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온실가스 배출권 부족으로 가격이 이상 급등하자 과다 이월 물량을 차기 공급 물량에서 차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수급 안정책을 내놓았다. 제도 결함으로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않고 시장 안정화라는 명분으로 인위적인 징벌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5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배출권 거래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했다. 배출권 거래제도는 기업들이 정부에서 할당받은 배출권 범위 내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부족할 경우 시장에서 사도록 한 제도로 2015년부터 시행됐다. 유럽 등 선진 배출권 거래시장 제도를 벤치마킹했다.
하지만 개설 초기부터 ‘바이어(buyer)’만 있고 ‘셀러(seller)’는 없는 시장이 될 것이란 지적이 나왔다. 우려는 적중했다. 초기에는 거래량이 사실상 전무 했고 본격적인 거래가 이뤄지기 시작한 지난해부터 수급 불안정으로 본격화됐다. 지난해 평균 톤당 1만 6,737원에서 올해 1월 2만 751원, 2월 2만 4,300원으로 급등했다. 3월 평균가격(2만 1,462원)은 여전히 2만원이 넘는다. 공급 물량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문제의 본질은 기업들이 배출권을 시장에 내놓지 않는 것이다. 지금은 배출권에 여유가 있지만 미래의 불확실성에 시장에 내놓지 않고 다음 연도로 이월하고 있다. 정부가 2015년도 배출권을 정산한 결과 총 522개 할당대상 기업 중 283개 기업이 여유 배출권 1,550만톤을 보유했으며, 이 가운데 88%인 1,360만톤을 이월했다. 반대로 배출권이 부족한 기업들은 자신에게 할당된 다음연도 배출권을 앞당겨 차입하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시장 안정화 방안의 골자는 1차 배출권 거래제 기본 계획(2015∼2017년) 하에서 남은 배출권을 2차 계획기간(2018∼2020년)으로 과다 이월할 경우 추후 배출권 할당 시 불이익을 주는 것이다. 1차 계획기간 ‘연평균 할당량의 10%+2만톤’을 초과해 이월할 경우 초과 이월량만큼 2차 계획기간 할당량에서 차감한다. 이 같은 조치에도 공급물량 부족이 계속되면 정부가 보유한 예비분 1,430만 톤을 유상 공급할 예정이다.
정부는 또 1차 계획기간 20%였던 차입 한도를 2차 계획기간 10%로 낮추기로 했지만 수요 분산 차원에서 이를 15%로 조정하기로 했다. 다만 2차 계획기간 첫해인 2018년 차입비율이 클수록 다음 해 차입 한도가 많이 줄어들도록 해 차입물량을 점차 줄이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2018년 15%를 차입하면 2019년에는 절반인 7.5%만 차입할 수 있다.
배출권 의무이행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배출권이 부족한 기업이 사지 못하면 과징금을 물 수 있다는 게 정부의 논리다. 하지만 시장의 생각은 다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국내 현실과 맞지 않게 온실가스 배출권 물량을 과다하게 줄이겠다고 발표를 하고 시장에 책임을 전가하는 꼴”이라며 “애초에 맞추지 못할 기준을 제시하고 과징금을 도입한 것도 모라자 이제는 추가 징벌제도를 도입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는 이날 중장기적 시장 활성화 대책도 내놓았다. 국내 기업 등이 해외 온실가스 감축사업 시행으로 획득한 배출권을 2018년부터 국내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세부 인정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다. 단순 매매 거래 외에 2016년 배출권과 2017년 배출권을 교환하는 스와프(Swap) 거래 등 다양한 형태가 가능하도록 절차를 개선하기로 했다. 내년부터 유상할당 방식으로 배출권 경매를 매달 실시하고 시장조성자(Market Maker) 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다.
/세종=김정곤기자 mckid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