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이민화의 4차 산업혁명] 개발보다 융합·활용에 초점을

이민화 창조경제연구이사회 이사장·KAIST 초빙교수

<27>기술정책

기술정책기술규제·융합 장벽 혁신 등

정부는 플랫폼 역할에 집중

기존 교육 패러다임도 대전환

창조·협력의 인재 육성 필요

이민화 창조경제연구이사회 이사장·KAIST 초빙교수이민화 창조경제연구이사회 이사장·KAIST 초빙교수


현실과 가상이 융합하는 4차 산업혁명은 융합제도와 융합기술로 구현된다. 이 중 제도가 기술보다 중요도와 시급성·비용 측면에서 훨씬 더 우선순위에 있음은 이미 논의한 바 있다. 이제 제도에 이어 4차 산업혁명의 기술정책을 살펴보려 한다.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은 현실과 가상의 융합이고 기술은 그 수단이다. 4차 산업혁명을 개별기술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코끼리 다리를 만지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4차 산업혁명은 현실과 가상이 4단계로 융합해 인간을 위한 가치를 창출한다는 것이 본질이다. 즉 ①현실 세계를 디지털화해 ②클라우드에 빅데이터를 만들고 ③인공지능(AI)이 도출한 예측과 맞춤의 가치로 ④인간을 위한 현실 최적화를 달성한다는 것이 필자가 보는 4차 산업혁명 기술의 개요다. 현실을 가상화하는 디지털화 기술과 가상을 현실화하는 아날로그화 기술이 AI를 매개로 융합하는 기술 모델을 ‘AI와 12 기술 모델’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

기술에 관한 국가의 역할은 기술표준을 만들고 기술규제를 혁신하고 융합을 저해하는 진입 장벽을 걷어내고 초기 시장인 테스트베드를 형성해주는 플랫폼 역할에 집중돼야 한다는 것이 글로벌 패러다임이다. 대한민국은 과거 추격형 경제의 경로의존에 따라 지금도 국가가 기술 개발을 주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연간 20조원이라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계 최대의 국가연구비를 투입하고 있으나 성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최하 수준에 불과하다. 국가 주도의 연구는 이제 거대 프로젝트와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초기 연구로 패러다임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구체적으로 AI, 사물인터넷(IoT), 생체인터넷(IoB), 빅데이터, 3차원(3D) 프린터, 로봇, 증강·가상 현실, 블록체인, 플랫폼, 서비스디자인 등이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기술들이다. 그런데 이들 개별기술은 원칙적으로 시장에서 경쟁 발전해야 한다. 국가는 시장실패 영역에 국한해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국가에 중요한 것은 기술 개발보다 기술 활용인데 알파고 쇼크 이후 1년이 지난 지금도 AI의 활용은 극히 미미한 실정이다. 기술이 수단이 아니라 목표라고 착각한 결과 AI 개발예산은 있는데 활용 정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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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에서 국가의 기술정책은 상용화 기술 개발 지원에서 기술을 활용한 사회문제 해결로 전환돼야 한다. 사회적 문제를 현실과 가상의 기술 융합으로 풀어내는 개방혁신이 왕성하게 일어나는 혁신 생태계가 구축돼야 한다. 교육·의료·관광·환경·에너지·국방 등 사회 각 분야의 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와 대학·연구소·산업계가 개방·연결돼야 한다. 연결을 가로막는 진입 장벽과 규제 장벽을 없애고 연결을 촉진하는 기업가정신을 촉발시키는 것이 개방혁신 정책의 시작이다. 개방혁신을 확산시킬 이해관계자들을 고려한 주식 옵션과 공유 플랫폼 정책도 소중한 국가의 역할이다.

그리고 혁신의 중심에 대학이 있어야 한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가 현실 문제를 기업과 연구소, 여러 학과가 동참해 풀어가는 프로젝트 기반의 학습으로 해결한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회문제의 해결과 더불어 4차 산업혁명형 ‘창조와 협력’ 인재를 키우는 프로젝트 기반 학습으로의 교육 패러다임 대전환이 요구된다.

혁신 생태계에서 탄생한 기술은 지식재산권으로 보호돼 자산이 되고 오픈소스로 공유될 때 확산이 가속화된다. 기업가정신을 가진 창업가가 기술을 사업화하도록 혁신 자본을 육성해야 한다. 혁신 자본은 코스닥, 인수합병(M&A) 같은 회수시장을 통해 확대된다. 사업화로 가는 관문인 테스트베드의 제공은 주된 시장실패 영역이므로 국가정책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일정 규모 이하의 사업의 규제를 유예하는 규제 샌드박스(안전공간) 제도는 절대적으로 시급한 정책이다.

4차 산업혁명의 기술정책은 개별기술 지원이 아니라 기술의 융합 활용을 촉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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