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의 실체 없는 회사 이용, 여러 단계 거쳐 미국 본사로 수익 흘러 들어가
국세청, 아일랜드 ‘오라클 서비스’ 조세회피용 도관회사로 결론...3,100억대 세금 부과
오라클의 국내 법인인 한국오라클은 한국에서 번 수익 중 일부를 소프트웨어 사용료 명목으로 미국 본사에 보내고 있다. 연간 수천억원 수준이다. 이는 오라클 본사가 한국에서 수천억원의 수익을 거뒀다는 뜻이기 때문에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과세 원칙 측면에서도, 한국과 미국이 맺은 조세조약에 따라서도 사용료에 대한 세금을 한국에 내야 한다. 한미 조세조약은 국내 기업이 미국 기업에 지식재산권 사용료 등으로 지급하는 돈의 15%를 한국에서 원천징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국오라클은 지난 2008년 전까지만 해도 규정에 따라 성실히 세금을 납부했다. 그런데 2008년 돌연 사용료 지급지를 미국 본사에서 아일랜드에 세운 ‘오라클서비스’로 바꾼다. 한·아일랜드 조세조약을 적용하면 사용료 수익에 대한 세금을 한국에 낼 필요가 없고 아일랜드에 세금을 낼 때도 6.25%의 낮은 세율이 적용되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일종의 ‘절세 쇼핑’이다. 이런 방법으로 오라클은 2008년에서 2014년까지 총 2조여원에 이르는 사용료 소득에 대한 세금을 한국에 한 푼도 내지 않았다.
그런데 국세청이 오라클 현장조사를 벌인 결과 절세를 넘어 편법적인 조세회피로 보이는 정황이 여럿 발견됐다. 우선 아일랜드 회사가 받은 사용료 수익의 대부분은 여러 단계를 거쳐 결국 미국 본사로 흘러 들어갔다. 아일랜드 회사가 사용료 소득의 실제 ‘수익적 소유자’라면 절세로 봐줄 수 있지만 단지 미국 본사에 돈을 전달하는 ‘통로’에 불과했다면 조세회피일 가능성이 크다.
회사의 실체도 불분명했다. 국세청이 아일랜드 과세당국에 문의한 결과 “오라클서비스는 2009년에서 2013년까지 직원이 없었고 세법상 아일랜드 거주자도 아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일랜드 국세청에 따르면 오라클서비스는 아일랜드에도 법인세나 원천세를 내지 않았다. 심지어 오라클이 아일랜드 회사 임직원이라고 하면서 제출한 명단도 9명에 그쳤다. 국세청은 이런 사실들을 종합한 결과 아일랜드의 오라클서비스는 실제 사업 수행 목적이 아닌 조세회피 용도로 만든 ‘도관회사’라는 결론을 내고 오라클에 3,147억198만원의 법인세를 물렸다.
오라클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국세청 처분에 반발해 조세심판원에 심판을 청구한 것이다. 심판 과정에서 “오라클서비스는 미국 본사로부터 소프트웨어 판매 권한을 이관받았고 이에 따라 실제 사업 활동을 하는 회사”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조세심판원은 오라클의 해명보다 국세청의 조사 결과가 더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지난해 11월 청구를 기각했다. 오라클은 심판원 결과에도 불복해 법원에 소송을 낸 상태다.
오라클의 조세회피 여부는 최종적으로 법원에서 가려지겠지만 말만 무성했던 다국적 글로벌 기업의 조세회피를 국내에서 적발한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성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국세청은 이전에 외환은행 헐값 매각으로 논란을 일으킨 론스타도 약 5,000억원 규모의 조세회피를 적발한 적이 있지만 론스타는 사모펀드라 글로벌 기업으로 보기는 어렵다.
한편으로는 이번 사건을 통해 다국적기업의 조세회피가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한 만큼 이들에 대한 철저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오라클 정도의 세계적 기업이 한국에서 조세회피 꼼수를 부렸다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편법행위가 더 많이 있을 수 있다”며 “다국적기업에 대한 세금징수 집행을 철저히 하고 조세회피를 예방할 수 있는 제도 개선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세당국 관계자는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원칙에 따라 글로벌 기업도 조세회피가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종=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