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층짜리 나지막한 건물들이 주변 고층아파트들과 대조를 이룬다. 각 건물은 사각형 대지 안에서 다양한 형태로 엇갈리게 배치돼 다채로운 길을 만들어낸다. 단지 안에 들어서면 건물 앞의 텃밭들과 곳곳에 자리 잡은 정원, 실개천이 함께 어우러져 마치 공원을 산책하는 것 같은 여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건물 1층과 옥상 테라스에서는 다양한 일상의 풍경이 드러난다. 청라국제도시 최초의 테라스하우스로 알려진 ‘청라파크자이더테라스’의 모습이다.
‘테라스하우스’의 사전적 의미는 경사진 지형을 이용해 아래층 가구의 옥상이 위층 가구의 테라스로 활용되는 계단식 구조의 공동주택이다. 아파트처럼 아래층과 위층 가구가 수직으로 이어진 청라파크자이더테라스의 구조는 그런 사전적 의미와 다르다. 청라파크자이더테라스를 설계한 창조종합건축사사무소의 양리라 건축디자인 부문 실장은 “최근의 테라스하우스는 경사지 활용 없이도 저층 가구에 테라스를 갖추는 추세”라며 “테라스하우스가 태생과는 다르게 진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저층 주거건물 장점 극대화
단차 활용해 채광 늘리고 보안도 강화
건물사이 공간들은 보행로·마당역할
지난 2016년 3월 완공된 청라파크자이더테라스는 공급면적 102~112㎡의 35개동 646가구로 구성돼 있다. 설계계획은 저층 주거건물의 장점인 쾌적성과 사회적 친교성을 극대화하고 각 가구의 안전은 강화한 도심형 중소형 타운하우스로 구성된 클러스터형 마을을 구현한다는 것이었다.
설계자는 이러한 계획을 구현하기 위해 단지 내 건물 부지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점진적으로 높아지는 ‘단차’를 조성해 활용했다. 단지의 각 건물은 지형의 단차를 따라 배치돼 1~4층 가구 모두 남향 창문에서 햇빛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단차를 통해 단지가 주변 평지와 자연스럽게 분리되면서 저층 주택의 취약점으로 꼽히는 보안이 강화됐다.
1층과 옥상에 마련된 테라스도 주거공간과 외부공간을 잇는 매개 역할을 하며 설계자의 의도를 구현하는 요소다. 양 실장은 “주택 시장에서 많은 건설사와 수요자들이 주거공간 확대를 위해 발코니를 없애면서 발코니 공간의 순기능이 사라지는 추세지만 테라스하우스에서는 주거공간이 테라스로 확장되면서 가능한 행위의 범주가 훨씬 넓어진다”고 설명했다.
단지 내부에서 혈관처럼 다양한 폭과 방향으로 이어지는 건물들 사이의 공간은 보행로면서 일상을 담아내는 선형의 마당으로 계획됐다. 이웃이 공유하는 안락한 앞마당으로 1층 테라스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삶의 노출이 이웃 간의 친밀감을 더욱 높인다는 설계자의 생각이 담겨 있다.
수요자 요구 반영한 설계
사생활 보호위해 1층 테라스에 가림막
일상생활 이루지는 공간은 전면에 배치
그러나 현실을 감안하면 모든 수요자가 그러한 설계자의 생각에 동의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국내 주택시장은 대규모 고층아파트단지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수요자들이 주거공간 선택에서 고려하는 요소는 공동체 생활보다 사생활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테라스하우스에서 이웃 간의 친밀감을 높이기 위한 장치가 사생활을 침해하는 요소로 여겨질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이에 양 실장은 단지 내에 도입된 각종 보안설비들과 별도로 사생활 보호를 위한 장치들을 설계했다.
1층 테라스는 지면에서 약간 띄워져 있고 나무 소재의 가림막으로 둘러싸여 외부와 내부 영역이 구분된다. 각 가구에서는 일상생활이 주로 이뤄지는 공간들이 전면에 배치돼 있고 후면에는 주방이 자리 잡고 있다. 후면에서 외부로 통하는 창의 크기는 가급적 작게 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건물들 사이의 좁은 간격을 고려해 수요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선택이다.
