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서 5년 내에 코스피 3,000시대를 열겠습니다.”
지난 2012년 12월18일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두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발표한 공약이다. 그는 다음날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됐지만 헌정 사상 첫 ‘파면 대통령’이 되며 약속했던 코스피 3,000은 물거품이 됐다. 창조경제와 금융개혁 등을 추진했으나 구체적인 성과를 내기 전에 ‘최순실 국정농단’에 발목이 잡히며 정부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10일 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지수는 전일 대비 0.30% 상승한 2,097.35포인트를 기록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를 앞두고 전일 잠시 숨을 고르던 증시는 정치적 불확실성 해소에 외국인이 5일 연속 순매수를 이어가며 상승세로 돌아섰다. 이날 기준으로 코스피지수는 박 대통령이 취임한 2013년 2월25일의 하루 전인 2월22일 2,018.89와 비교할 때 3.88% 상승했다.
장기 박스권에 갇혀 있던 코스피는 박근혜 정부 이후 박스피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박 전 대통령 재임 기간 주가 성적은 역대 대통령 때와 비교하면 낙제점이다. 박 전 대통령 직전인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2월25일 집권해 2013년 2월24일 퇴임하기까지 코스피지수는 1,686.45에서 2,018.89로 올라 19.71%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박 전 대통령보다 먼저 이미 ‘주가 3,000시대’를 공언한 이 전 대통령은 코스피 2,000을 넘는 데 만족해야만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한 참여정부 시기인 2003년 2월25일부터 2008년 2월24일까지 코스피지수는 616.29에서 1,686.45로 무려 173.65%나 급등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국내 수출기업들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며 시장도 강한 상승세를 보였다. IMF 위기와 함께 시작했던 김대중 대통령도 재임 기간 코스피는 540.89에서 616.29로 13.94% 상승했다.
집권 기간이 비슷했던 해외 주요국 정상들은 재임 기간 주가 성적이 월등히 좋았다. 지난 1월 퇴임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집권 기간 미국 증시는 유례없는 장기 랠리가 이어졌다. 오바마가 2009년 1월20일부터 2017년 1월20일까지 연임하는 동안 미국 대표지수인 다우존스지수는 8,281.22에서 1만9,827.25로 139.43%의 상승률을 보였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나 나스닥지수 역시 고공행진을 펼쳤다. 오바마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은 트럼프는 취임 이후 미국 3대 지수가 사상 최고가 행진을 벌이며 ‘트럼프 랠리’를 이어가는 중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임기가 겹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10일 기준 일본 닛케이225지수가 임기가 시작한 2012년 12월26일과 비교할 때 91.6% 상승했다. 경제규모가 다른 만큼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같은 글로벌 경제 환경에서 주가 상승률에 차이를 보이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이종우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현 정부 경제정책 중 뚜렷한 결실을 거둔 게 거의 없는 것 같다”며 “코스피 등 주가지수가 상승 모멘텀을 타는 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나마 코스피가 상승한 것도 삼성전자 등 대형주가 몸집이 커진 결과”라며 “삼성전자를 빼면 현재 코스피는 1,500~1,600선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탄핵 이후 경제와 증시에 대한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미국계 투자은행인 캐피털이코노믹스는 이날 보고서에서 “최근 정치 스캔들로 인해 약화됐던 경제주체들의 자신감은 다소 회복될 수 있을 것이며 향후 재정부양정책을 쓸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게 됐지만 한국 경제가 빠른 회복세를 타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높은 가계부채와 구조조정에 대한 부담, 대외 불확실성으로 2%의 성장도 버거울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