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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도봉순’ 김기무, 황현동에 사투리를 입히다…“가장 나이 많은 배우 될래요”

‘힘쎈여자 도봉순’을 마치고 인터뷰에 임하는 배우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드라마에 대한 아쉬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JTBC에서 역대급 시청률을 기록하며 시청자들에게 사랑받았기 때문일까. 지난 17일 서울경제스타 사무실에서 ‘힘쎈여자 도봉순’ 종영 인터뷰를 진행한 김기무 역시 ‘힘쎈여자 도봉순’이 끝난 뒤 좋은 일만 이어지고 있다며 환한 웃음을 보였다.

JTBC 금토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은 선천적으로 어마무시한 괴력을 타고난 도봉순(박보영 분)이 세상 어디에도 본 적 없는 똘끼충만한 안민혁(박형식 분)과 정의감에 불타는 인국두(지수 분)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세 남녀의 힘겨루기 로맨스다. 김기무는 극중 백탁(임원희 분)이 이끄는 백탁파의 일원 황현동 역을 맡았다.




배우 김기무가 서경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조은정 기자배우 김기무가 서경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조은정 기자


“주위 반응이 많이 좋아졌어요. 드라마 중반 지나고 나니까 연락 안 오던 사람들에게서도 전화가 오더라고요. 돈 빌려달라고(웃음). 촬영을 워낙 재밌게 해서 금방 지나간 느낌이에요. 작년 10월 말인가, 11월부터 촬영에 들어가서 지난 11일에 끝났어요. 시간이 정말 빨리 갔죠.”

또 하나의 공통점은 배우들이 입을 모아 현장분위기를 칭찬한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배우들과 제작진의 사이가 화기애애했기에 드라마가 순탄히 완성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시청률이 잘나오게 되니 현장 분위기도 다시 좋은 영향을 받게 됐다. 바람직한 루틴이다.

“사실 이런 거에 흔들리면 안 되는데. 원래 현장 초반에는 방송이 시작되기 전이니까 되게 즐겁게 가요. 그러다가 방송되면서 시청률이 나오는 시점부터 분위기가 조금 달라져요. 기대했던 것만큼 나오면 훈훈하게 가는데 그만큼 안 나오면 전체적으로 예민해질 수밖에 없죠. 그러면 현장이 힘들어지는 거고요. 이번 촬영 때는 이렇게 편한 곳이 있나 싶을 정도로 좋았어요. 일단 인상 쓰고 있는 사람이 없었죠. 누구하나 예민한 사람이 없으니까 뭐만 해도 터지더라고요. 별로 안 웃긴 애드리브를 해도 다들 빵빵 터졌죠.”

현장 분위기가 좋은 만큼 배우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특히 백탁파가 출연하는 장면은 애드리브가 아닌 상황이 없을 정도로 다들 열성적이었다고. 김기무에 따르면 좋은 의미로 전쟁터 같았단다. 대본에 쓰인 대사만 외운다고 되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다 고려해야 했다. 임원희, 김민교, 김원해 모두 이름부터 포스 느껴지는 연기의 神이 아닌가. 작품에서 이미지와 현장에서 모습은 전혀 달랐다.

“선배님들이 방송에서는 굉장히 밝고 깨방정 느낌이시잖아요. 현장에서는 절대 안 그러세요. 되게 날카로우시죠. 못된 의미가 아니라, 집중력이 좋고 프로다우시다는 의미에요. 누구 한 명이 어떤 애드리브를 만들어 오면, 나머지 세 명이서 절대 놓치지 않아요. 감독님도 그런 것들을 철저하게 반영해주셨고요. 실제 방송 나간 것 중에는 대본에 없는 상황이 더 많은 것 같아요. 많이 배웠죠. 어쨌든 저도 살아남아야 되잖아요? 형들이 하는 거 눈치 보면서 뭐라도 해야겠다고 준비해갔어요. 형들도 새로운 걸 하기 전에 꼭 이야기 해주셨어요. ‘이렇게 할 거니까 준비해라’ 하시면 맞춰서 했죠. 호흡이 정말 좋았습니다.”

