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에 대해 사실상 불복 선언을 하면서 조기 대선을 앞두고 정당별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대통령 탄핵으로 집권 여당의 지위를 내려놓은 자유한국당은 보수 세력의 응집력을 높여 대선 판도를 뒤집겠다는 전략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박 전 대통령의 발언에 분노한 촛불 민심을 등에 업고 정권 교체 프레임을 굳혀간다는 구상이다. 반면 탄핵 이후 중도 보수 지지층의 표심을 잡아 지지율 반등을 노리던 바른정당은 ‘보수 대 진보’의 대결 구도가 뚜렷해질 경우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13일 민주당·국민의당·바른정당·정의당 등 원내 4당은 전날 삼성동 사저로 복귀한 박 전 대통령이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며 헌재 판결에 불복하는듯한 발언을 내놓자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헌재 결정 승복을 당론으로 채택했던 한국당은 정작 이렇다 할 공식논평을 내놓지 않았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저희는 당론을 헌재 결정 승복으로 정했는데 박 전 대통령이 승복을 선언하지 않은 데 대해 가타부타 논평하고 싶은 생각이 현재는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인명진 비대위원장은 당내 강성 친박계 의원들을 겨냥해 “만에 하나 국민 마음에 걱정을 끼치고 국민 화합을 저해하는 언행이 있다면 국민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 당도 불가피하게 단호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며 경고했다.
하지만 한국당은 박 전 대통령의 헌재 판결 불복 발언이 탄핵 이후 동력이 떨어질 수 있는 보수층의 응집력을 높일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지 내심 기대하는 눈치다. 실제로 당 지도부는 당내 친박 세력의 돌발 행동 가능성을 경고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제재하지는 않는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정 원내대표도 전날 일부 친박 의원들이 삼성동 사저로 몰려든 것에 대해 “개인적인 대통령과의 인연과 정치적 인연으로 간 것이었다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한발 물러섰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박 전 대통령의 불복 메시지는 탄핵으로 결집하고 있는 보수세력의 응집력을 더욱 높이는 효과가 있다”며 “이를 계기로 한국당은 ‘보혁(保革)’ 대결구도로 끌고 가 기울어진 대선 판도를 흔들려고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탄핵 이후 지지율 반등을 기대하던 바른정당은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헌재의 탄핵 판결을 둘러싸고 또다시 보수와 진보의 대결 양상으로 치달을 경우 한국당과 민주당에 치여 존재감이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중도 보수층의 표심을 진보 진영의 안희정 충남지사와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에게 빼앗기고 있는 바른정당 대선주자들로서는 ‘친박’을 중심으로 한 보수층의 쏠림 현상이 가속화되면 설 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박 전 대통령의 불복 발언이 촛불민심에 다시 기름을 부어 정권 교체의 동력으로 활활 타오르기를 기대하고 있다. 특히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듯한 박 전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중도 보수층이 돌아설 경우 정권 교체의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진보 지지층의 경우 이미 탄핵을 고리로 결집할 대로 결집한 만큼 추가 확장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