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이래 처음으로 발랄하고사랑스러운 1인 2역 캐릭터에 도전”
남자 배우들이 장악한 충무로에서 여배우로 입지를 굳힌 천우희는 스스로를 “갈 길이 먼 배우이다”고 했다. 칸 영화제에 진출한 영화 ‘곡성’,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한공주’ 등 실력파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굳힌 그이지만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에 대해서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요.”라며 쑥스러워했다.
그러나 곧 “배우에게 연기를 잘 한다는 칭찬은 언제 들어도 좋은 것 같아요.“라며 생긋 웃는다.
천우희는 5일 개봉한 이윤기 감독의 영화 ‘어느날’에서 뜻밖의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후 영혼이 되어 새로운 세상을 보기 시작하는 여자 미소 역을 맡았다. 아내가 죽고 희망을 잃은 채 살아가는 남자 김남길에게 치유를 안기는 인물이다.
영혼을 치유하는 미소 역을 맡은 천우희가 이번 영화에 가장 끌린 이유는 스토리는 물론 영혼과 육체의 부재를 담은 독특한 캐릭터 ‘미소’ 때문이란다.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은 후 영혼이 되어 깨어난 미소. 병실에 누워 혼수상태에 빠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신이 영혼이라는 것을 알게 된 미소는 당황하지만, 생전 처음 경험하는 새로운 세상에 신기해한다.
강수와 미소는 모두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지만 내색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우리네 모습과 닮았다. 두 인물은 관객들로 하여금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게 하는 동시에 그리움, 이별, 위로 등 다양한 감정선을 이끌어내며 치유의 메시지를 선사한다.
영화의 원래 제목은 ‘마이엔젤’이었다. 천우희는 “‘마이엔젤’이 조금 낯간지러운 느낌이 있어서 최종 제목인 ‘어느 날’이 더 좋다“고 했지만 감독의 의도가 담긴 제목이다. 미소가 아픔을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세상을 밝은 쪽으로 바라보는 어떤 하나의 요정 같은 이미지로 등장 하기 때문이다. 자꾸 미소를 피하려고만 하는 강수. 그를 천사처럼 끌어당기는 미소의 이야기는 기대 이상의 깨달음을 안긴다.
‘어느 날’ 영화를 상처를 입고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보기도 하지만, 천우희는 “남겨진 사람 혹은 떠나간 사람에 대한 구분 보다는 상처를 마주할 때 치유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게 아닐까?”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 보였다.
“결국엔 제가 맡은 미소 입장으로 바라보는 게 크긴 해요. ‘마이 엔젤’이란 제목이 암시하듯 미소가 안내자로서 역할을 하고 본인이 치유를 받아요. 결말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미소도 자기의 아픔과 상처를 마주할 수 있었던 게 강수 덕분이잖아요. 그래서 누군가로 인해 아픔을 치유하다기 보단 아픔에 대해 마주하는 것 자체가 치유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요.”
천우희는 영화 속에서 극중 영혼으로 나오기 때문에 병원에 누워있는 미소와 밖에서 돌아다니는 미소를 1인2역처럼 연기해야 했다. 특히 영혼이 되어 스스로를 바라보는 장면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감정적으로도 어렵지만 기술적으로도 어려운 게 있더라. 시선처리나 움직임 각도 등이 맞아야 하니까 신경 써야 할 게 많더라.”
그는 식물인간 인 채로 병원에 누워 있는 미소의 모습을 사실적인 모습으로 살려냈다. 그 속에 배우의 숨은 노력이 엿보인다. 여배우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누워있는 게 아닌, 실제 환자가 누워 있는듯한 모습이다. 입은 살짝 벌어져 있고, 숨소리도 거칠다. 그는 “남길 오빠는 누워있어서 편안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절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할아버지가 병상에 오래 누워있었어요. 병상 침실 장면에 대해선 조금 더 사실적인 부분을 녹여내고 싶었어요. 실제론 이것보다 더 리얼했으면 했는데 감독님은 거기까지는 원하시지 않았어요. 전 스크린 너머까지 정서나 상태가 전달되기를 바랐어요. 가끔 영화를 보면, 배우가 연기를 너무 잘 하는데 안 와 닿는 경우가 있잖아요. 전 관객들이 진짜로 느꼈으면 했어요.”
초점을 잃은 눈빛과 케인에 의지해 한 발짝씩 어렵게 걸음을 딛는 시각장애인 연기는 더 열심히 분석하고 준비했다. 흉내 내는 것처럼 보여선 안 되기 때문에 더 마음으로 다가갔다고 한다. 그는 “어렵다고 말하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쉽진 않았던 건 사실이었다.”고 촬영 현장을 회상했다.
“감정에 몰입하다보니까 눈으로 사물을 보고 있다는 것에 대해 망각하고 있다고 할까? 그렇게 찍는데, 저도 모르게 자동 반사를 한다는 어려움에 직면했어요. 예를 들면 몇 번의 연습 끝에 의자가 여기 놓여 있다는 자동반사가 나와서 제 행동이 달라지는 것이요. ”
극 중, 사람과 영혼으로 만난 두 남녀가 교감하며 서서히 변화해 가는 과정이 관람 포인트이다. 물론 ‘어느 날’을 명확하게 한 줄로 표현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 속엔 남겨진 사람과 떠나는 사람이 만나는 순간, 깨달음과 치유의 지점, 삶과 죽음이 만나는 그 ‘어느 날’등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대중을 납득시키고 설득시키는 배우로 성장한 13년차 배우 천우희는 2009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를 통해 “나도 연기라는 걸 평생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배우가 ‘어떻게 찍히느냐’를 걱정하는 것이 아닌 ‘영화 전체를 생각하다’ 보면 연기에 대한 재미를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고 했다.
웃는 연기도 우는 연기도 모두 예쁘다고 하자, “배우가 여기서 예쁘게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상하게 나온다는 경험담도 들려준다.
연기 잘하는 배우이자 좋은 배우로 기억되고 싶다는 천우희의 차기작은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가 될 예정이다. 최종 캐스팅이 픽스되면 이야기를 하겠다며 말을 아낀 그는 “동명의 리딩 공연부터 연극까지 다 챙겨봤다”면서 “말만으로 공간을 꽉 채우는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와 내용의 완성도가 정말 파격적이고 충격적이었다”고 기대감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기회가 되면 언제든 연극 무대에 오르고 싶어요. 연기적인 역량이 넓어지지 않을까요? 꼭 하고 싶습니다”고 차후 도전 분야에 대해 이야기했다.
/서경스타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