 결과공유 세미나:비아 살롱’에 강연차 방한 한 유니스 리(사진) 휘트니미술관 기업협력 디렉터에게 물었다. 그는 미술관 재정을 위해 기업 후원을 끌어오는 핵심 인물이다.
“재정은 미술관의 핏줄이니 미술관 후원과 기부는 헌혈인 셈”이라고 말하는 그는 “기업으로부터 후원을 받는 대신 미술관은 돈으로도 살 수 없으며 그들이 미처 알지도 못한 무한한 무형의 가치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은행은 아무도 보지 않은 전시의 ‘첫 관람(First Access)’을 자사 고객들에게 제공하고 싶어 하고, 자동차 회사는 영원불멸의 예술품이 전시된 미술관에서 차를 디스플레이하거나 파티를 열고자 합니다. 전자회사는 제품 시연과 관객 체험·이용을 희망하며 보석·가방 등 명품회사는 작가와 연결해 제품을 함께 만드는 콜라보레이션을 중시하죠.”
이렇듯 기업이 원하는 것을 먼저 찾으려 애쓴 덕에 휘트니미술관은 미술가 제프 쿤스와 패션업체 H&M의 협업으로 가방을 만들게 했고, 소장품 이미지로 블루밍데일스 백화점의 쇼핑백을 제작했다. 최근에는 미국 보석회사 ‘티파니앤코’가 향후 3번의 휘트니비엔날레를 공식 후원하겠다고 밝혔고, 이에 미술관은 전통있는 브랜드의 다소 옛스러운 이미지와 “쿨하고 섹시한 휘트니미술관” 이미지의 접목을 모색하는 중이다.
기업이 경영난에 빠질 때마다 문화예술 지원이 맨 먼저 위축되고, 기업 미술관과 문화재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적지 않은 우리 실정에서는 이처럼 활발한 교류가 부러울 따름이다. 게다가 기부 문화가 자리잡은 미국에서는 기업 뿐 아니라 개인 후원도 뜨겁다. 10년 전 준비를 시작한 휘트니미술관 이전과 신축개관에는 미국의 화장품 기업 에스티 로더의 리어나드 로더 회장 부부가 1억2,500만 달러를 기부금으로 쾌척한 것이 시드머니가 됐다. 미술관의 연간 예산 중 개인 후원이 70%로 15%인 기업을 항상 앞선다.
“김환기가 뉴욕에서 작업할 때도, 예술은 언어를 초월해 통역없이 교감할 수 있는 까닭에 활동의 제약이 없었던 것”이라는 그는 “낯선 곳에서의 여행이더라도 사람들의 발길은 뉴욕의 여러 미술관, 파리의 루브르, 서울의 리움을 향하는 것 역시 예술의 힘”이라며 한국과도 의미있는 협업을 희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