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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부족한 볼리비아 '라 파스' (1)

볼리비아 라 파스에 물을 공급하는 빙하. 이 빙하가 사라져 가자 라 파스 시민들은 물을 공급받지 못하고 불안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리고 물의 지배가 시작되었다.






HIGH AND DRY 건조한 고지대
높이 뻗은 안데스 산맥,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내려온 눈부신 이른 아침 햇살이 <물 장군>의 선글래스에 부딪쳐 부서진다. 그는 볼리비아의 라 파스 좌판 시장에 차려진 용량 9500 리터 짜리 탱크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탱크 뒤에는 <물 장군>의 병사들이 서 있다. 이 곳에서 장사를 하는 여자들이 노란색 화관을 들고 줄을 서 있다. 여자들은 키가 작고 땅딸막하며, 현지인들이 좋아하는 다단 스커트 차림이다. <물 장군>이 고개를 숙이자 그의 머리 위로 꽃잎이 떨어졌다. 수많은 기자들이 시간에 맞춰 이 행사를 취재하려 왔다. 갑자기 군중 속에서 한 사람이 뛰쳐나왔다. 그는 <물 장군>과, 장군의 옆에 서 있던 이 나라의 수자원부 장관 알렉산드라 모레이라에게 소리 질렀다. “이 정도로는 충분치 않아! 당신들은 시민들을 대체 뭘로 보는 거야?” <물 장군>의 병사들이 그 사람의 양팔을 붙잡고 그를 끌고 나갔다. 그 사람은 계속 소리 질렀다. “진실을 외면하지 마!” 모레이라 장관은 그 사람의 말을 듣고 움찔했다. 스키니진과 군청색 블라우스를 입은 모레이라 장관은 이런 큰 일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젊어 보였다.

해발 고도 약 3,600m의 라 파스가 위치한 열대 고지대는 그 어느 곳보다도 기후 변화의 영향이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과거 이 도시에 물을 공급해 주던 빙하가 줄어들고 있다. 매년 11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빙하를 보충해주던 비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초, 연방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그리고 그날 밤 정부 당국은 도시의 94개 구역에 단수를 선포했다. 이로서 약 80만 명의 라파스 인구 중 약 절반이 아무 예고 없이 순식간에 물 부족 사태를 겪게 되었다.

정부는 방송을 통해 하루 내로 다시 물이 공급될 거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시위를 벌였다. 정부는 그래서 <시스테르나>를 운용했다. <시스테르나>는 물을 싣고 다니는 수도 트럭이다. 이 트럭으로 거리마다 물을 배급했으나 배급량은 줄어들었다. 현지 수도국 직원들과의 소란스러운 회의에서 현지 주민들이 수 시간 동안 계속 질문 공세를 퍼부어 수도국 직원들을 아무 곳도 가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연방 정부는 일명 <물 장군>인 마리오 엔리케 페이난도 살라스 준장을 투입, 시민들의 불안을 잠재우고 물 배급 제도를 확실히 집행하도록 했다.

그러나 수십년 간에 걸쳐 진행된 가뭄은 결코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기온이 올라가면서 한때 논밭에 물을 대던 강바닥과 호수바닥은 말라버렸다. 그 땅에서 살던 수많은 농부와 시골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라 파스의 수자원 인프라는 너무나 빈약한 수준이라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다. 상수 처리 시설이 부족하고, 저수지는 노후화되었고, 수도관은 새고 있었다.

라 파즈는 이제 물 부족 상태에 돌입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엄격한 물 배급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수개월 동안 일부 지역에서는 3일마다 단 몇 시간 동안만 수돗물이 나왔다. 그나마 1월 중순이 되자 이는 2일마다 몇 시간으로 늘어났다.


양동이 속의 물 한 방울 : 많은 시민들은 매일 군인들이 운행하는 물 트럭에서 물을 받아야 한다.양동이 속의 물 한 방울 : 많은 시민들은 매일 군인들이 운행하는 물 트럭에서 물을 받아야 한다.



수돗물이 나올 때면 사람들은 욕조, 양동이, 심지어는 쓰레기통 등 손에 잡히는 모든 용기를 들고 물을 받은 다음 음료수, 조리용수, 변기용수 등으로 사용했다. 이 수자원 위기로 인해 안 그래도 적던 볼리비아인들의 평균 물 사용량(미국인 1인당 평균 일일 물 사용량은 378 리터인데 비해 볼리비아인 1인당 평균 일일 물 사용량은 181 리터다.)은 2/3이 줄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사람들은 세탁이나 목욕 등 불필요한 물 사용을 자제했다. 그러나 수돗물이 나올 때도, 수돗물이라기보다는 소변에 더 가까운 물이 나왔다. 물에는 주황색 입자가 떠 다녔다. 수도관 속 오물과 저수지의 침전물 때문이었다. 그런 물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특히나 빈곤층들이 사는 고도가 높은 곳은 수압이 턱없이 낮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병에 든 생수를 구입해야했다. 과거 남미의 극빈곤층들에게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치 비싼 것이었다. 그들은 물장군을 의지해야 했다.

