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특파원칼럼] 트럼프와 시진핑의 화두, 한반도

손철 뉴욕 특파원






미국에서 한국 대통령의 빈자리를 새삼 느끼게 되는 풍경이 잦아지고 있다. 취임 100일을 3주 앞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하루건너 정상회담을 열고 있어서다. 영국·일본·캐나다·이스라엘·독일 등 주요 동맹국과 정상외교를 일찌감치 마친 트럼프는 지난 3일(현지시간) 인권 탄압 논란에도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특유의 뜨거운 악수를 나눴고 5일에는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과 머리를 맞댔다. 백악관 지척에 위치한 트럼프 호텔이 각국에서 온 외교관과 수행원·취재진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모습을 보면 문득 달력을 바라보며 ‘한국도 대통령 탄핵이 없었다면 지금쯤 정상회담을 했거나 앞두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8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룬 트럼프 정부와 조속한 한미 정상회담이 중요하다고 해서 탄핵 결정의 당위성이 훼손될 여지는 없다. 정상회담을 비선 측근의 사익 챙기기에 이용했던 정권이고 보면 오히려 외교·안보정책이 더 망가지고 혼란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을 막은 것 아닌가 하는 안도감마저 생긴다. 여권 출신 대선 후보가 2014년 그 유명한 “청와대 얼라들이 한 거냐”고 질타한 발언은 그 직전에 있었던 한미 정상외교와 관련한 난맥상을 놓고 나온 것이었다. 당시 타깃은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이었지만 윤병세 외교장관을 앞에 두고 ‘정신 차리라’고 한 쓴소리였다. 하지만 외교·안보 테크노크라트들은 사명감과 전문성보다는 자리 보존에만 급급해 미·중·일·러 4강 외교는 온전한 곳보다 구멍 난 자리를 찾는 것이 쉬운 지경이다.


빠른 만남보다 중요한 것은 성과 있는 좋은 만남이라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6일부터 이틀간 플로리다주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갖는 미중 정상회담의 의미는 남다르다. 특히 한반도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두 강대국 정상이 양국 무역문제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이상으로 북핵 및 미사일 문제 해법을 중대 의제로 상정하고 1박 2일간 용쟁호투를 벌이게 돼 그 결과에 비상한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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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5일 요르단 국왕과 공동 기자회견에서도 북핵 문제에 대해 “큰 문제를 안고 있는데 내가 그것을 책임질 것”이라는 의지를 보였다. 그의 지금까지 언행으로 볼 때 말이 얼마만큼 행동으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겠지만, “북한은 인류의 문제”라고 연일 북한 이슈를 강조하는 그가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의 대북 ‘거리 두기’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일 것이 확실시된다. 백악관이 최근 대북정책 검토를 마치며 “북한 핵 미사일이 4년 내 미 본토를 공격할 능력을 갖출 것”이라고 평가한 점을 볼 때, 오바마 전 정부가 이란 핵 해결에 몰두했듯이 트럼프 정부가 북핵 문제에 전력투구할 가능성은 적지 않다.

트럼프의 기세가 드세지만 최고지도자 5년 차인 시진핑 주석 역시 안보 측면에서 중대한 이익이 걸려 있는 한반도에서 중국의 기존 전략을 쉽사리 후퇴시키거나 바꾸지 않을 것은 명약관화하다. 대국의 체면 손상을 무릎 쓰고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온갖 책략으로 끝까지 무산시키려 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한반도에 폭풍우를 몰고 올 수 있는 협상이 플로리다 휴양지에서 열리지만 한국의 발언권은 거의 없는 상황에 정부는 물론 대선 주자들도 절치부심하며 주의를 쏟으리라고 본다. 북핵 문제를 놓고 미중일의 새 카드를 어느 정도 확인하고 콜로세움에 들어서는 새 정부의 장점을 살리려면 남은 한 달간 진중하게 한반도를 둘러싼 변화들을 주시하며 내공을 쌓아야 한다.

대선 주자마다 외교 철학과 한반도 비전이 있겠지만, 정상외교 공백기에도 워싱턴과 베이징·뉴욕 등지에서 노심초사하며 한 가지 정보라도 더 모으기 위해 네트워크를 만들고 전략을 짜고 있는 외교 현장의 목소리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10개월 먼저 출범하게 될 다음 정권이 축복이 되려면 국정의 첫 단추를 잘 끼우는 일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준비된 외교전략과 정권 초기 추동력을 잘 아울러 한국의 새 대통령이 각국 정상과 당당하고 자신 있게 대좌하기를 기다린다. /runiron@sedaily.com

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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