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증오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맨유(잉글랜드)와 아약스(네덜란드)의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결승이 열린 25일(한국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의 프렌즈아레나. 경기장과 주변 곳곳에서는 묵직한 메시지가 담긴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맨체스터를 위해 우승해줘” “맨유는 테러에 저항한다. 2017년 5월23일을 잊지 말자” “한 번 맨체스터 주민은 영원한 맨체스터 주민이다. 고이 잠들기를” 등의 문구가 관중석과 경기장 일대를 뒤덮었다.
이날 경기는 맨체스터 아레나 자살폭탄 테러가 일어난 후 이틀 만에 열렸다. 유럽은 물론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테러 공포에도 맨유 원정팬 9,000여 명을 포함해 4만6,000여 관중이 몰렸고 스웨덴은 자국에서 열린 공공 이벤트 사상 가장 많은 1,250명의 보안요원을 투입해 삼엄한 경비를 펼쳤다.
맨유는 올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6위에 그친 터라 다음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위해 이날 우승이 반드시 필요했던 상황. 프리미어리그에서는 4위 안에 들어야 챔스 티켓을 얻을 수 있다. 아니면 유로파를 제패해야 UEFA 주관 최고 클럽대항전인 챔스를 밟는다. 최근의 테러로 맨체스터 연고팀으로서 무거운 동기 부여도 등에 업은 맨유는 1분의 묵념 뒤 시작된 경기에서 출발부터 힘을 냈다. 전반 18분 폴 포그바의 중거리 슈팅이 수비에 맞고 굴절돼 들어가면서 1대0으로 앞서 간 맨유는 후반 3분 문전에서 몸을 날린 헨리크 미키타리안의 쐐기골로 2대0으로 이겼다. 아약스는 이날 선발 명단의 평균연령이 만 22세일 정도로 유럽대회 결승 사상 가장 어린 선수 구성으로 맞섰지만 전원이 검은색 완장을 차는 등 남다른 각오로 나선 맨유를 넘기에 역부족이었다.
포그바는 선제 결승골을 터뜨린 뒤 팔을 뻗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지난 12일 하늘로 떠나보낸 아버지를 향한 손짓이었다. 포그바는 올 시즌을 앞두고 약 1,300억원에 이르는 역대 최고 이적료로 유벤투스에서 맨유로 돌아왔지만 몸값에 비해 미미한 활약 탓에 비난 여론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는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빛나는 활약을 펼치며 맨유에 역대 다섯 번째 메이저 유럽 클럽대항전 석권 기록을 선물했다. 포그바는 “우리는 테러 희생자들을 위해 뛰었다”고 말했다.
또 올 시즌 부임한 조제 모리뉴 감독은 챔스와 유로파 우승을 각각 2회씩 이끈 최초의 감독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모리뉴는 “감독생활 중 가장 힘든 시즌이었는데 결국 내 경력 중 가장 중요한 트로피를 얻었다. 프리미어리그 2~4위를 하는 것보다 유로파 우승이 낫다”고 말했다. 그는 또 “비탄에 빠진 맨체스터의 모습을 보면서 정상적으로 경기를 준비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지만 우리의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승리가 맨체스터 주민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맨유 선수들은 경기 후 우승 메달을 목에 걸고 기념촬영을 하며 “맨체스터-우리는 하나”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펼쳐 들었다. 맨유의 오랜 라이벌이자 앙숙인 맨체스터 시티도 이날은 트위터에 맨시티와 맨유의 로고를 나란히 올리며 하나 된 맨체스터를 강조했다.
맨유 수비수 출신 필 네빌은 “나도 현역 시절 2001년 9·11 테러 당일에 유럽대항전 원정에 나간 적이 있다. 이런 시기에 경기에 나선다는 게 괴로웠겠지만 후배들은 프로였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베컴도 “스포츠경기 이상의 의미 있는 한판이었다. 맨유뿐 아니라 맨체스터와 영국에 중요한 승리였으며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맨체스터 사람들에게 작은 행복이 됐을 것”이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