매일 아침마다 물 장군의 병사들은 113대의 <시스테르나>를 몰고 갈수록 줄어드는 저수지로 향한다. <시스테르나>에 물을 채우기 위해서다. <시스테르나> 한 대의 크기는 유조차만 하다. 그 다음 <시스테르나>는 도시에 들어와서 거리와 광장에서 물을 나눠준다. 이들이 오면 사람들은 색색의 물통들을 들고 몰려온다. <시스테르나>가 싣고 온 물이 다 떨어질 때까지 몰려온다.

이사벨 알렌데, 또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퀘즈의 소설에는 시민들의 땅이 말라가고, 콧수염이 난 장군이 시민들의 물을 장악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런 소설 내용이나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현실이나 큰 차이는 없어 보였다. 라틴 아메리카에는 언제나 현실과 비현실이 뒤섞여 있다. 물론 정부의 기량 부족도 이런 사태에 한 몫을 하기는 했다. 그러나 하룻밤 새에 순식간에 물이 사라진 것을 더 이상 볼리비아인들만의 비극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는 없다.


딜레마에 빠진 물장군 : 마리오 엔리케 페이나도 살라스 준장은 방 한칸 짜리 사령부에서 113대의 물 트럭을 지휘한다.딜레마에 빠진 물장군 : 마리오 엔리케 페이나도 살라스 준장은 방 한칸 짜리 사령부에서 113대의 물 트럭을 지휘한다.



사실, 장군들이 물을 배급하거나 물을 얻기 위해 전투를 벌이는 것은 알고 보면 그리 먼나라 일이 아니다. 미국 남서부, 중부 유럽, 중국에서도 라 파스와 같은 원인으로 가뭄이 발생하고 있다. 남북극의 빙상을 제외하면 지구에서 가장 큰 얼음은 히말라야 산맥의 빙하다. 이 빙하도 천천히 사라지고 있다. 이는 지구 인구의 1/6을 먹여 살리는 주요 수원이 말라가고 있다는 뜻이다.

볼리비아 사태를 볼 때, 앞으로 벌어질 일은 예측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지구 온난화가 계속되면서 세계 각지의 빙하를 유지하기에 충분한 양의 눈과 비가 내리지 않고 있다. 빙하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가면 가뭄과 물 부족이 발생할 것이다. 캐나다 앨버타 대학의 지구대기학 교수인 마틴 샤프는 이렇게 말한다. “그런 사태가 다가오고 있는데도 그에 대처하기 위한 정책개발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샤프는 빙하역학, 수리학, 기후로 인한 변화를 연구하고 있다. 그는 볼리비아, 캐나다 등 여러 나라 국가의 정책 결정자들이 과학적 연구결과 및 앞으로 다가올 변화에 대해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것에 실망하고 있다. 샤프는 각국 정부가 빨리 움직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건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차가운 반응 : 현지 관료들은 수리학자 에드손 라미레즈의 중대한 발견과 경고 내용을 11년간이나 무시했다.차가운 반응 : 현지 관료들은 수리학자 에드손 라미레즈의 중대한 발견과 경고 내용을 11년간이나 무시했다.



물 부족 문제는 결코 빠르게도 우아하게도 해결할 수 없다. 물 배급이 시작된 지 몇 주 후, 모레이라는 절반쯤 은둔한 상태였다. 지금 그녀는 수자원부 장관으로서 긴장을 풀어도 되는 상황이 아니었다. 조용한 일요일 시장에 물장군을 대동하고 나온 것은 홍보를 슬슬 재개하려는 시도였다. 그녀는 이렇게 약속했다. “문제 해결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그녀는 좋은 소식도 가져왔다.

그녀에 따르면 라 파스는 물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4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 중에는 빗물 저장 능력 증대를 위한 댐과 저수지 1개소씩 추가 건설, 그리고 시냇물을 가져오는 송수관 건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날씨가 좋지 않다.” 고 덧붙였다. 멀리 있는 갈색 산봉우리 너머를 바라보는 그녀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그녀의 말은 핵심을 찌르고 있었다. 날씨가 좋지 않다는 얘기 말이다.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편집부 / BY LESLIE KAUFMAN, PHOTOGRAPHS BY CHRISTINA HOL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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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LIE KAUF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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