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는 내년 2월9~25일 열릴 2018 평창동계올림픽 준비로 분주하다. 한국은 이번 대회를 치르면 하계 올림픽과 FIFA 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 세계 4대 메이저 스포츠대회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게 된다. 이번 대회를 계기로 강원도는 뛰어난 자연경관과 풍부한 관광자원을 전 세계에 알리고 사계절 아시아 스포츠·관광 메카로 발돋움한다는 목표다.
전체 일정 중 설상 경기는 평창·정선·보광에서, 빙상경기는 강릉에서 치러진다. 대회에 쓰일 경기장 12곳 중 6곳이 신설됐고 모두 서로 30분 이내에 연결되는 위치에 있다. 지난해 말에는 쇼트트랙·아이스하키 등 테스트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치르며 자신감을 붙이고 있다. 특히 피겨·쇼트트랙 빙상경기장인 ‘강릉 아이스아레나’는 건물 전체를 휘감은 스크린의 화려함으로 벌써부터 관심을 끌고 있다.
■밤이면 더 화려해지는 외관
건물 휘감은 흰색 패브릭소재 인상적
조명 더해지면 형형색색 야경 압권
서울 강남에서 강릉까지는 평일 고속도로로 3시간이 채 안 걸리는 거리지만 이번에는 차량이 많지 않은데도 3시간 반을 넘겼다. 중부·영동고속도로 곳곳에서 한 차로를 막고 도로공사를 하고 있기 때문. 서울과 양양을 2시간대로 연결하는 서울~양양 고속도로와 이미 완공된 제2영동고속도로에 원주~강릉 고속철도 등 철도 교통망까지 완성되면 수도권과 1시간 거리 생활권에 들어가게 된다.
아이스아레나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경포대 해변에서 차로 5분 남짓한 거리다. 해변에서는 살짝 산에 가리지만, 세계적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가 설계한 씨마크호텔이나 경포호에서 조망할 수 있는 위치다. 경기장은 지난 겨울 몇몇 경기를 치렀다지만 아직 인근에 건물이 별로 들어서지 않은 상태였다. 건물 뒤편으로는 새로 지어진 하키센터·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과 기존 강릉종합경기장·실내체육관 등이 이어진다.
첫인상을 압도하는 것은 역시 건물 전체를 휘감고 있는 흰색 패브릭 마감재다. 눈 덮인 산봉우리,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을 떠올리게 하는 외관은 사실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선수의 점프 동작을 형상화한 것이다. 실제 경기 속 점프 장면을 분석해 얻은 유연한 곡선을 천장에 녹여낸 것. 이 같은 곡선은 경기장 내부로도 이어진다. 매표소와 안내데스크·카페 등이 위치한 2층에는 원형 복도를 따라 외부와 비슷한 조명이 은근하게 이어진다.
낮에 보는 경기장 외벽의 무게감·질감도 인상적이지만 조명이 얹어진 야경이 더 볼 만하다. 흰색 스크린 위를 흐르듯 물들이는 형형색색의 조명이 압권이다. 원래 스크린 내부에 조명을 넣어 은근하게 비치는 효과를 내려했지만 건설 과정에서 더 극적인 효과를 위해 조명을 외부로 배치했다.
디자인 설계를 총괄한 류무열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 상무는 “규모 측면에서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이 2배 가까이 크지만 경포대에서 바로 눈에 띄는 위치”라며 “역동성이 강조된 조명 디자인은 실제로 보면 더욱 화려하다”고 강조했다.
■사후 활용도 반영한 설계
가설 관중석에 튜브형태 아이스링크
올림픽 끝나면 다목적 체육시설 변신
사실 건축주인 강원도·강릉시의 주문은 간단했다. 국제적인 빙상경기장 기준에 맞는 범위 내에서 건설·운영비용을 최대한 절감할 수 있는 건물, 그리고 올림픽 이후에도 시민들이 잘 활용할 수 있는 시설이었다.
설계 단계에서부터 올림픽 후 건물 유지에 대해 논란이 있었지만 올림픽 유산으로 남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 국가대표 선수들을 위한 훈련 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고 민간에 위탁해 운영하는 것도 논의 중이다.
강원도 관계자는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나면 이 경기장을 일반 다목적 체육시설로 바꿔 강릉시가 관리하게 된다”며 “본 경기가 열리는 2층은 체육관, 지하 연습경기장은 수영장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전체 경기장 규모도 원래 설계보다는 작아졌다. 올림픽 이후 운영하기에는 강릉 인구 대비 과한 규모라는 판단에서다. 빙상 트랙을 둘러싼 관중석은 가설 형태로 설계돼 경기가 없을 때는 접을 수 있다. 트랙을 얼리는 냉동시설은 콘크리트 아래에 매립돼 필요에 따라 코트를 개조하면 다양한 스포츠경기를 치를 수 있게 했다. 지하 연습용 아이스링크는 아예 설치와 철거가 쉽도록 튜브 형태로 늘어놓는 방식이 적용됐다.