쟁쟁한 선배들 사이에서 열심히 합을 맞춘 김기무도 예사 배우는 아니었다. 애초 백탁파에 몸을 담게 된 것부터 본인의 ‘애드리브’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자리에 앉아 주는 배역만 받았다면 본인을 어필할 기회는 영영 오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대본 리딩 전날, 그리고 대본 리딩 당일 날, 단 이틀의 시간 동안 김기무는 온 힘을 쏟아 부었다. 황현동을 맡기 위해.

배우 김기무가 서경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조은정 기자배우 김기무가 서경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조은정 기자


“원래 저는 강력 3반 불곰 역으로 캐스팅 됐어요. 그런데 전체 대본 리딩하기 전날 오후 11시쯤 연출부에서 전화가 온 거예요. 백탁파에 황현동이라고 있는데 아직 캐스팅이 안 돼서 대본 읽을 사람이 없다고요. 혹시 준비해서 그것도 읽어줄 수 있냐고 했죠. 그래서 제가 캐스팅 안 된 역할을 저한테 다 알려달라고 해서 다 준비해갔어요. 그 중에서 황현동이 제일 욕심나서 전라도 사투리를 만들어 갔어요. 거의 밤을 샜어요. 다음 날 황현동 대사를 전라도 사투리로 차지게 했더니 감독님과 작가님이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리딩이 끝나고 전체 회식을 했는데 감독님이 불곰보다 황현동 역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대본에는 있지도 않은 사투리를 스스로 만들어갔다. 서울 사람이고, 예전에 한 번 사투리로 공연 한 거 외에는 경험이 없었지만 동영상을 보면서 열심히 사투리를 공부했다. 이렇게까지 노력하며 황현동을 맡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분량이 가장 많았기 때문. 사람 좋게 웃으며 ‘분량 때문’이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연기에 대한 아주 순수한 욕심이 느껴졌다. 두 번째 이유는 함께 연기를 하는 사람들, 김원해, 임원희, 김민교와 같은 그룹이라니까 욕심이 났다고. 또한 황현동 캐릭터 자체에도 흥미가 있었다. 그동안 맡았던 역할이 나름 진지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웃긴 역할을 해보고 싶었다.


“저희가 기본적으로는 허당들이에요. 특히 황현동은 도봉순 머리카락도 못 만져보는 인물이에요. 거의 당하죠. 박보영씨가 정말 고생을 많이 했어요. 혼자서 30명 씩 때려눕혀야 되니까요. 저희는 맞고 쓰러지면 끝인데, 박보영 씨는 이틀 내내 서서 액션신을 찍어야 되잖아요. 사실 백탁파는 별로 한 게 없어요. 한 대 맞으면 뻗고 병원 가는 게 다였죠. 박보영씨와 박형식씨가 고생을 많이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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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박보영은 인터뷰에서 자신은 그냥 툭 치면 되니까 액션신에서도 별로 고생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본인에 비해 상대 연기자는 날아가야 하니까 그분들이 더 애쓰셨다고. 김기무는 반대였다. 자기들은 별로 할 일이 없고 박보영만 고생했단다. 훈훈한 의리다. 앞서 영화 ‘황제를 위하여’를 찍을 때도 맞아서 죽었던 그는 이번에도 박보영에게 엄청 맞았다. 그러나 상대가 박보영인지라 마냥 행복했다. 손을 잡혀서 부러질 때도 어쨌든 손을 잡고 있는 것에 감사했다.

연기하는 매 순간을 열정과 긍정으로 임하는 김기무이지만 처음부터 배우를 택한 것은 아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그는 미래가 촉망되는 야구선수였다. 한화이글스에 입단해서 2년 동안 선수 생활을 하다가 26세에 그만뒀다. 영화사에서 일하셨던 아버지 덕분에 어릴 때부터 영화 감상이 취미였던 그는 어느 순간 자신에게 연기가 동경의 대상이 됐음을 느꼈다. 군대를 다녀와서 그가 먼저 한 일은 연극영화과에 입학하는 것이었다.

