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일 개봉하는 이수연 감독의 영화 ‘해빙’은 연쇄살인, 그리고 상상력에 대한 이야기다. 강남에서 잘 나가던 내과의였던 승훈(조진웅 분)은 병원경영에 실패하자 병원문을 닫고 과거 미제연쇄살인사건으로 유명한 경기도의 한 신도시에 홀로 내려와 선배의 병원에 월급의사로 취직한다.
설상가상 아내와 이혼까지 하며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궁지에 몰린 승훈은 어느날 집주인인 정노인(신구 분)의 수면내시경 검사를 진행하던 중, 정노인이 과거 자신이 저지른 살인에 대해 무의식중에 이야기하는 것을 듣게 된다. 그리고 정노인의 아들인 성근(김대명 분)이 운영하는 1층 식육식당 냉장고에서 비닐봉지에 담긴 채 냉동보관된 사람의 머리를 발견하고는 성근과 정노인이 연쇄살인범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해빙’은 상당히 흥미로운 텍스트들이 겹겹이 쌓여있는 영화다. 데뷔작 ‘4인용 식탁’으로 중산층 가정에 찾아온 비극을 공포로 흥미롭게 치환시켰던 이수연 감독은 14년 만에 선보인 두 번째 영화 ‘해빙’을 통해 ‘중산층’과 ‘신도시’로 대표되는 물질적 가치의 변화를 스릴러의 구조 위에 얹어낸다.
‘해빙’은 연쇄토막살인이라는 엽기적 소재가 등장하지만 사실 영화 자체는 그리 잔인하지 않다. 엽기적인 장면이 종종 등장하기는 하지만, 보는 동안 눈을 질끈 감고 싶을 정도로 잔인한 사지절단의 코드는 의외로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노골적인 표현이 거의 없음에도 ‘해빙’은 보고나면 상당히 잔인하다는 느낌과 함께 찝찝한 뒷맛을 감출 길이 없다. 이 찝찝함의 정체는 바로 인간의 상상력에 있다. 조진웅이 연기한 ‘승훈’은 정노인(신구 분)의 살인 고백을 들은 이후 자신이 만들어낸 상상력의 세계에 갇혀 주변을 왜곡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같은 시간 관객들은 승훈이 만들어낸 상상력의 세계를 현실로 인지하며 승훈이 느끼는 공포를 자신의 것처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해빙’의 대미는 왜곡되고 뒤틀린 상상력과 욕망들이 일제히 분출되어 나오는 후반부의 반전이다. 관객들은 이 반전에 깜짝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쉴 것이고, 그러다가 다시 한 번 비겁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수연 감독은 제작보고회에서 ‘성근’을 연기한 김대명에게 “요물 같은 배우”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사실 진짜 요물은 김대명이 아닌 바로 이수연 감독 자신일지도 모르겠다. 3월 1일 개봉.
/서경스타 원호성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