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직접민주주의 정치판 흔들다] 온라인으로 공약·후보자·당론 결정...'디지털 민주주의' 성큼

해외에선 어떻게

쌍방향 온라인 정당 스페인 '포데모스' 아이슬란드 '해적당'

고대 아테네 민회처럼 직접 참여로 대의 민주주의 한계 극복

노인 등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계층 소외·중우정치 우려도

“진짜 민주주의를 돌려달라.”

극심한 경제난에 분노한 스페인 국민들이 2011년 5월15일부터 한 달여간 수도인 마드리드의 푸에르타 델솔(태양의 문) 광장에서 외친 구호다. 이후 2014년 1월 교수 겸 언론인인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등이 주축이 된 온라인 기반 정당 ‘포데모스(Podemos·우리는 할 수 있다)’가 출범한다. 공약과 후보자 선정에 누구나 참여하고 크라우드펀딩까지 받는 쌍방향 온라인 정당으로 관심을 끈다. 900개 이상의 소규모 지역 조직도 갖췄다. 고질적인 좌우 프레임을 탈피해 반 유럽연합(EU), 반긴축, 복지 확대, 기초소득 보장 등을 내세웠고 2015년 12월 총선에서 69석(21% 득표)을 얻어 3당으로 떠올랐다.


포데모스는 마드리드 시민단체와 연합한 ‘아호라 마드리드’를 통해 풀뿌리 민주주의도 선보였다. 웹사이트를 통해 16세 이상은 누구나 정책발의를 하도록 해 2% 이상 시민 지지를 받으면 온라인 주민투표에 부쳐 집행 여부를 결정한다. 지난해 3월부터는 예산은 시민 의견대로 집행한다. 포데모스가 지지한 아다 콜라우 바르셀로나 시장도 일정과 활동을 블로그에 모두 공개하며 시민 참여를 끌어낸다.

2011년 5월 스페인 국민들이 마드리드 태양의 문 광장에서 경제난 등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야후재팬2011년 5월 스페인 국민들이 마드리드 태양의 문 광장에서 경제난 등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야후재팬


아이슬란드 ‘해적당’은 기성 정당에 반발해 2012년 지적재산권의 배타적 독점에 반대하는 운동가와 해커를 중심으로 출범한 뒤 시민들의 온라인 토론으로 당론을 정한다. 토론은 의원총회에서 뽑힌 의장이 주재하지만 당 대표 등 지도부는 없다. 정치 투명성과 책임성 강화, 무상의료, 탈세 차단과 부자 증세, 표현의 자유, 마약 합법화 등을 주장한다. 현재 중도우파 연정에는 들어있지 않지만 지난해 10월 총선에서 총 63석 중 10석을 획득했다.

아이슬란드 해적당 홍보 이미지. /사진=해적당 홈페이지아이슬란드 해적당 홍보 이미지. /사진=해적당 홈페이지


기성 정치에 대한 염증과 자국 우선주의 확산으로 세계적으로 영국의 EU 탈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반난민·반EU를 내세운 유럽 극우 정당의 약진이라는 분노의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으나 한편에서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집회민주주의처럼 직접민주주의도 선보이고 있다. 2,500년 전 아테네 민회(民會)는 16세 이상 시민이 연 40회, 6,000명가량 모여 임기 1년 관리를 추첨으로 선발하고 법률, 세금, 재판, 전쟁, 시민권 부여 등을 결정했다. 여성·노예·외국인에게는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지만 직접민주주의 효시라고 볼 수 있다.


이후 왕정이 보편화된 뒤 1689년 ‘의회의 승인 없이 법을 제정하거나 세금을 거둘 수 없다’는 영국의 권리장전, 1776년 미국 독립혁명, 1789년 프랑스 혁명 등을 계기로 대의민주주의가 확산돼 현재 지구촌 대부분의 나라가 대의제를 채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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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프랑스의 장 자크 루소가 1762년 ‘사회계약론’을 통해 “영국인은 자유롭다고 생각하나 대의원을 선출할 때뿐이며 선출이 끝나면 노예가 된다”고 꼬집은 것처럼 대의민주주의에서는 국민주권이 부족하다. 영국 사회학자 콜린 크라우치는 ‘포스트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대의민주주의에서 시민 참여가 불분명해 부패가 생기고 민심과 동떨어진 정책이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목할 점은 최근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해킹을 막는 블록체인에 기반한 직접민주주의 토대가 마련되고 있다는 것이다. 블록체인은 네트워크 내 모든 참여자가 거래정보를 검증·기록·보관해 신뢰성을 확보함으로써 전자화폐는 물론 정부의 공공 서비스와 직접민주주의 등에 활용된다.

2014년 설립된 가상 국가 비트네이션(Bitnation)은 블록체인을 활용, 이름·주소·e메일만 찍고 국적을 취득하면 개인기록을 조작하지 못하게 반영구적으로 보관한다. 이곳은 시리아 등 난민이 구호 서비스를 받는 데 제약이 없도록 신분증과 함께 비트코인이 있는 직불카드를 발급해준다. 올해 태평양 공해상에 모듈 형태의 거주구역(시스테드)을 선보일 ‘시스테딩 인스티튜트’라는 미국 기업도 블록체인을 활용해 자치를 하게 된다.

시스테드 해상 공동체 가상도. /사진=시스테딩 인스티튜트 홈페이지시스테드 해상 공동체 가상도. /사진=시스테딩 인스티튜트 홈페이지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은 “국가혁신을 위해 블록체인을 활용하면 실시간으로 비용도 안 들이고 직접·비밀 투표가 가능해져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영숙 (사)유엔미래포럼 대표는 “국민들이 스마트폰으로 국정 현안이나 법률안에 대해 바로 의사를 표현하는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해지고 인공지능이 갈수록 스마트한 결정을 하게 되면서 나중에는 정치인이 사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물론 블록체인을 활용한 직접민주주의가 ‘도깨비방망이’는 아니다. 아테네 민회 당시에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중우정치(衆愚政治)’를 경고한 것처럼 대중의 요구와 대의민주주의의 전문성 결합이 요구된다. 참여민주주의라는 긍정적 효과가 있지만 노인 등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계층이 소외될 수 있는 점도 보완해야 한다. 익명을 원한 한 광역단체장은 “국민의 정책 발안이나 문제가 많은 정치인 소환 등 직접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것은 맞다”면서도 “집단·지역 이기주의가 극단적으로 팽배한 실정이라 애로가 크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민이 대거 항의시위를 하지 않고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사회갈등이 커지지 않는다”며 “일부 문화체육시설 등의 예산은 주민이 결정권을 갖도록 하고 영국에서 2015년부터 범죄를 지어 구속된 하원의원을 리콜하도록 한 것처럼 우리도 부패 등 위법한 의원은 국민소환제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직접민주주의를 하면 비효율적이고 포퓰리즘적 결정이 날 것이라는 오해가 있는데 해외 사례를 보면 오히려 예산 낭비를 막고 입법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고광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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