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향한 검찰 수사는 비자금 조성 의혹이 불거지면서 시작됐다. 이 전직 대통령은 12·12 군사쿠데타와 5·18 광주 민주화 항쟁 관련 책임으로 반란·내란수괴죄 등을 적용받은 것과 별개로 대기업들로 부터 받은 정치자금과 관련해 뇌물죄가 덧붙여졌다.
대법원은 전씨에게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원을 선고했고, 노씨에게는 징역 17년, 추징금 2,628억원을 선고했다. 두 전직 대통령이 기업으로부터 조성한 비자금 중 총 4,833억원을 뇌물로 본 것이다.
전씨는 당시 재판에서 “많은 기업들은 돈을 냄으로써 정치에 안정을 가져올 수 있고 정치가 안정돼야 사업도 제대로 된다고 인식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대가성을 부인했지만 법원은 포괄적 뇌물죄 개념을 들어 대가성을 인정했다.
검찰이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상대로 적용을 검토했던 법리 역시 포괄적 뇌물죄였다. 재임 중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을 통해 대통령 관저에 전달한 100만달러(약 11억원) 등을 뇌물로 수수했다는 혐의를 받았으나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수사가 중단됐다.
이번에 박 전 대통령이 받는 핵심 범죄 혐의도 뇌물수수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를 돕는 대가로 박 전 대통령이 비선실세 최순실씨와 공모해 삼성으로부터 총 298억원의 뇌물을 수수했다고 판단했다. 정치권력과 재벌 사이의 정경유착이 전직 대통령의 구속 위기라는 헌정사 비극을 되풀이하게 만든 꼴이다.
박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 외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강요, 공무상비밀누설 등 12개의 혐의를 추가로 받는다. 수사 대상이 된 다른 전직 대통령들은 적용받지 않은 혐의들이다. 뇌물수수는 박 전 대통령이 받는 혐의 13개 가운데서도 형량이 가장 높다. 뇌물 액수가 1억원이 넘는 경우 형법상 뇌물수수가 아니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이 적용되는데 유죄가 인정되면 무기 또는 징역 10년 이상의 징역형이 내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