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균상을 지칭하는 가장 적합한 수식어가 아닐까. MBC 월화드라마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극본 황진영, 연출 김진만 진창규, 이하 ‘역적’) 주인공 윤균상의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윤균상은 ‘역적’에서 ‘흙수저’ 신분으로 ‘금수저’를 향한 반란을 꿈꾸게 되는 인물 홍길동으로 열연 중이다. 지금까지 김석훈의 ‘홍길동’부터 강지환의 퓨전사극 ‘쾌도 홍길동’, 이제훈의 영화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등 수많은 작품들이 허균의 소설 ‘홍길동전’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갔다. 하지만 윤균상은 조선 연산군 시절 활약했던 실존 인물 홍길동을 선보이고 있다.
가상이 아닌 실제를 연기해야 함에 ‘까다로움’은 당연히 따랐을 숙제였다. 하지만 윤균상은 홍길동의 삶을 재조명하며 500여 년 전 폭력의 시대를 살아낸 ‘인간 홍길동’의 삶과 사랑, 투쟁의 역사를 밀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민초의 대변자였던 의적 홍길동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는 지금 시대에 더욱 큰 공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역적’에서는 특히 인간 홍길동이 영웅 홍길동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줄기로 삼는다. 그저 가족을 지키고 싶었을 뿐인 소시민이 권력의 썩은 민낯과 마주한 후 가족을 지키는 것 이상을 욕망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 민초를 구원한 것은 빼어난 능력이 아닌 세상을 품을 만한 사랑이고, 그 인류애를 자각하는 자가 곧 영웅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극 초반 홍길동은 어린 시절부터 순수하고 친근한 모습으로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존재할법한 일상적인 인물을 보여 왔다. 곧 도적이 되리라는 운명을 전혀 모른 채 이곳저곳을 유랑하는 방물장수로 살며 마을 주민들과 섞이는 것이 낙이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삼시세끼’에서의 수더분함과 천진난만함이 한 가득이었다.
하지만 형 홍길현(심희섭 분)과 동생 어리니(정수인 분)를 잃고, 위기에 처한 아버지 이모개(김상중 분)마저 처참하게 망가짐에 홍길동은 가족들을 지키지 못한 자괴감을 분노로 폭발시키기 시작했다. 눈에 불꽃이 일고 나무를 맨주먹으로 내리쳐 나무를 가를 정도로 오열하는 등 ‘역사’ 홍길동으로 각성하는 과정은 반전된 면모로 시선을 끌어당기기에 충분했다.
각성 과정이 사뭇 생소하게 다가올 수 있음에도 윤균상은 날카롭게 변한 눈빛 속에서 폭발과 절제를 오가는 현실적인 감정 표현으로 설득력을 가했다. 그런 그가 이제는 아버지의 원수 충원군(김정태 분)의 턱 밑 까지 잠입, 치밀한 복수를 준비 중이다. 홍길동은 남다른 힘과 영민함으로 충원군의 ‘발판이’를 자처하며 그의 눈에 들게 됐고, 넉살 좋은 표정으로 그의 하수인 노릇을 하며 완벽한 복수를 위한 칼을 갈고 있다. 오로지 ‘직진’만이 예고된 날선 심리전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묘한 쾌감을 느끼게 함은 물론, 홍길동을 응원케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윤균상은 복잡다단한 홍길동의 내면을 완벽히 구축하면서 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을 본격 조명해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다. 실제 부드러운 미소와 강인한 내면의 소유자인 그이기에 더욱 빛나는 인물 ‘홍길동’이다.
/서경스타 한해선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