건물 외벽의 패브릭 소재를 선택한 것 역시 경제적인 고려가 있었다. 자재비와 시공비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향후 다른 건물이나 천막 등에 재활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원래는 패브릭 소재를 이중으로 덮어 건축비를 더 낮출 수 있다는 계산도 있었지만 내구성과 단열, 무엇보다 화재 등 안전문제로 설계가 변경됐다.
실시설계에 참여한 백종훈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 소장은 “천장 부분에는 곡면 아치 높낮이를 조절해 구조물의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적설량이 많은 강릉 날씨를 감안해 지붕이 눈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또 한꺼번에 눈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신경 썼다”고 말했다.
또 국제경기를 치르는 장소인 만큼 국제빙상연맹(ISU)·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의 협의도 거쳤다. ISU 전문가가 3번에 걸쳐 한국을 방문해 시설을 점검하고 설계 동선은 물론 건물의 기능적인 측면, 심판석 위치와 방송용 부스까지 모든 부분을 꼼꼼히 정리했다. 일반인과 선수·관리인원의 동선도 완전히 분리됐다. 산비탈에 위치해 관람객들은 자연스럽게 공원을 통해 본 경기장이 있는 2층으로 진입하고, 선수는 주차장 쪽에서 지하 연습장이나 대기장소로 들어가게 된다.
“이음매 없는 단면으로 피겨여왕·동계올림픽 이미지 표현”
■류무열 희림건축사사무소 상무
“눈이 덮인 것 같은 순백색 결정체, 이음매 없는 단면으로 ‘피겨여왕’ 김연아의 점프와 동계올림픽 이미지를 표현하려 했습니다. 내년 평창동계올림픽 때 중계방송을 통해 전 세계로 알려질 만한 역작을 만든다는 각오를 담았습니다.”
류무열(사진) 희림건축사사무소 상무는 무엇보다 계획설계 당시의 이미지가 큰 변경 없이 제대로 구현된 것에 큰 만족감을 표시했다. 건축주의 요구와 건물의 용도, 예산에 따라 기초 콘셉트까지도 크게 바뀌기 일쑤인 것이 통상적인 건축설계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의 경우 설비·운영 예산이 넉넉지 않아 건축주인 강원도·강릉시에서도 여러 차례 건축예산 및 사후 재활용계획에 대한 요구가 많았다. 이에 따라 건물 규모는 물론 주요 자재, 시설에 대한 설계변경도 여러 차례 진행됐다.
그가 디자인 콘셉트로 삼았던 것은 두 가지다. ‘피겨여왕’ 김연아의 점프, 다음이 동계올림픽의 이미지를 건물 외관에 담는 것. 먼저 고속촬영으로 찍은 수십 장의 사진으로 유연한 곡선을 지붕 옆면에 표현했다. 여기에 반투명한 섬유소재로 눈과 얼음이 덮인 이미지를 살렸다.
류 상무는 “섬유막 소재는 경기장 지붕 외에는 잘 쓰이지 않는데 흰 소재에 조명을 넣어 건물 외관 수평 라인의 역동성을 부각시켰다”며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준공 후 관람객들 사이에서는 스케이트 헬멧과 닮았다는 말도 나왔다고 한다”고 말했다.
실현되지 않은 아이디어도 많지만 원래 설계에는 올림픽 이후 경기장 규모 자체를 줄이거나 다양한 용도로 사후 활용하는 안이 담겼다. 국제행사 이후 활용도가 떨어진 기존 경기장의 자재를 재활용하고 지붕 구조를 강원도산 목재로 구축해 건축비용은 물론 자연 습도조절을 통해 운영비용까지 절감하는 방법도 계획됐었다.
하지만 목재 구조는 국내 건축법·소방법상 일정 규모를 넘어가는 주요 구조물, 다중 이용시설에는 적용이 어려워 아예 배제됐다. 해외 빙상경기장에는 목재 구조물이 흔히 쓰이고 유럽·일본에서는 고층빌딩에도 적용되는 소재다. 또 경기장 크기를 절반 가까이 줄이는 설계는 올림픽 후 과도한 시설 운영비용을 줄이기 위한 것이지만 리모델링 공사비용이 사실상 새로 짓는 수준이라 백지화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