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가늠할 수 없이 여전히 모델다운 몸매를 유지한 그. 모델 출신으로 가장 성공한 한국 패션디자이너의 원조.
각종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디자이너 루비나(사진)는 지난 2월 새로 론칭한 루비나 세컨드 브랜드 ‘루트원(Route 1)’을 직접 챙기느라 요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는 “루트원은 20~30대를 겨냥했지만 프리미엄 소재와 과감한 컬러 매칭으로 40~50대 고객들의 유입도 이어지고 있다”고 귀띔해줬다. 브랜드 ‘루비나’ 출시 후 33년 만에 새로 내놓은 루트원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응은 이미 뜨겁다. 코엑스 현대, 애비뉴엘, 판교 현대, 로데오거리의 멀티숍 오프너 등에 줄줄이 팝업스토어를 연다. 홍콩과 캐나다 편집숍에서의 러브콜도 이어지고 있다.
패션 시장은 지금 무한 경쟁하고 있다. 유니클로·자라·H&M 같은 글로벌 제조·유통 일괄형(SPA) 브랜드는 물론 수입 럭셔리·컨템퍼러리 브랜드 등 웬만한 브랜드는 국내에 들어와 있다. K패션도 덩달아 많이 성장했다. 한국 신진 디자이너들은 해외 패션디자인 대회에 출전해 상도 받고 이름도 많이 알렸다. 그러나 디자이너 루비나는 “K패션이 진정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의 탄탄한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우리 브랜드는 해외에 나가려고 할 때 스폰서가 없는 경우가 많지요. 개인이 비용을 부담하기 때문에 정말 실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당장 주머니가 가벼워 좌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K뷰티·K푸드와 함께 K패션을 세계에 이식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전시 행정에 매달리는 대신 지속 가능한 사업이 되도록 지원·육성해야 합니다.”
특히 K패션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이탈리아 의류 브랜드 ‘로로피아나’의 소재처럼 정부와 민간이 합작해 우리만의 독보적인 ‘메이드 인 코리아’ 섬유를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탈리아산 섬유를 사올 경우 대량만 판매하기 때문에 접근성이 크게 떨어지고 대신 수입을 하다 보면 이중 관세로 옷 가격이 급등해 가격 경쟁력을 갖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디자이너 루비나가 자신의 브랜드를 처음 선보인 것은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0년 대학생 때 길에서 픽업돼 모델의 길로 접어든 그는 1년 만에 톱 모델로 우뚝 섰다. 모델계에 진입한 후 처음 열린 수영복 패션쇼에서 신인이던 그는 당시 런웨이에서 파격적으로 ‘디스코쇼’를 선보여 일약 스타 덤에 올랐다. 그러나 톱을 달리던 그는 곧 내려올 일만 남았다는 것을 깨닫고 평소 관심이 많던 의상 디자이너로의 전향을 결심했다.
결심이 서자 그는 보름간 두문불출하며 스케치에 전념한 후 동대문시장에서 원단을 사다가 옷을 만들었다. 출시 2년 만에 옷들이 대박을 치면서 대중성을 인정받았고 1982년 남산 하얏트호텔에서 첫 개인 쇼를 열었다. 1984년 브랜드 루비나를 정식 론칭하며 출발과 동시에 국내 대표 디자이너로 자리를 굳혔다.
그의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나올까. 그는 하늘과 허공을 보며 넋을 놓고 있을 때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한다. 사우나에서 머리를 비우고 있다가 ‘유레카’를 외칠 때도 많다. 그는 “루비나 SS컬렉션의 나뭇잎이나 꽃잎 패턴의 영감은 신호등을 기다리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 떠올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달 서울역고가공원 개장을 기념한 ‘서울365-다시 세운 패션쇼’에서 루비나 패션쇼를 선보이며 또 한 번 왕성한 활동력을 과시한다. ‘재생 재사용 친환경’ 콘셉트로 진행될 예정으로 송지호 디자이너와 함께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