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이란 '테러 보복' 예고…종파갈등 넘어 종족분쟁 치닫나

 IS배후로 美·사우디 지목

 군사개입 명분 얻은 이란

 사우디와 勢 경쟁 본격화

 수니-시아파 반목 증폭

 아랍-비아랍 대립 번질수도

이란 경찰들이 7일(현지시간) 수도 테헤란에 위치한 의회의사당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이란은 자국 정치 및 종교의 상징인 의사당과 호메이니 묘역을 각각 겨냥한 테러 공격에 대해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이 배후”라며 보복을 다짐했다.  /테헤란=신화연합뉴스이란 경찰들이 7일(현지시간) 수도 테헤란에 위치한 의회의사당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이란은 자국 정치 및 종교의 상징인 의사당과 호메이니 묘역을 각각 겨냥한 테러 공격에 대해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이 배후”라며 보복을 다짐했다. /테헤란=신화연합뉴스


이란이 지난 7일(현지시간) 수도 테헤란에서 발생한 연쇄테러의 배후로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을 지목해 ‘보복’을 예고하면서 세계의 화약고인 중동에 ‘테러 도미노’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이슬람 양대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수니파)와 이란(시아파) 간의 뿌리 깊은 갈등을 증폭시켜 본격적인 세력 경쟁에 나설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카타르 단교라는 ‘대리전’으로 촉발된 중동 갈등이 양대 분파의 핵심세력인 아랍 민족과 비아랍 민족 간 대립으로 번질 경우 이슬람권 전체에 종파·종족 분쟁의 피바람이 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란 정예 혁명수비대(IPRG)는 이날 최소 12명의 목숨을 앗아간 테헤란 연쇄테러에 대해 “테러리스트의 소행은 미국 대통령이 테러를 지원하는 중동의 반동정부(사우디) 지도자를 만난 지 일주일 뒤에 일어났다”며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가 이번 테러의 배후를 자처한 것은 그들(미국과 사우디)이 이에 개입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IPRG는 “국민을 순교자로 만든 테러리스트와 추종자들에게 복수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에 대해 아델 알주베이르 사우디 외무장관은 “어디서 발생했든 테러와 무고한 시민의 죽음을 규탄한다”면서도 “이 사건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란을 테러단체 하마스를 지원하는 세력으로 규정하며 사우디 편에 선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이란 국민에게 애도의 뜻을 표하면서도 “테러리즘을 지원하는 나라들은 스스로 만든 악의 수렁에 희생자들을 빠뜨릴 위험에 처하게 된다”며 이란에 각을 세웠다.


IS가 비디오 영상을 공개하며 자신들의 소행임을 밝혔음에도 이란이 사우디와 미국에 책임을 돌린 배경에는 이슬람계 두 종파인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근원적 갈등이 자리잡고 있다. 수니파 극단주의 세력인 IS는 율법 적용에서 보다 자유로운 시아파를 제거 대상으로 삼고 시아파가 주축인 시리아·이라크·예멘 등을 겨냥해왔다. 이에 대해 시아파 맹주 이란은 IS의 주된 자금원이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 등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여기에 이란과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 간 관계개선을 계기로 위축됐던 사우디가 트럼프 행정부와의 친선관계를 등에 업고 지역 맹주의 위상을 되찾겠다고 벼르면서 미국과 사우디가 주축이 된 상당수 중동국가들과 이란 간 대립구도가 뚜렷해지고 있다. 실제 사우디는 이란 공격에 앞서 같은 수니파이면서도 이란에 대해 ‘중립외교’를 펴온 카타르와의 단교를 선언하며 지역 수니파 국가들이 대거 카타르에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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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언론들은 이란 테러와 카타르 단교를 계기로 중동 분쟁이 또 다른 차원에 들어섰다고 평가했다. IS가 최초로 이란 테러의 배후를 자처하면서 이란이 레바논·시리아·이라크로 이어지는 ‘시아파 벨트’에 자금을 지원하는 대리전에서 벗어나 직접적인 군사개입 명분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외신들은 이란이 IS를 직접 타격하거나 대테러전에 정예 특수부대인 쿠드스군을 투입하는 등 개입 강도를 높일 수 있다며 이란이 군사개입에 나설 경우 카타르 다음 타깃으로 이란을 지목한 사우디 역시 이에 상응하는 군사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분쟁 확대 우려가 산유국들의 감산 합의에 타격을 줄 가능성이 제기되며 이날 국제유가는 5% 넘는 폭락세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수니파와 시아파 간 대립은 종파갈등을 넘어 종족분쟁으로 치닫고 있다. 이들은 종교지도자 선출 문제로 분파가 나뉘었지만 민족적으로도 배경이 다르다. 사우디·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 수니 이슬람 국가는 대부분 아랍계다. 반면 이란·시리아 등 시아파 국가들은 대부분 비아랍권 민족이다. NYT에 따르면 ‘주류 수니’에서 축출된 카타르는 이번 테러를 계기로 사우디에 대한 비난에 가세할지를 고심하고 있다. 수니파지만 비아랍계인 터키도 유일하게 카타르 지지 의사를 밝히면서 이란 측의 제의로 양국 외무장관 간 카타르 단교사태에 대한 외교적 해법을 논의하며 관계개선의 장을 열기도 했다.

NYT는 금식성월인 라마단을 맞아 사우디 메카로 성지순례를 떠나는 이란 및 카타르 국민들의 모습을 전하며 “이란 테러로 팽팽했던 지역 내 힘의 균형이 깨지며 새로운 긴장감이 조성되고 있다. 이러한 갈등으로 이득을 보는 것은 늘 중동 균열의 토대를 만든 영미권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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