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한국 경제 ‘대차대조표 위기’

FORTUNE'S EXPERT | 윤창현의 ‘글로벌 전망대'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2017년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최근 우리나라 경제가 위기를 맞을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심심찮게 나돌고 있다. 이른바 ‘4월 위기설’의 근저에는 부동산·가계부채·자영업 문제가 밀접하게 얽혀 있는 우리나라 가계의 취약성이 도사리고 있다.

최근 한국 경제가 ‘4월 위기’를 맞을지도 모른다는 설(說)이 등장하고 있다. 위기설이 유포되면 실제로 위기는 오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닥쳐올 위기에 대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위기설이 나오고 있는 이유 중 하나로 일본식 ‘대차대조표 위기’ 가능성이 가장 무게있게 다가오고 있다.
대차대조표는 자산과 부채 그리고 자기자본으로 이루어진 재무제표 중 하나이다. 기업들이 작성해 발표하는데, 가계의 경우도 얼마든지 작성이 가능하다. 우리나라 가계 2만 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하는 가계금융동향에 따르면, 2016년 말 우리나라 가계의 자산 평균치는 3억 6,100만 원 정도이고 부채 평균치는 6,600만 원 정도이다. 우리나라 가계의 자산 평균치에서 부채 평균치를 빼면 순자산 평균치는 약 3억 원(2억9,500만 원)이다.
빚보다 자산이 많다는 것은 다행인데, 가계자산의 구성을 보면 약 70%가 부동산으로 되어 있고 금융자산은 20% 정도, 기타 10%이다. 그런데 부동산 70%를 다시 들여다보면 자신이 거주하는 주택이 약 40%, 다른 부동산이 약 30%이다. 자산이 부채보다는 많지만 대부분 부동산이라는 점이 문제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경제에서 부동산의 역할은 매우 미묘하다.


사실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오르면 무주택자들이 전세나 월세 인상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다. 반대로 가격이 떨어지는 경우 부동산 보유자들이 고통을 받는다. 딜레마적 상황이 나타나는 것이다. 부동산이 가계자산의 7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가계는 은행 등 금융기관에 상당한 부채를 지고 있다. 우리나라 가계부채 규모는 1,300조 원에 달한다. 그런데 부동산 가격의 하락은 가계자산의 가치를 떨어뜨리 는데, 부채는 그대로 유지되므로 빚을 내서 부동산을 사들인 가계의 대출 부실화 가능성이 높아진다. 부동산 가격 하락이 담보로서의 부동산 가치를 떨어뜨리게 되므로 부동산 담보대출을 제공한 은행들은 해당 대출에 대한 회수에 나서게 된다. 부동산 가격이 떨어져서 거래 자체가 줄어든 상황에서 회수 요구를 받은 가계가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경우 결국 대출 부실로 인해 부동산이 압류되는 경우가 많아진다.
대차대조표 위기는 여기서 출발한다. 부동산을 매개로 가계와 금융기관은 밀접하게 얽혀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고리가 형성된다. 부동산 가격 하락 → 가계자산 가치 하락 → 부실대출 증가 → 압류 부동산 증가 → 경매 처분 증가 → 부동산 가격 추가 하락. 이것이 바로 부동산을 매개로 한 대차대조표 위기의 진행 메커니즘이다. 부동산 가격 하락이 가계와 금융기관의 대차대조표를 동시에 악화시키는 것이다. 가계의 자산은 부동산이고 금융기관의 자산은 대출이다. 부동산 가격 하락이 대출 부실화로 이어지면서 두 경제주체가 모두 곤경에 빠지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 경제에는 자영업이라는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 2016년 말 기준 우리나라 자영업자는 540만 명 정도이고 무급 가족 종사자 100만여 명을 합치면 약 640만 명이 자영업으로 분류된다. 우리나라 취업자 숫자가 약 2,600만 명(2,587만 명) 정도이므로 취업자 중자영업자의 비율은 25%나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그리스 다음으로 높은 수치이다. 그런데 이들 자영업자들은 자신의 사업을 위해 빚을 상당 부분 조달하여 영업하고 있다. 우선 자영업자들은 가계부채를 통해 350조 원 정도를 조달하여 영업활동에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기업 대출 즉, 소상공인 대출을 이용하여 300조 원 정도를 조달하여 영업에 사용하고 있다. 자영업자 부채 규모가 대략 650조 원에 달하는 것이다. 물론 영업이 잘 되는 경우 부채를 잘 상환하고 이익을 낼 수도 있지만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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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지난해 9월부터 실시된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이 자영업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의 시행과 함께 회식의 횟수와 지출 규모가 동시에 감소하고 있다. 식당의 매출 감소는 음식 재료를 공급하는 농·수·축산업의 매출도 줄이고 있다. 취임, 승진 등의 축하 선물로 애용되던 난초 화분의 경우 매출이 거의 반 토막 난 것으로 보인다. 반(反) 부패 정책이 엉뚱하게도 사회적 약자들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이 법이 시행된 지 6개월이 되면서 한계상황에 이르는 업체들이 많아지고 있고, 이들이 못 견디고 쓰러지면서 부실 대출의 증가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자영업자들이 힘들어지면서 부채를 못 갚는 경우 압류 부동산 증가 → 경매 물건 증가 → 부동산 가격 하락 → 실물경기 추가 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될 수도 있다. 더군다나 자영업자들이 영업을 위해 임대한 건물의 경우 소유주가 해당 건물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건물을 매입한 경우가 많다. 건물주들이 보유한 대출에 대해 임차인이 납부하는 임대료를 가지고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영업이 몰락하는 경우 임대업자들의 부채가 부실화될 수도 있다.
자영업, 부동산, 가계부채가 서로 단단하게 연결된 상황에서 자산이 줄어든 가계는 소비를 줄이고 이로 인해 기업 매출까지 줄어든다. 그러면 기업은 투자와 고용을 줄이게 되고, 그 결과 실업이 증가하고 과잉설비가 발생하면서 실물경제에 엄청난 충격이 온다. 자산과 부채에서 시작된 위기가 소득과 매출로 전이되면서 실물경제 전반을 강타하게 되는 것이다.

‘대차대조표 위기’는 금융 부문에서 시작해 실물 부문으로 전이되면서 경제 전반으로 크게 확산된다. 그렇지 않아도 부동산 시장 자체의 공급과잉으로 인한 가격 하락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터에, 자영업과 가계부채가 기름을 붓는 형국이 나타나는 것이다.
올해 정부의 경제정책은 대차대조표 위기를 차단하고 그 가능성을 최소화시키는 데에 집중되어야 한다. 특히 부동산 부문의 가격 폭락을 막기 위한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모두 이 부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위기 방지에 성공하는 경우 다시 회복의 기회를 엿볼 수 있다. 조심스럽고 신중한 정책적 조치가 필요하다.



윤창현 교수는…
▲1960년 충북 청주▲1979년 대전고 ▲1984년 서울대 물리학과 ▲1986년 서울대 경제학과 ▲1993년 미 시카고대 경제학박사 ▲1993~1994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 ▲1995~2005년 명지대 경영무역학부 교수 ▲2005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2012년~2015 한국금융연구원장 ▲현 서울시립대경영학부 교수 ▲현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

서울경제포춘코리아 편집부 / 글 윤창현 교수

윤창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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