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해산 브렌트유가 배럴당 50달러 밑으로 떨어지며 국제유가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합의 이전 수준으로 급락한 것은 국제적 감산 합의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가의 안정적 상승세를 더 이상 실현할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미국 셰일업계의 생산량 증가’라는 상수에 ‘리비아 내전 종식’이라는 변수가 겹치면서 원유 시장의 대표적인 벤치마크인 브렌트유 선물 가격마저 배럴당 50달러를 하회하자 이 같은 감산 무용론은 국제 시장의 표준으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현재 OPEC 주요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이란·이라크·쿠웨이트 등이 감산 연장에 긍정적인 입장을 표해 감산 기한 연장에는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감산 규모가 추가로 더해지지 않는다면 공급 과잉은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시장이 판단하고 있다는 얘기다.
우선 지난해 OPEC의 감산 합의에서 제외된 리비아에 정국 안정 가능성이 도출되면서 과잉 공급을 억제하기 위한 OPEC의 노력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미국 에너지 연구소 WTRG의 제임스 윌리엄스 이코노미스트는 “분쟁이 종식된 리비아는 몇 달 안에 (현재 산유량의 두배 규모인) 일 150만배럴에 도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더구나 리비아는 계속해서 OPEC의 감산 대상국에서 예외를 요청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미국 셰일업계도 OPEC의 공급 과잉 해소 의지를 꺾을 것이라던 우려를 실제로 옮기고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이 4일 발표한 미국의 주간 원유 생산량은 일 929만배럴로 집계되며 11주 연속 상승했다. 이는 지난 2015년 8월 이후 최대치로 미 업계가 원유 증산을 지속할 것임을 시사해주는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은 지난해 11월30일 OPEC의 감산 합의 후 국제 유가가 오르자 미국 셰일업계에 대한 투자를 조심스레 늘리고 있다. 엑손모빌·셰브런 등 글로벌 에너지업계들은 텍사스와 뉴멕시코주의 셰일오일 생산에 투자했다. 미국 엑손모빌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50달러만 버텨준다면 그럭저럭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 미국은 중동 두바이유가 장악한 아시아 시장 등에서 입지를 강화하며 최근 중국이 미국 원유의 최대 수입국으로 탈바꿈했다. 셰일업계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다는 판단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도 사실상 미국 내 증산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에 따라 OPEC의 감산 효과는 갈수록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급락한 브렌트유 가격은 OPEC의 감산합의 직전 무차별한 증산이 지속된 시점의 가격과 일치한다”며 “추가적인 감산 합의가 이뤄진다 해도 유가는 배럴당 50~55달러 사이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국제유가가 현재와 같은 상태를 유지할 경우 배럴당 50달러 이상을 넘기 힘들고 최악의 경우 30달러 후반까지 추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유명 에너지 분석가인 필 플린 프라이스퓨처스그룹 선임 애널리스트는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배럴당 38달러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