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중국 칭화홀딩스에서 2,100억원을 투자받은 의약품위탁생산(CMO) 업체 바이넥스는 이달 중 칭화 측과 합작법인을 설립한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사태에 따른 중국 정부의 보복조치에도 무풍지대인 셈이다. 칭화홀딩스는 칭화대가 투자한 회사로 중국 정부의 직간접적인 통제를 받는다. 바이오 업계 고위관계자는 “바이오 분야에서는 미국과 유럽의 견제가 심해 한국 업체를 징검다리로 쓰려는 것”이라며 “자신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드 사태에도 문제 삼지 않는다”고 말했다.
바이넥스는 중국의 한국 의존도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바이오뿐만이 아니다. 정보기술(IT)과 전자산업을 포기하지 않는 한 중국도 한국산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수입을 당장 끊기 힘들다. 우리나라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26%에 달하지만 거꾸로 중국도 우리 없이는 홀로 서기 어렵다. ‘차이나 포비아(phobia·공포증)’에 빠져 있기보다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고 그에 따른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지난해 대중 수출액 1위는 반도체로 242억달러에 달한다. 2위는 평판 디스플레이 및 센서(185억달러)로 이들 항목이 전체 대중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4.4%다. 이는 고용량 낸드플래시와 D램, 유기발광다이오드(OLED)가 중국 업체에 필수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샤오미 최고경영자(CEO)인 레이쥔 회장은 삼성전자를 방문해 낸드플래시 공급을 요청했다. 아직 중국은 OLED 대량생산을 하지 못한다. 국내 제품을 적기에 공급받지 못하면 중국 기업들도 제품의 성능은 물론 수출에 막대한 차질이 불가피하다.
더 중요한 것은 흑자 항목이다. 지난해 중국과의 무역에서 번 돈 374억달러 가운데 반도체와 디스플레이가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78.4%(약 293억달러)다. 중국과의 장사에서 이문을 남기는 항목은 당분간 중국도 어쩔 수 없는 제품들이다.
물론 수출금액은 줄고 있다. 올 들어 대중 수출 증가 비율은 높아졌지만 2015년 137억달러였던 대충 수출은 지난해 124억달러로 쪼그라들었다. 투자 의존도 감소세는 더 극적이다. 중국에 대한 직접투자 규모는 2007년 54억4,000만달러로 최고점을 찍은 뒤 지난해에는 28억5,000만달러로 급감했다. 한때 40%에 달했던 중국 투자 비중은 10% 수준으로 낮아졌다.
관광도 우리만 타격을 받는 것은 아니다. 2015년 기준으로 약 444만명의 한국인이 중국을 찾았다. 2위인 일본(250만명)보다 200만명이나 많다. 중국인 관광객 감소에 따라 중국을 찾는 한국인이 줄면 중국도 적지 않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두 나라에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고리도 있다. 중국이 한중 FTA를 건드릴 수도 있지만 그에 따른 비용은 만만찮다. 중국은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과 칠레·뉴질랜드 등과 FTA를 맺고 있는데 한중 FTA에 손을 대는 것은 다른 나라에 ‘믿을 수 없는 나라’라는 신호를 보내는 꼴이 된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한중 FTA에 따른 관세 인하는 계획대로 하는 것”이라며 “중국 정부가 FTA를 건드리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보복조치에 지나치게 저자세를 보이거나 위축될 필요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외교력과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해 이번 사태를 해결해야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가 커졌고 양국 간 경제 밀접도도 높기 때문이다. 국내 내수산업을 중심으로 한동안 매출이 급감하겠지만 이것도 한 번쯤은 겪어야 하는 부분이라는 얘기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우리 국민들이 중국이 없으면 큰일 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인식을 바꿔야 할 상황”이라며 “충격은 있겠지만 생각하는 것만큼 크지는 않다.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새로운 시장도 늘고 있다. 이미 인도에는 애플을 비롯해 글로벌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이 공장 증설과 신설을 계획 중이다. 베트남을 비롯한 아세안도 생산 및 소비기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 휴대폰의 40~50%는 베트남에서 만들어진다. 삼성은 호찌민에 대규모 가전복합단지를 건설하고 있다. 제재가 풀린 이란이나 동유럽도 공략 대상이다.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일시적인 충격은 있을 수 있지만 이번에 중국 의존도를 줄이지 못하면 더 큰 위험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영필·강광우기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