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을 겨룰 대선후보들이 모두 정해졌다. 정치공약을 앞세운 프레임 전쟁에서 정작 중요한 후보들의 공약은 소홀히 다뤄졌다.
수렁에 빠진 대한민국을 이끌 지도자의 정책 구상과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꼼꼼하게 살펴봐야 제대로 된 인물을 뽑을 수 있다.
특히 글로벌 경영환경이 급변하는 가운데 하루속히 저성장 기조를 탈출하려면 무엇보다 산업정책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지적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선주자들의 기업 관련 공약은 겉으로만 상생을 외칠 뿐 ‘대기업엔 규제의 칼날, 중소기업엔 지원의 손길’이라는 포퓰리즘적 도식에 빠져 있다. 서울경제신문은 대선후보 5명의 정책을 설명하면서 자문위원단인 ‘서경 펠로(Fellow)’들의 공약 검증 내용을 싣는 시리즈를 진행한다.
◇보수 진영까지 ‘대기업 배싱(bashing)’ 가세=대선주자들은 진보·보수 진영을 막론하고 일제히 ‘대기업 때리기’에 나선 모습이다.
‘4대 재벌개혁’을 슬로건으로 내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상법 개정(전자투표제 의무화 및 집중투표제 도입 등) △지주회사 요건 강화(지주사 의무소유 자회사 지분 상향) △금산분리를 통한 재벌·금융 분리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권 폐지 △노동자추천이사제 등을 내걸었다.
문 후보가 제시한 대기업 공약 가운데 ‘준조세 전면 폐지’를 제외하면 사실상 모두 반(反)기업 정책에 가깝다는 평가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역시 △재벌의 지배구조 통제 강화 △일감 몰아주기 제재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 등 대기업과 관련한 규제 일변도의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보수 진영의 후보들도 규제 강화라는 측면에서 절대 야권에 뒤지지 않는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는 재벌 총수 일가가 계열사 일감을 몰아받기 위해 개인회사를 설립하는 것을 전면 금지할 방침이다. 총수 일가의 기존 개인회사와 그룹 내 다른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금지하는 방안도 공약집에 넣었다. 재벌 총수 일가와 경영진에 대한 사면·복권도 원천적으로 금지하기로 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는 대기업 정책과 관련해 구체적인 공약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최근 출간된 저서에서 재벌 총수 사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야권 후보들이 주장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대해서도 공감의 뜻을 나타냈다.
◇‘대기업=惡, 중소기업=善’ 이분법=규제 일변도인 대기업 정책과 달리 대선주자들의 중소기업 공약은 ‘지원 강화 및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부분 역시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현상이다.
대선후보들은 일제히 정부조직 개편을 통해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하드웨어’를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문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각각 중소벤처기업부·중소상공인부 신설을 약속했으며 유 후보는 중소기업청을 창업중소기업부로 승격하겠다고 공약했다.
특히 유 후보는 성공한 창업자에게 증권시장 상장과 기업 인수합병(M&A) 요건을 더 용이하게 하고 벤처기업이 스톡옵션을 행사할 때 5,000만원까지는 비과세 혜택을 주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문 후보는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검찰·경찰·국세청·공정위원회·감사원·중소기업청 등이 참여하는 ‘을지로위원회’를 구성할 방침이다.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청년에게 2년간 월 50만원씩 총 1,200만원을 지원한다(안 후보)’와 같은 땜질식 처방도 눈에 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