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리아에서 벌어진 ‘독가스 공격’을 계기로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에 대해 강경태세로 돌아선 가운데 미국과 러시아가 시리아 사태 대응을 놓고 정면 충돌하고 있다.
시리아 내 화학무기 공격에 대한 현장조사를 주요 내용으로 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과 관련해 시리아의 우방국인 러시아가 강력 반발 입장을 밝힌 반면 미국은 유엔의 공조가 이뤄지지 못할 경우 독자행동까지 감행하겠다며 ‘강대강’으로 맞서고 있다.
유엔 안보리는 5일(현지시간) 오전 뉴욕본부에서 열린 긴급회의에서 화학무기로 72명의 민간인 사망자를 낸 시리아 사태를 화학무기금지기구(OPCW)가 전면 조사해 유엔에 보고하도록 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상정했다. 미국·영국·프랑스가 작성한 결의안 초안은 화학무기 사용의 배후를 밝히기 위해 공격 당일 시리아 정부의 비행기록과 군사작전 정보 등을 유엔에 제공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사팀이 화학무기 공격과 관련된 공군기지를 방문할 수 있도록 시리아 정부가 허용해야 한다는 조항도 포함됐다.
주목되는 점은 미국의 시리아 정책 변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국을 방문한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시리아 화학무기의 민간인 살상 의혹이 “인류에 대한 끔찍한 모욕”이라며 “무고한 어린이들을 죽인 것은 나에게 있어 기준선을 많이 넘은 행위”라고 비난했다. 그는 또 “시리아에 대한 내 태도가 매우 많이 바뀌었다”며 “알아사드 정권의 악랄한 행동은 용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알아사드 정권 유지를 묵인하는 입장을 보였던 트럼프 정부가 앞으로 시리아 내전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도 이날 “시리아 정부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잔혹한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며 “유엔이 단합된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다면 개별 국가가 독자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이 같은 입장 전환은 화학무기 공격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러시아와도 대립각을 세운 것으로 과거 알아사드 정권의 이익에 반하는 유엔 결의안들을 거부권 행사로 부결한 러시아를 향한 최후통첩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유엔 결의안에 강력히 반발하며 자체 결의안으로 맞섰다. 유엔 주재 러시아 대표부 대변인은 “블라디미르 사프론코프 유엔 주재 차석대사가 사건의 실질적 조사에 초점을 맞춘 자체 결의안 초안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사프론코프 대사는 이날 안보리 회의에서 “서방 결의안은 불필요하고 급조됐으므로 동의할 수 없다”며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객관적으로 조사하는 일”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한편 왈리드 알무알렘 시리아 외무장관은 6일 시리아군이 반군 장악지역인 셰이칸을 공습할 당시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의혹을 차단하면서 “알카에다와 연관된 테러조직이 독극물 창고를 폭파했다”며 책임을 반군에 돌렸다. 이는 시리아 정부를 지원해 온 러시아 국방부의 입장과 동일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