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대선판에 몸집불리기 나선 정부부처] "지금이 기회다"...'재벌개혁·4차 산업혁명' 빌미 조직확대 몰두

安후보 '독립성 강화' 공약에 공정위 권한 키우기

기재부는 文 '기획예산·재정경제 분리' 대비 나서

"늘리는 만큼 줄이는 조직규모 총량제 필요" 지적도



행정자치부는 지난해 말 지방자치단체의 자치법규를 관리하는 ‘자치법규과’를 신설했다. 공무원 10명 정원으로 오는 2018년 12월까지 3년간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조직이다. 수많은 지자체 조례를 보다 체계적으로 정비하기 위해서라는 행자부의 표면적인 설명이다. 행자부뿐만이 아니다. 환경부도 지난달 ‘화학제품관리과’와 ‘통합허가제도과’를 신설했다. 국토교통부 역시 3년 수명의 서울~세종고속도로 담당 조직을 새로 만들었다. 이렇게 올 들어서만 새로 생긴 정부부처 조직은 3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물론 그마다 이유는 명확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은 곱지 않다. 청와대의 공백, 조기 대선에 맞춰 약속이라도 한 듯 조직을 키우고 있는 탓이다.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권 말에 부처가 몸집을 불리는 것은 ‘정권 말의 공통적 현상’”이라면서도 “이번에는 양상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정권은 독특하다”며 “최상층의 리더십이 공백 상태이기 때문에 무주공산처럼 다른 시기보다 훨씬 더 우후죽순으로 (이 같은 일이) 늘어나고 있다”며 “정권을 인계하는 협의체에서 이것을 하나의 안건으로 다뤄 무절제한 몸집 불리기를 컨트롤하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정부부처의 ‘한시적 조직 현황’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4일 행자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정부부처의 한시적 조직 근무 공무원 수는 942명. 이는 이명박 정부 말기인 2012년(215명)과 비교하면 네 배가 넘는 수준이다. 한시적 조직은 상황에 따라 상시조직으로 편제가 가능한 만큼 각 부처로서는 포커의 ‘에이스카드’와도 같다.

한시적 조직을 확대하는 것도 문제지만 재벌개혁이나 4차 산업혁명 등 대선의 핵심 이슈를 등에 업고 몸집 불리기에 몰두하는 것도 문제다.


대표적인 예가 공정위의 조직개편 추진이다. 공정위는 12년 만에 조직개편을 위한 용역보고서를 냈다. 재벌개혁은 여야를 불문하고 대부분의 후보들이 가장 앞에 내건 대선공약 중 하나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공정위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것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상태다. 공정위의 조직확대 움직임과 주요 대선후보들의 재벌개혁 공약과 연관 지어 해석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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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는 조직을 키우는 것에 이어 권한까지 더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확대 검토에 이어 집단소송제와 사인의 금지청구권제 등 경제개혁 이슈를 연이어 꺼냈다. 신영선 공정위 부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세종청사에서 열린 36회 기념식에서 집단소송제와 징벌적손해배상제 도입을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집단소송제는 피해자 중 일부가 가해기업을 상대로 소송해서 승소할 경우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들도 배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 증권 분야에 한해 제한적으로 도입했다. 또 징벌적손해배상제는 불법행위를 통해 얻은 이익보다 훨씬 큰 금액을 배상하도록 하는 제도다. 공정위는 올해 초 고의로 소비자의 생명·신체에 중대한 손해를 입혔을 때는 최대 3배까지 손해배상책임을 부과하도록 제조물책임법에 징벌적손해배상제를 도입한 바 있다.

일부 부처는 대선후보 진영에서 우후죽순 쏟아지는 조직개편안을 두고 노골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표출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박근혜 정부의 간판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다. 미래부는 최근 내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을 분리하는 한 유력 대선후보의 정책을 놓고 내부 의견을 수렴했다. 기획재정부가 기획예산과 재정경제를 분리하겠다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등의 공약에 대비한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무원 사회에서 “이번 기회다”라는 생각도 만연해 있다. 경제부처의 한 공무원은 “이번 기회에 조직을 키워보자는 생각들을 많이 하고 있다”며 최근 공직사회의 분위기를 전했다. 기재부로 흡수 합병을 걱정하고 있는 금융위원회도 이번 대선을 기회 삼아 국제금융과 국내금융을 통합한 ‘금융부’로 발돋움해야 한다는 내부의 목소리가 높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시어머니가 없는 지금이 관료들 입장에서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는데 늘어난 조직은 파킨슨 법칙에 따라 줄어들지 않는다”며 “같은 중앙부처 안에서도 권력의 비대칭이 있다. 몸집을 불려야 할 소방·교정 등은 늘리지 않고 권력 부처만 몸집을 늘리는 것은 안 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관관로비라는 게 있는데 결국 힘이 있는 부처만 덩치가 갈수록 커지고 정말 필요하지만 힘 없는 부처들은 로비 등 파워게임에서 밀려 줄어드는 것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물론 이 같은 현상이 공무원 사회의 ‘생존본능’이라고 규정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처를 찢고 붙이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이 같은 관행이 고착화했다는 것이다. 정부의 조직 규모도 총량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세상이 바뀌면 정부 조직이 바뀌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규제는 규제총량제로 통제를 하고 있는데 정부부처는 부풀리기만 하려고 한다. 각 부처가 필요한 게 있으면 늘리지만 말고 그만큼 줄이는 방식의 원칙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세종=김상훈·강광우·서민준기자 ksh25th@sedaily.com

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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