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라이프

4대종교 혼이 깃든 신령의 고장...'짭조름한 진미' 굴비 한상 뚝딱

[신심·미각 공존하는 영광]

마라난타가 불교 들여와 전파한 곳

원불교 성지, 개신·천주교 순교지 등

발길 닿는 대로 가면 성스런 유적지

법성포엔 줄줄이 매달린 굴비들

해풍에 실려오는 냄새에 식욕 돋아

1~4월에 잡는 알배기가 맛 최고

영광의 상징이라면 뭐니 뭐니 해도 굴비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고려 인종 때 반란을 일으켜 법성포로 귀양을 왔던 이자겸은 말린 조기 맛을 보고 혼자 먹기가 아까워 임금에게 이 물고기를 진상했다.영광의 상징이라면 뭐니 뭐니 해도 굴비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고려 인종 때 반란을 일으켜 법성포로 귀양을 왔던 이자겸은 말린 조기 맛을 보고 혼자 먹기가 아까워 임금에게 이 물고기를 진상했다.


봄바람을 맞으면서 남쪽으로 향했다. 고속도로 회덕분기점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달리길 두 시간. 영광에 다다르자 짭조름한 냄새가 바람에 실려왔다. 영광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 냄새다. ‘신령스런 빛’의 고장 영광(靈光), 성스러운 불법(佛法)이 깃든 포구 법성포(法聖浦)에서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는 거리를 오가는 이들에게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짭짤한 그 냄새는 길 양옆에 미라의 형상으로 건조되고 있는 굴비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영광은 우리나라에서 번성하는 4대 종교의 정신이 깃든 곳이다. 고승 마라난타가 파키스탄의 간다라를 출발, 둔황~장안~난징~저장을 거쳐 영광으로 들어와 불교를 전파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마라난타가 첫발을 디뎠던 법성포라는 지명을 풀어보면 ‘성인이 불교를 전래한 포구’라는 종교적 의미가 함축돼 있다. 영광에는 이 밖에도 천주교와 개신교 순교지, 자생 종교인 원불교 영산성지까지 빼곡히 들어서 있고 4대 종교의 문화유적지들도 곳곳에 즐비하다.




영광은 마라난타가 파키스탄으로부터 불교를 가지고 들어온 곳이지만 불교 외에 천주교·개신교 순교지가 있고 원불교가 발원한 곳이기도 하다.영광은 마라난타가 파키스탄으로부터 불교를 가지고 들어온 곳이지만 불교 외에 천주교·개신교 순교지가 있고 원불교가 발원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광의 상징이라면 뭐니 뭐니 해도 굴비다. 고려 인종 때 반란을 일으켜 법성포로 귀양을 왔던 이자겸은 말린 조기 맛을 보고 혼자 먹기가 아까워 임금에게 이 물고기를 진상했다. 이자겸은 왕에게 보내는 생선에 굴비라는 이름을 붙였다. ‘굽을 굽(屈)’과 ‘아닐 비(非)’자를 써서 귀양은 왔지만 소신은 굽히지 않겠다는 속내를 비친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영광 굴비가 유명세를 얻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다.

강재구 법성포굴비사업단 공장장은 “법성포는 조기의 집하지였고 이를 잡아오는 바다는 배로 30분 거리인 칠산어장이었다”면서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팔뚝만 한 조기가 잡혔는데 요즘은 그렇게 큰 조기를 구경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조기의 크기는 줄었어도 영광군에서 거래되는 물량은 연간 2,000억원에 이른다. 국내 조기잡이 배들이 모두 영광으로 모여들어 잡은 생선을 부리고 이것들이 경매를 거쳐 시장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조기를 건조해 만든 굴비는 크기에 따라 ‘장대’와 ‘오가’라는 이름을 얻는데 오가는 20~21㎝ 크기로 한 두름에 열 마리씩 엮어 판매한다. 오가는 다시 소딱·중딱·대딱으로 나뉜다. 요즘 시세는 오가 한 두름에 50만~80만원을 호가해서 마리당 5만~8만원에 팔려 나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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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장대는 16~17㎝ 크기로 다시 소장대·중장대·대장대로 나뉜다. 굴비가 쇠고기보다 비싼 이유를 물었더니 강 공장장은 “조기는 워낙 성장이 더뎌 1년에 1㎝도 못 자란다”며 “따라서 크기가 큰 오가는 주로 선물용으로 나가는 편”이라고 말했다.

주부들에게 인기가 있는 장대는 18㎝ 정도 되는 것이 제일 많이 팔리는데 요즘 시세는 4만~5만원선에서 형성되고 있다. 조기의 시세가 연중 달라지는 것은 잡히는 철이 봄가을 두 차례로 갈리기 때문이다. 알배기는 1~4월 중에 잡고 가을조기는 9~11월에 주로 잡는다.

가을조기와 봄조기는 값 차이가 많이 나는데 그 이유는 알배기가 맛이 좋아 인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19~20㎝짜리 조기 135마리가 들어 있는 상자 한 짝의 경우 가을에는 30만원선에서 가격이 형성되지만 봄에는 50만~60만원으로 두 배 정도 차이가 난다. 다른 생선들이 선어 상태로 소비되는 데 비해 말린 굴비의 인기가 높은 것은 맛도 맛이지만 가공 공정에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다.

영광에서 굴비가 생산되는 것은 인근의 염전에서 생산되는 질 좋은 소금 때문이다. /사진제공=영광군청영광에서 굴비가 생산되는 것은 인근의 염전에서 생산되는 질 좋은 소금 때문이다. /사진제공=영광군청


잡아온 조기를 굴비로 만들기 위해서는 위판 후 크기에 따라 선별하고 세척을 거쳐 염장한다. 4~5시간 정도 염장을 거친 후에는 엮어리꾼들이 나선다. 숙련된 엮어리꾼은 시간당 50두름을 엮지만 일반적으로 30~40두름 엮는 게 보통이다. 강 공장장은 “요즘처럼 건조한 해풍이 부는 계절에 말린 굴비의 품질이 최고”라며 “하루 정도 말려서 동결한 후 냉동고에 저장해놓고 판매한다”고 말했다.

굴비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부세라고 불리는 건조 수조기를 구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부세는 사이즈가 크지만 가격이 저렴해 외지에서는 굴비 행세를 하기도 한다. 조기와 부세는 같은 민어과의 물고기지만 부세는 배의 옆선이 선명한 데 비해 참조기는 배 부분이 노랗고 비늘이 크다. 굴비한정식 전문점 ‘한울타리’를 운영하는 김경희씨는 “굴비는 구워 먹고 부세는 쪄서 먹는 게 맛있다”면서 “염장한 굴비로 매운탕을 끓이면 비린내가 많이 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영광)=우현석객원기자

문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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