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전략실 해체와 더불어 계열사 이사회 중심의 자율경영을 선포할 예정인 삼성그룹이 경영 급변기를 맞아 대혼돈 속에 빠져들고 있다. 인사·연수 등 삼성이 그룹 차원에서 진행하던 모든 업무가 계열사로 이관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룹 전체가 동요하고 있는 것이다.
로열티 높은 ‘삼성맨’을 만들어낸다는 명성이 자자했던 삼성의 그룹 입문교육을 비롯해 호텔신라에서 진행되던 신임 임원 만찬 등 삼성을 상징하던 많은 것들이 사라질 것으로 예고되자 삼성 직원들은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그룹 연수는 임직원들을 삼성의 유전자(DNA)로 묶고 단결하게 하는 힘이었는데 상당히 아쉽다”며 “최근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들을 모두 미전실의 탓으로 결론 내리는 것도 속상하다”고 말했다.
27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은 특검 수사 마무리 후 미전실 해체와 더불어 이사회 중심 계열사 자율경영체제를 선포한다. 이에 따라 기존에 그룹 차원에서 진행되던 모든 업무 및 행사 등이 계열사로 이관된다. ★본지 2월27일자 1·3면 참조
그룹 홈페이지와 블로그가 문을 닫고 그룹이 주관하던 사장단·임원 인사도 없어진다. 인사와 연수 권한이 각 계열사로 넘어가면서 자연스럽게 그룹 차원에서 진행되던 신임임원 만찬과 사장단 만찬, 연말 최고경영자(CEO) 세미나, 간부 승격자 교육 등도 없어질 예정이다. 대외적으로 ‘삼성그룹’이라는 실체가 사라지는 셈이다. 그룹 차원의 공채 역시 올해 상반기 채용까지만 진행하고 하반기부터는 계열사별 자율 공채를 실시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그룹 공채가 없어질 경우 신입사원들에게 삼성맨의 DNA를 심었던 그룹 입문교육이 사라지고 계열사별로 채용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삼성의 이 같은 변화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후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기도 하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 내부에서는 이미 채용 기수를 중심으로 한 연공서열 문화 폐지의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돼왔다”며 “사내 문화를 한층 수평적으로 바꾸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도출할 수 있는 미국 실리콘밸리식 기업 문화를 이식하자는 것이 이 부회장의 경영 철학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을 상징하던 미전실은 이르면 이번주 폐쇄된다. 강남 서초사옥 삼성그룹 기자실도 문을 닫는다. 서초사옥 41층에 있는 이 부회장 사무실은 삼성전자 수원 본사로 이전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0월부터 삼성전자 사내 등기이사를 맡고 있다. 미전실이 빠져나간 뒤 남게 되는 사무실 공간에는 금융 관련 계열사가 입주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미전실 임직원들은 일단 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생명 등 3개 주력 계열사로 이동해 미전실 업무 인수인계 등을 거친 후 각 계열사로 흩어질 예정이다.
삼성 내부에서는 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대외적인 환경 때문에 변화를 서두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서글프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그룹을 상징하던 ‘파란 피’가 사라지는 느낌”이라며 “우리가 주도하는 변화가 아니라는 부분이 아쉽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삼성 관계자는 “특검 등 외부 사태와 관련돼 움직이는 것 같아 안타깝지만 변화의 물결 속에 새로운 조직문화를 구축하고 더 큰 실적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