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정책

'대우조선' 격정 토로한 이동걸 산은 회장

"내 명예 지키자고 59조 날려야하나

3주 동안 잠 못자 국민연금 믿는다"

"대우조선 문제는 국가재난 수준...

국민연금도 '손실 최소화'가 답"

대우조선이 문 닫으면 20만 가족 생존 위협

상반기 수주 18억달러 가능…지금 터널 끝에 있을 뿐

1일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대우조선 추가 지원방안 설명회에 참석한 이동걸 산은지주회장이 기자들의 한진해운과의 형편성 문제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다./이호재기자.


지난달 24일 대우조선해양 추가 지원 발표 이후 3주 만인 13일 만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초췌해 보였다. 밤늦게까지 이어진 국정감사에서도 항상 정정한 모습으로 노익장을 과시하던 평소 모습과는 달랐다. 큰 키와 마른 체형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고민의 깊이가 그만큼 깊었던 것일까.

“지금의 대우조선해양 문제는 ‘국가재난’ 수준의 상황입니다. 지역경제는 물론 우리나라의 미래 조선산업 경쟁력이 여기(대우조선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불필요한 구설에 오를 수 있어 그동안 언론접촉을 피해온 이 회장을 서울경제신문이 이날 만났다. 이 회장은 1시간 넘게 대우조선을 살려야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하며 격정 토로했다.

이 회장은 대우조선 문제를 ‘국가재난’이라고 표현했다. 단순한 한 기업의 생사를 넘어 인재 유출로 인한 우리나라의 산업 경쟁력 등이 총체적으로 섞인 문제라는 판단에서다. 이 회장은 “협력 기자재 업체만도 1,300여개에 이르는데 대우조선이 문을 닫게 되면 이 가운데 3분의1 가량이 함께 문을 닫게 되고 경제가 휘청거리게 된다”며 “특히 거제 지역에서 근무하는 대우조선 직원과 협력업체 직원 5만명, 4인 가족까지 20만 가족의 생존이 위협을 받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대우조선이 없어지면 결국 나머지 빅2가 잘될 거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전혀 아니다”라며 “대우조선 협력업체도 함께 도산하기 때문에 이 업체들과 생태계를 유지하는 빅2로서도 대우조선과의 공존이 유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이어 “당장 예상되는 부실이 59조원인데 정상화 계획을 통해 채무를 조정하고 신규 지원에 나서 2년만 지나도 손실액을 27조원 줄일 수 있다”며 “정상화 노력은 국가재난을 앞두고 해야만 하는 책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대우조선에 대한 추가 지원은 없다던 약속을 어겨가며 다시 추가 지원을 결정하기까지 3주 동안 한숨도 자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대우조선 위기설이 불거질 때마다 추가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수차례 이야기했다”며 “이 원칙을 깨는 게 맞느냐는 문제를 놓고 3주간 고민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내 명예를 지키기 위해 59조원을 수포로 만드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생각이 미친 후 정상화 계획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며 “결론은 대승적으로 국가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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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권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난이다. 이 회장은 이에 “지금은 대우조선 터널의 끝에 있을 뿐”이라고 선을 그은 뒤 “회계법인 실사에서 올해 수주목표가 20억달러라고 했는데 3월 말까지 14억달러, 상반기에는 18억달러 달성이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이번 지원으로 수주가 정상화되면 다운사이징과 슬림화가 가능하다”며 “대우조선이 슬림한 모습이 되면 국내 업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관심을 보일 것”이라고 했다. 그는 “현재도 중동 쪽에서 관심을 가지고 보는 업체가 있다”면서 말을 아꼈다.

이 회장은 언론의 시각과 달리 국민연금과 각을 세우지도 않았고 비난하지도 않았다. 그의 성품답게 상대방의 입장도 이해한다고 운을 뗀 뒤 말을 이었다. 그는 그가 3주간을 뜬눈으로 새우며 고민했듯이 국민연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했다. 이 회장은 “국민연금 입장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지금의 순간이 고통스러울 것”이라며 “하지만 국민연금 역시 금융을 잘 이해하는 공적 기관으로 손실을 최소화해야 할 의무가 있는 만큼 정답은 이미 나와 있다”고 협조를 당부했다. 그는 “(국민연금이 합리적인 결정을 하리라) 국민연금을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에 나오는 것처럼 국민연금과 기 싸움을 할 것이었으면 처음부터 사채권자도 은행과 마찬가지로 80% 출자전환 카드를 제시했지 왜 50% 출자전환, 3년 상환유예로 훨씬 덜한 카드를 얘기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국민연금이 부르면 바로 만날 것”이라면서 오는 17일 사채권자 집회 전 언제든지 협상 테이블에 앉을 용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민연금 역시 ‘대의’를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며 희망의 끈을 놓지도 않았다.

실사보고서 내용이 부족하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우리나라 빅4 회계법인인 삼정KPMG에서 1월부터 3개월간 만든 실사보고서이며 실사보고서로 줄 수 있는 완결판을 제공했다”면서 “대우조선의 계속기업가치에 의문이 든다고 하는데 그러면 어떻게 경영진과 노사가 쓰러질 회사를 위해 일절 분규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연봉을 반납하며 지분의 절반가량을 외국인이 들고 있는 시중은행이 출자전환에 동의할 수 있었겠냐”고 선을 그었다.

그는 “국민연금 등에서 말하는 재실사 실시 등을 들어줄 수 없는 것은 4월 말이 대우조선 지원의 마지막 골든타임이기 때문”이라고 밝힌 뒤 “5월부터 수주한 배를 만들기 위해 채무를 해결해야 하는데 이를 놓치면 이미 수주한 것도 지키지 못해 공멸하게 될 것”이라며 “협상 테이블에 앉을 의사는 얼마든지 있지만 이런 얘기가 아닌 다른 얘기를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대우조선 P플랜이 가동될 경우 실제 피해는 17조원이라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그는 “금융권 채무만 23조원인데 어떻게 17조원이 되는지 묻고 싶지만 말을 아끼겠다”고 했다.

/김보리·김흥록 기자 boris@sedaily.com

김보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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