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정부가 김정일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 암살 사건 수사를 놓고 대립해온 북한에 대해 결국 비자면제협정 파기를 선언했다. 말레이 정부는 또 김정남 암살의 핵심 용의자로 지목했던 리정철(47)을 북한으로 추방하기로 했다.
말레이시아 국영 베르나마 통신에 따르면 2일 아맛 자힛 하미디 말레이 부총리가 “국가 안보를 위해 북한과의 비자면제협정을 6일자로 파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지난 2009년 체결된 협정은 8년 만에 파기된다. 당시 협정 체결로 말레이시아 국민은 북한을 비자 없이 방문할 수 있는 첫 국가가 됐지만 앞으로는 별도 비자를 발급받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말레이 당국이 북한에 대해 이처럼 초강수를 둔 것은 김정남 암살 사건 후속처리 과정에서 북한대사관이 경찰의 부검강행과 시신 인도 지연 등을 강도 높게 비판한 데 따른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가 향후 국교단절로 이어질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한편 이날 모하메드 아판디 말레이시아 검찰총장은 기자들과 만나 “리정철을 구금 기간이 끝나는 3일 석방한 뒤 추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모하메드 총장은 “이번 암살사건에서 그의 역할을 확인할 충분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며 “유효한 여행 서류를 갖고 있지 않은 그를 석방한 뒤 추방할 것”이라고 말했다. 체포된 용의자 가운데 유일한 북한 국적을 소유했던 리정철이 법망을 벗어남에 따라 북한 배후설을 입증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리동일 전 북한 유엔대표부 차석대사는 이날 쿠알라룸푸르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정남 사인을 심장마비로 볼 강한 근거가 있다”며 시신을 조속히 인계해달라고 촉구했다. 리 전 차석대사는 이어 “북한 배후설은 한국의 주장”이라며 “말레이당국은 화학물질인 VX가 어떻게 유입됐는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