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태어난 해는 1977년, 어느덧 불혹을 넘겼다. 이름도 성도 없이 그저 누군가 임시로 붙인 ‘미인도’라고 불리기 시작한 것은 세 살 무렵부터였다. 모처럼 외출을 했던 1991년 어느 날, 어머니인 줄로 알고 있던 고(故) 천경자(1924~2015) 화백으로부터 “내 자식 아니다” “제 자식 못 알아보는 부모가 어디 있나” 라는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들었다. 이후 ’친자논란’ 보다도 더 첨예한 ‘진위공방’이 벌어졌다. 뒤늦게 “내가 니 애비다”라며 나선 이도 있었으나 훗날 아니라며 번복했다. 결국 25년 만에 수장고 밖으로 나왔지만 처음 향한 곳은 검찰이었고 국내 감정가들은 물론 프랑스 과학기관까지 검증에 나섰다. 마침내 검찰은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천 화백의 유족은 이에 불복해 지난 1월 항고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천 화백의 작품으로 여겨 소장중인 일명 ‘미인도’를 소장품 특별전 ‘균열’을 통해 18일 공개했다. 1990년 기획된 ‘움직이는 미술관’전 이후 일반을 대상으로 한 공개 전시에 원본이 나오기는 27년 만에 처음이다.
미술관 과천관 제 4전시실에 걸린 ‘미인도’에는 작가명이 없다. 작품은 전시장에 나왔지만 진위논란이 아직도 뜨겁기 때문이다. 위작이라고 주장해 항고한 유족 측에서 저작권, 저작인격권, 성명표시권 등의 침해를 주장할 것을 우려한 조치로 보인다. 미술관 측은 소장품 일련번호 ‘KO-00352’와 함께 ‘작가 미상, 미인도,1977,29×26㎝,화선지에 채색’이라는 캡션으로 이 작품을 구분한다. 미술관 측은 작품과 더불어 작품의 진위공방 등에 관한 일련의 자료를 아카이브전 형식으로 함께 선보였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소장품 공개가 미술관의 의무라는 점과 미인도를 궁금해하는 국민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 작품을 공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균열’은 미인도를 비롯해 20세기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100여명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다. 19일 공식 개막한다.
이번 전시에 앞서 유족 측 공동변호인단인 배금자 변호사는 “저작권자가 아닌 사람을 저작권자로 표시하는 것은 명백한 범죄”라며 “전시를 할 경우 사자(死者) 명예훼손과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글·사진=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