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집권 자민당이 5일 총재직 임기를 연장하는 내용의 당칙 개정을 단행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9년 장기집권 문을 활짝 열어줬다. 이로써 아베 총리는 내년 9월 당 선거에서 총재직에 재선출되기만 하면 일본 전후 역사상 최장수 총리에 등극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베 총리의 자민당 내 독주체제가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정치적 변수는 정적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의 치솟는 인기와 아베 총리의 부인이 연루된 일명 ‘아키에 스캔들’의 파장이다.
교도통신은 자민당이 이날 도쿄 소재의 한 호텔에서 당 대회를 열어 총재 임기를 현행 ‘2기 연속 6년’에서 ‘3기 연속 9년’까지 연장하는 내용의 당칙 개정안을 정식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이로써 현재 2기 임기를 수행 중인 아베 총리는 내년 9월 열리는 당 총재 선거에 후보로 나서 일본 최장수 총리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일본 언론들은 현재로서는 아베 총리가 다음 당 총재 선거에서 3선을 이루며 무난히 집권연장의 꿈을 이룰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 경우 지난 2006~2007년 1차 집권기를 포함한 그의 재임기간은 2019년 11월 가쓰라 다로 전 총리의 최장수 재임 총리 기록(2,866일)을 뛰어넘게 된다.
다만 ‘집안의 야당’으로 불리며 인기를 누려온 아베 총리 부인 아키에 여사를 둘러싼 스캔들의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가 그의 앞날에 변수가 되고 있다. 아키에 여사가 명예교장이었던 사학재단 모리모토학원이 지난해 6월 국유지를 감정가의 14%인 헐값에 사들였고 여기에 자민당 국회의원까지 개입했다는 사실이 폭로되는 등 아키에 여사와 모리모토 학원을 둘러싼 의혹은 정권 차원의 스캔들로 번지고 있다.
민진당 등 야당은 오는 9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공청회를 열기로 하는 등 아키에 스캔들을 키우기 위해 연일 총공세를 벌이고 있다. 이 학원은 특히 산하 유치원을 통해 어린아이들에게 안보법제 국회 통과를 찬성하고 한국과 중국에 대한 부적절한 편견을 심어주는 우익 교육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일본 내에서도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여기에 고이케 도쿄도지사가 ‘아베 1강’ 체제를 견제할 정적으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점도 아베 총리에게는 큰 부담이다. 아베 총리에게 반기를 들고 자민당을 탈당한 뒤 지난해 7월 선거에서 도지사에 당선된 그는 우익 성향이면서도 개혁적인 정책을 편다는 이미지를 앞세워 정치적 입지를 빠르게 넓히고 있다. 아베 대 고이케의 ‘대리전’으로 주목받았던 지난달 도쿄 지요다구청장 선거에서는 그가 지원한 후보가 자민당 후보에게 완승을 거두기도 했다. 고이케 지사는 ‘도민제일모임’이라는 신당을 이끌며 7월에 치러질 도쿄도의회 선거를 앞두고 세를 결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장기집권을 노리는 아베 총리가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시기에 중의원 해산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 정가에는 고이케 지사의 바람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2017년 예산안을 처리한 직후인 3월 말 중의원을 전격 해산한다는 설부터 7월 해산 및 중의원·도쿄도의회 동시 선거설이 떠돌고 있다. 또 도쿄도의회 선거 이후 분위기 반전을 꾀하기 위해 가을에 중의원을 해산하거나 2018년 9월 당 총재 선거 직후 지지율이 상승하는 컨벤션 효과를 틈타 총선을 치르고 의석 확대를 노린다는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지지기반을 다지기 위한 아베 총리의 행보도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아베 총리는 ‘전쟁 가능한 국가’를 만들기 위한 헌법 개정에 속도를 내겠다며 핵심 지지층의 결집을 호소했다. 평화헌법을 개정하기 위해 아베 총리는 중의원·참의원에서 각각 3분의2 이상 찬성표를 확보해야 한다. 아베 총리는 이날 연설에서 “자민당은 (헌법개정안) 발의를 향한 구체적인 논의를 이끌 것”이라며 “그것이야말로 전후 일관되게 일본을 지탱해온 자민당의 역사적 사명”이라고 말했다.
/연유진기자 economicu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