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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톡] “누구냐 넌!”..‘미녀와 야수’·‘시간위의 집’ 속 기이한 존재

그곳엔 ‘나’만 사는 줄 알았다. 그런데 곳곳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은 왜일까. 기이하다. 이내 발견한 인기척의 정체, 현실의 일반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은 마법에 걸려 있었다.

최근 극장가에 자리한 두 영화 ‘미녀와 야수’와 ‘시간위의 집’을 살펴보면, 주거공간의 개념이 이색적으로 창조돼 있다. 그 안에 살아 움직이는 특이 존재가 있음으로써 공간에 생동감이 생긴다. 단지 주인공이 생활하는 공간에서 이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간섭’하는 역할이 된 것. 이 같은 주거공간의 이색 변주는 주인공을 딜레마에 몰아넣는 효과적인 장치가 된다. 그 분위기는 ‘미녀와 야수’처럼 환상적이기도, ‘시간위의 집’처럼 공포스럽기도 하다.




‘미녀와 야수’(왼쪽) ‘시간위의 집’ 포스터‘미녀와 야수’(왼쪽) ‘시간위의 집’ 포스터




영화 ‘미녀와 야수’(감독 빌 콘돈)에서 벨(엠마 왓슨)은 성에 갇힌 아버지 모리스(케빈 클라인)를 구출하기 위해 그 곳으로 향한다. 모리스는 벨에게 “성이 살아있다”며 도망칠 것을 권유한다. 하지만 벨은 아버지 대신 성에 갇히기로 결심 한다. 그때 처음 마주친 야수(댄 스티븐스)의 존재에 겁먹기보다 당차게 응수함으로써 벨이 성에 융화될 가능성을 암시 했다.

외로이 갇혀있는 벨에게 ‘달그락’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눈 씻고 둘러봐도 주위에 사람은 없다. 곧 벽을 타고 다가온 촛대. 움직이는 사물의 도움으로 벨은 감옥에서 탈출한다. 그리고 말소리가 들리는 곳을 바라보니 아까 그 앤티크한 촛대를 비롯해 시계, 주전자, 찻잔, 깃털, 피아노, 옷장이 있다. 사물이 움직이고 말을 하는 것.

이들은 주인인 왕자를 야수에서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려 벨의 거주 도우미를 자처한다. 장미 꽃잎이 모두 질 때까지 야수에게 진실한 사랑을 찾아줘야 한다. 그래야 왕자와 함께 저주에 걸린 자신들도 인간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이들은 모의 작당 후 벨과 야수의 오작교로 거듭난다.


촛대와 시계는 깨알 같은 콤비로 분위기를 주도한다. 옷장은 벨에게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히고, 주전자와 찻잔은 풍성한 음식 대접을, 깃털과 피아노는 벨과 야수의 식사와 춤에서 시각, 청각적으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들의 앙상블로 만들어진 ‘Be Our Guest’ 파티신은 ‘미녀와 야수’ 속 최고의 명장면으로 남는다. 결국 이들의 노력은 벨와 야수의 핑크빛 무드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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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미녀와 야수’, ‘시간위의 집’ 스틸/사진=영화 ‘미녀와 야수’, ‘시간위의 집’ 스틸


이와는 반대로 집안의 공포스런 분위기로 주인공을 ‘멘붕’에 빠트리는 영화가 있다. ‘시간위의 집’(감독 임대웅)이다. 남편과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미희(김윤진)는 25년의 수감 생활 후, 사건이 발생한 그 집으로 돌아온다. 남편이 죽던 당시를 떠올리며 그 날 눈앞에서 아들이 실종된 원인을 파악하러 나선다.

25년 만에 다시 찾은 집은 어딘가 황량하고 음산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분명 모든 가족을 다 잃고 혼자 남겨진 터인데, 집안 구석 구석에서 생전 처음 보는 이들과 마주한다. 한두 명도 아닐뿐더러 의상, 행색, 나이 대도 각양각색이다. 이들 사이에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미희는 점점 혼란스러워진다.

만신(박준면)과 최신부(옥택연)의 도움을 받아 맞닥뜨린 이들의 진짜 정체에 미희는 아연실색한다. 게다가 이들과 얽힐 수밖에 없는 자신의 운명에 절규하고 눈물 흘린다. 그렇게 과거 따뜻하고 익숙했던 집은 이후 완벽하게 낯선 공간으로 재탄생한다. 적산가옥(일제 강점기 우리나라에 있었던 일본인의 집)이 주는 이질감까지 더해져 미스터리함은 배가된다.

배경은 곧 해당 작품만이 형성할 수 있는 특별한 세계관이 될 수 있다. 극 중 ‘운명적 설정’을 삽입함으로써 전혀 말이 안 될 것 같은 상황에 설득력이 가해지는 것. ‘미녀와 야수’, ‘시간위의 집’처럼 ‘집’이 안락하기만 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전혀 새로운 모습을 드러낼 때 극적 쾌감이 형성된다. ‘미녀와 야수’가 단순 판타지로 그치지 않고 벨과 야수의 사랑을, ‘시간위의 집’에는 장르적 공포만 형성할 뿐 아니라 모성애의 감동까지 이끌어냈다. 앞으로의 작품들에서 ‘살아있는 집’은 어떤 형태와 이야기를 도출할지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서경스타 한해선기자 sestar@sedaily.com

한해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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