양 실장은 “공동주택은 말 그대로 여러 사람이 함께 사는 공간이지만 수요자들이 사생활 보호를 중시하고 공급자인 건설사는 그러한 수요에 맞춘 공간을 제공한다”며 “설계 과정에서 테라스하우스에도 일반아파트와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수요자가 많다는 점을 고민했다”고 전했다. 여러 유형의 공동주택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아파트 대부분은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이웃과의 접촉이 최소화된 구조라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테라스하우스는 청라국제도시·김포한강신도시·광교신도시 등 수도권 택지개발지구를 중심으로 늘어나는 추세지만 아직 국내 주택시장에서의 위상은 ‘틈새상품’ 수준으로 평가된다. 양 실장은 이러한 상황이 오히려 테라스하우스의 가치를 돋보이게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테라스가 갖춰진 저층 공동주택의 희소성에 수요자들이 주목하고 있으며 이러한 테라스하우스는 대규모 고층아파트단지 중심의 주거문화에 다양성을 더해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쾌적+편리”...테라스하우스, 신주거공간으로 뜬다
청라파크자이더테라스 102P㎡ 경쟁률 56대1
다른 대형 건설사들도 잇따라 공급 나서
‘테라스하우스’는 단독주택의 쾌적한 환경과 다양한 부대시설이 갖춰진 아파트단지의 편리함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주거공간으로 국내 주택 시장에서 주목 받고 있다.
GS건설이 청라국제도시 최초의 테라스하우스로 지난 2015년 3월 분양한 청라파크자이더테라스는 청약 접수 결과 평균 9.4대1의 경쟁률로 1순위 접수가 마감됐다. 테라스와 복층 구조가 도입된 4층의 공급면적 102P㎡ 타입의 경우 청약 경쟁률은 56대1에 달했다. 당시 청라국제도시에서 분양한 아파트 단지들 중 분양이 완료되지 않은 미분양 단지가 속출했던 상황을 감안하면 성공을 거둔 셈이다.
청라파크자이더테라스의 경우 저층 테라스하우스의 장점을 살리면서 건물 부지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점진적으로 높아지는 단차를 활용해 채광을 개선한 특징 외에도 엘리베이터 및 지하주차장, 근린생활시설(상가)과 같은 아파트단지의 생활 편의성까지 갖춘 것이 분양 성공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다른 대형 건설사들도 점차 테라스 가구의 비중을 높인 공동주택을 주택시장에 선보이는 추세다. 과거 공동주택 단지 내에서 펜트하우스 같은 일부 가구에만 테라스가 제한적으로 공급됐던 것과 달리 테라스하우스로 분류될 수 있는 공동주택이 잇따라 생겨나고 있다.
대림산업은 2015년 12월 위례신도시에서 기업형 임대주택(뉴스테이) 최초의 테라스하우스인 e편한세상테라스위례를 공급해 올해 말 입주가 진행될 예정이다. 지하1층~지상4층, 15개 동, 360가구 규모인 e편한세상테라스위례에는 300가구에 테라스가 갖춰져 있다. 이 단지는 특화설계와 함께 공원과 녹지로 둘러싸여 있는 쾌적한 주거환경이 장점으로 꼽힌다.
대규모 고층아파트단지가 대세인 국내 주택시장에서 대형 건설사들이 이처럼 테라스 가구의 비중을 높인 공동주택을 선보이고 있는 것은 주거공간에 대한 수요의 다양화가 반영된 결과로 평가된다. 이와 관련해 청라파크자이더테라스의 설계자인 창조종합건축사사무소의 양리라 건축디자인부문 실장은 “역세권보다는 전원환경이 갖춰진 ‘숲세권’을 찾는 탈중심형 수요층과 함께 가정에서 다양한 여가활동을 즐기는 ‘스테이케이션(staycation)’의 트렌드가 확대되면서 쾌적한 주거환경을 누릴 수 있는 저층 테라스하우스의 매력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전형적인 도심 공동주택에 테라스가 적용된 사례도 등장할 예정이다. 현대건설은 오는 6월 송도국제도시에서 2,784가구 모두 테라스가 갖춰진 주거형 오피스텔 힐스테이트송도더테라스를 분양할 예정이다. 현대건설이 전체 가구에 테라스를 도입한 공동주택을 선보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하4층, 지상49층, 9개 동으로 구성된 힐스테이트송도더테라스는 역세권에 위치해 있고 단지 내에는 복합상업시설도 들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