2008년에 대학 졸업을 하자마자 바로 연극을 시작했다. 연극 ‘Q’, ‘세일즈맨의 죽음’, 뮤지컬 ‘모차르트’ 등에 출연한 그는 2014년에는 tvN ‘삼총사’로 드라마 데뷔를 했다. tvN ‘일리 있는 사랑’(2014)에서는 엄태웅의 친구이자 수산연구소 연구관 황정구로, JTBC ‘디데이’(2015)에서는 세계 소방대회 한국 대표로 출전한 소방관 차기웅으로, OCN ‘뱀파이어 탐정’(2016)에서는 전직 의사 출신이자 타투샵 오너인 닥터황으로 열연했다. 범상치 않은 역할들이다. 김기무는 자신의 얼굴에서 이유를 찾았다.

“배우로서 제 강점은 얼굴이에요. 예전에 연기를 할 때는 잘생긴 얼굴이 부럽기도 했죠. 나이를 먹으니까 잘생기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만약에 잘생겼다면 그 사람의 연기보다는 다른 것들을 더 보게 될 텐데, 저는 그렇지 않다보니 카메라 앞이나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는데 훨씬 자유로움을 느껴요. 그리고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고요. 얼굴 덕분에 지금껏 다양한 역할을 맡아왔잖아요. 평범하지 않은 다양한 직업도 연기해봤고요.”

배우 김기무가 서경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조은정 기자배우 김기무가 서경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조은정 기자


야구를 그만두고 연기를 한지 어느덧 10년차가 됐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길을 걷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김기무처럼 한 치의 후회도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여전히 배우가 되기를 잘 선택한 것 같다며, 단 한 번도 지루한 적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연기를 시작한 후 눈을 뜨는 매일 아침이 좋단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게 축복과도 같은 일이라고.

“연기를 시작한 후 매일 매일이 좋아요. 콕 짚어서 이때가 좋았다 이런 것보다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기분이 좋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러 갈 수 있잖아요. 일하는 게 일하는 것 같지 않고 어렸을 때 놀이터 나갈 때 설렘을 느끼는 그런 기분이에요. 연기를 너무 사랑하니까요. 사실 제 얼굴이 쉽게 다가오기는 힘든 얼굴인데 사실 잘 웃고 장난도 잘 쳐요. 인사도 잘 하고. 그러다보니까 돌아오는 반응들도 행복하게 오더라고요.”

선물 같은 하루 하루를 보내는 중에도 유독 기억에 남는 날이 있다. 기쁘고 즐겁다는 감정으로는 표현이 안 되는,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벅참을 느꼈던 날. 자신의 스승인 이순재와 한 무대에 부자로 서게 된 날만큼은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다.

“이순재 선생님이 제 스승님이세요.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 그 분께 배웠어요. 이순재 선생님 60주년 기념 공연에 제가 주인공을 하게 됐어요.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인데, 선생님이 아버지 역할을 맡으시고 제가 큰아들 역할을 했죠. 마지막 장면에 큰아들이 아버지를 붙잡고 오열해요. 정말 행복했어요. 이순재 선생님은 대한민국 배우 중 한 획을 그으신 분인데 그 분이 6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같이 숨을 쉬고 있잖아요. 연기를 하면서 제 자신이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감동적이었죠.”

그날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바래기는커녕, 더욱 선명히 색을 더하며 가슴 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김기무가 앞으로도 연기를 이어 나가는데 가장 큰 원동력이 되도록. 지금 어떤 역할을 하라고 해도 기쁘게 임할 자신이 있다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은 또 다른 법 아닌가. 그는 ‘진짜 악역’이 탐난다며 수줍게 소망을 나타냈다. 배우들 사이 악역 유행이 부나 싶을 정도로 악역 인기가 어마어마하다. 김기무는 특히 영화 ‘악마를 보았다’에서 최민식 같은 연기를 해보고 싶단다. 기존에 있던 악인들과는 다른 신선한 연기가 탐이 난다고. 그러나 최종 목표는 신선한 연기, 강렬한 연기 이런 범주가 아니다. 어느 한 색을 입는 것이 아닌, 다양한 역할을 연기하면서 꾸준히 대중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배우가 꿈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 누군가가 ‘배우들 중에 누가 제일 나이가 많지?’라고 물어보면 ‘김기무씨가 제일 많지 않나?’라는 대답이 돌아올 정도로요. 구체적으로 어떤 연기를 하는 배우, 이런 것보다 일단 그 나이까지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능력을 증명한 거라고 생각해요.”

/서경스타 양지연기자 sestar@sedaily.com

양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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