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칼럼] 외교안보에 근거없는 낙관론은 금물이다

신경립 국제부장

美 보호무역주의·사드 배치 등

대책없는 낙관론이 파장 더 키워

한반도 전술핵까지 언급된 상황

'설마'에 기대 허송세월만 해서야





1938년 9월30일. 독일 뮌헨에서 귀국한 네빌 체임벌린 당시 영국 총리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종이 한 장을 치켜들며 유럽이 평화를 찾게 됐다고 선언했다. 그가 자랑스럽게 흔든 종이는 자신과 아돌프 히틀러 독일 총통이 서명한 영국-독일 불가침 협정서였다. 전날 독일에 체코 영토의 6분의1에 달하는 수데텐 일대 지역을 독일에 넘겨주는 대가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히틀러의 약속을 얻어낸 데 이은 쾌거였다.


그러나 역사는 이 장면을 영국 외교의 굴욕의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히틀러는 그로부터 5개월 뒤 체코를 집어삼키고 다시 반년 만에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체임벌린의 이름 뒤에는 ‘유화정책의 대명사’ ‘순진한 이상주의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체임벌린의 외교적 판단을 단면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히틀러의 행보와 국제 정세에 대한 그의 낙관론이 이후 세계 역사를 조금 더 비극적으로 만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대외 관계에서의 ‘낙관’은 종종 치명적인 결과를 낳고는 한다. 미 매사추세츠공과대(MIT)의 스테판 반에바라 정치학 교수는 근대 이후 발발한 모든 전쟁의 이면에는 ‘그릇된 낙관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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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오늘날에도 국제사회에는 낙관주의가 팽배해 있다. 많은 국가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된 후에도 ‘후보 트럼프와 대통령 트럼프는 다를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1월20일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은 반이민 정책과 보호무역주의,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오랜 우방국과의 관계를 흔들어놓고 있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트럼프 미 정부의 거듭되는 보호무역주의 천명에도 우리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재협상 테이블에 오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앵무새처럼 되풀이했지만 미 무역대표부(USTR)는 최근 공개한 보고서를 통해 한미 FTA 재검토를 언급하며 재협상을 사실상 기정사실화했다. 지난 2015년 일본과의 위안부 합의가 몰고 올 파장을 과소평가하고 정부가 내린 외교적 결정은 결과적으로 한일 관계를 이전보다 더 악화시켰다. 지금 주한 일본대사는 본국으로 송환된 지 두 달이 다 돼 가도록 복귀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가 중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고강도 보복 조치를 초래할 가능성은 과거 중국의 외교 마찰 사례를 봐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시진핑 국가주석 겸 공산당 총서기의 거듭되는 ‘사드 불가’ 공언에도 중국의 심각한 보복은 없을 거라던 정부는 지금도 미국이 해결해 주기만을 기대하고 있다.

외교안보에 관한 한 근거 없는 낙관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온갖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대비해도 틀어지는 것이 외교 문제다. 상대국 지도자의 성향부터 국내 정치상황, 국제 정세까지 무수한 변수들이 작용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일을 몰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과도한 비관론도 해롭기는 마찬가지지만 기존 질서가 흔들리고 국제 정세가 요동치는 지금은 ‘낙관’에 대한 경계에 더 무게를 둬야 한다.

최근 북한을 둘러싼 동북아 정세가 심상치 않다. 북한은 김정남 피살에 이어 미사일 도발로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다. 트럼프 미 행정부는 북한 선제타격과 정권교체, 한국 내 전술핵 재배치 등 강경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한반도 평화가 기로에 놓인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만에 하나 발생할지 모를 사태에 얼마나 철저히 대비하고 있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한이 설마’ ‘미국이 설마’ 하는 근거 없는 낙관론에 파묻혀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klsin@sedaily.com

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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