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미국적인, 너무나 미국적인 푸지오 동전



1787년 4월21일, 신생 미국의 연합의회(Congress of the Confederation) 재무위원회가 동전 발행을 의결했다. 대륙회의에서 의회로 변화하는 중간 단계였던 연합의회(1781~1789)가 연방 최초의 동전 발행을 의결한 목적인 전황(錢荒) 타개. 동전 부족에 따른 물가 오름세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독립전쟁을 전후해 대륙회의는 물론 13개 주가 화폐를 남발해 화폐 가치가 크게 떨어졌음에도 동전이 부족했던 이유는 두 가지. 함량이 떨어지거나 위조 동전이 나돌았기 때문이다.


소액권 부족에 따른 노동자와 자영업자들의 불편을 해소하자는 뜻은 좋았으나 막상 동전 주조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발행 물량이 적었다. 독립전쟁 당시 프랑스가 대포 제작용으로 대륙군에게 지원한 300톤의 구리를 전용해 모두 동전으로 만들겠다던 계획과 달리 연방 동전 주조에 투입된 구리는 불과 4톤. 초기 주조량은 40만개를 밑돌았다. 잡음이 생긴 탓이다. 주조권을 따내려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뇌물이 오간다는 소문이 돌았다. 신형 주조기를 도입하기 위해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제작을 후원한 영국 실업가 매튜 볼턴과도 접촉했으나 무산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동전 부족 현상은 어떻게 됐을까. 무사히 넘어갔다. 프랑스가 대포 제작용으로 건네 준 구리는 개인업자에 불하되거나 각 주(州) 정부에 지원돼 주가 발행하는 동전 주조에 쓰였다. 연방 정부의 책임 아래 발행된 동전도 최신 설비가 아니라 압착기로 찍어내고 주조소가 여러 군데여서 모양이 조금씩 달랐다. 동전에 양각(陽刻)된 태양이나 해시계, 새겨진 문구의 위치와 방향, 내용이 제각각이다. 무게도 일정하지 않다. 9.14g에서 10.50g까지 다양하다.


현대 화폐수집상들이 분류한 종류는 25종. 당시에는 인기가 없었지만 발행 물량이 적은데다 희귀품도 있어 오늘날 수집가들에게는 오히려 관심의 대상이다. 1948년 미국 화폐상 협회가 추정한 잔여 물량은 1,641개. 오늘날 시세 역시 천차만별이다. 물량이 많고 상태가 나쁜 동전은 200달러, 반대의 경우는 8,000~3만 달러를 오간다. ‘UNITED STATES(합중국)’라는 글자가 양각된 다른 동전들과 달리 ‘AMERICAN CONGRESS(미국 의회)’라는 글자가 새겨진 동전은 단 3~4개만 남아 25만~55만 달러를 호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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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이 최초로 발행한 동전이라는 점 말고도 이 동전에는 남다른 의미가 담겨 있다. 디자인과 문구의 내용이 의미심장해 보인다. 태양과 해시계가 그려진 앞면에는 라틴어 ‘FUSIO’와 영어 ‘MIND YOUR BUSINESS’가 새겨져 있다. 각각 ‘시간이(또는 내가) 날아간다’와 ‘당신 일에 신경 쓰라’는 뜻이다. 디자인과 문구를 결정한 사람은 벤저민 프랭클린. 그는 1776년 발행한 대륙지폐에도 똑같은 디자인을 넣었을 만큼 이 디자인을 아꼈다고 한다. 평소 프랭클린이 ‘시간은 금’이라고 강조했던 점에 미루어 ‘시간을 아껴 열심히 일하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다른 해석도 있다. 신약 성서의 데살로니카전서 4장11절(‘또 너희에게 명한 것같이 종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에서 차용했다는 설과 ‘너 자신을 돌보라(Manage Yourself)’라는 그리스 격언에서 따왔다는 풀이가 상존한다. 요즘 통용되는 대로 ‘남의 일 상관 말고 네 일이나 신경 쓰라’는 뜻이 담겼다는 시각도 있다. 어떤 경우든 지극히 미국적이다. 특히 맨 나중의 경우라면 개인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인 미국 사회의 특성이 그대로 담겼다고 볼 수 있다.

뒷면에 새겨진 부조(浮彫)는 체인처럼 서로 이어진 원형 고리 13개와 ‘WE ARE ONE’이라는 문구. 신생국가로 출범한 마당에 13개주가 단합하자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적이며 정치적이다. 푸지오 동전 또는 프랭클린 동전으로 불리는 미 연방 최초 동전의 앞면과 뒷면에는 ‘각주는 연방의 일원으로 단합하고 개인들은 남의 일에 참견 말고 시간을 아껴 열심히 일하라’는 건국 1세대들의 희망 사항이 담긴 것 같다. 미국은 1793년부터 보다 큰 동전(Large Cent) 발행을 시작해 푸지오 동전을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았어도 그 안에 담긴 정신은 여전히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부러운 일이다. 미국 국가가 푸지오 동전에 새겨진 대로 ‘Mind your own business’의 진정한 의미를 성찰하고 되새기면 더욱 좋으련만.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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