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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원양산업史 산증인, 윤정구 선장

제1호 원양어선 ‘지남호’ 선장으로 제6회 수산인의 날 금탑산업훈장 수상



사진: 윤정구 선장

우리말로 된 이름도 없이 ‘마구로’, ‘튜나’라고 불렸던 참치잡이의 역사가 시작된 지 올해로 60년이다. 지난 1957년 6월 29일, 참치의 생김새도 본 적 없었던 윤정구 선장과 16인의 선원은 ‘남쪽에서 뱃머리를 돌려 부를 건져오라’는 뜻에서 당시 이승만 전 대통령이 직접 명명한 ‘지남호’에 몸을 실었고, 그렇게 우리나라 원양산업의 역사가 시작됐다.


당시 참치를 잡기 위해 부산항을 떠난 지남호에는 책에서 배운 지식 이외에 실제 참치연승(긴 낚시 줄에 여러 개의 낚시를 달아 바다 속에 늘어뜨린 후 참치를 잡는 방식) 조업에 대한 경험을 가진 선원이 단 1명도 없었다. 기술 고문으로 미국인 모건이 함께 승선하였으나 어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허리를 다쳐 하선한 탓이다.

하지만 빈손으로 뱃머리를 돌릴 수 없었던 윤정구 선장은 선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독학으로 기술을 익혔다. 우여곡절 끝에 출어 후 약 2개월이 지난 1957년 8월 15일, 인도양 니코바르 아일랜드 해역에서 수면 위로 펄떡거리며 뛰어오른 참치를 처음 건진 것을 시작으로 출어 108일 후 부산항으로 돌아왔다. 당시 지남호에는 10t 가량의 참치가 실려 있었다.


윤 선장은 이듬해인 1958년 다시 지남호를 이끌고 출항해 남태평양 사모아 근해에서 1년 3개월 간 조업하며 무려 100 여t에 달하는 어획고를 올렸다. 이때 현 동원산업 김재철 회장이 무급 실습항해사로 승선하여 윤정구 선장으로부터 조업 기술을 익힌 것은 유명한 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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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불과 10년여 만에 우리나라 참치 어선은 ‘지남호’ 한 척에서 850척까지 늘어났고, 윤정구 선장의 성공적인 조업은 원양강국의 시대를 여는 신호탄이 되었다. 특히 1960~70년대에는 원양어업 수출액이 20억 달러에 달하는 등 요즘의 반도체 ? 자동차 못지않은 한국 근대화 ? 산업화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 뿐만 아니라 윤정구 선장이 오대양을 누리던 개척 정신은 육지에서도 빛을 발해 1980년부터 10년간 오양수산 대표이사직을 맡으면서 오양 진미 시리즈를 개발하는 등 우리나라 수산물 가공산업 발전에도 큰 기여를 했다.

이에 해양수산부는 윤정구 선장의 도전 ? 개척정신, 해양수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높이 평가해 오는 31일 부산 벡스코에서 진행 예정인 제6회 수산인의 날(4월 1일)을 기념해 금탑산업훈장을 수여한다.

해양수산부 김영석 장관은 “파독 광부들의 경우 ‘국제시장’같은 영화를 통해 이들의 노고와 업적을 재조명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들이 있었던 것에 비해 윤정구 선장과 같이 우리나라 수산업 발전을 이끈 주역들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보상이 그동안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 수산인의 날을 기념해 수산업 발전에 공로가 큰 숨은 유공자를 적극 발굴하고, 우리 수산인들의 긍지와 자부심을 고취시켜 수산업의 미래성장산업화를 선도하겠다”며 의지를 전했다.

/김동호 기자 dongho@sedaily.com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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