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그녀의_창업을_응원해] 아들 셋 엄마, 워킹맘의 가사노동 해방에 나서다

연현주 생활연구소 대표

카카오 '홈클린' 사업 중단 후

팀원과 함께 창업

워킹맘의 자유와

일하고자 하는 경단녀 매칭

반려동물, 아이, 노인돌봄으로 확대 예정

가사도우미 중개서비스 ‘청소연구소’를 운영하는 연현주 생활연구소 대표 /사진제공=연현주가사도우미 중개서비스 ‘청소연구소’를 운영하는 연현주 생활연구소 대표 /사진제공=연현주


지난해 11월 카카오는 준비하던 가사도우미 중개 O2O(Online to Offline) 홈클린 서비스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골목상권 침해 논란과 당시의 매출 적자 등 여러 복합적 요인으로 인한 결과였다. 40명에 달하는 팀원들이 낙담했고 사업을 이끌었던 연현주(사진) 청소연구소 대표(당시 카카오 신사업개발부장)도 그랬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에게 면담을 신청해 6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결정을 다시 생각해달라고 해야 하나’ 고민했다. ‘띵’하는 도착 알림과 함께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문장은 뜻밖이었다.


‘내가 창업을 해야겠다’

김 의장을 만났을 때 선언했다.

“중단하기에 너무 안타까운 서비스입니다. 제가 창업을 하겠습니다. 회사로서는 인력 손실이 생기는 일이겠지만 또 하나의 창업자가 생기는 것으로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창업을 저질렀다. 자신도 놀랐을 정도로 가사도우미 중개서비스라는 아이템이 승산이 있다고 확신했다. 카카오에서 함께 하던 팀원 다섯 명이 동참했다. 그렇게 빛을 못 볼 뻔했던 서비스가 세상에 나오게 됐다. 그 결과물이 올해 3월 공식적으로 시작된 서비스 청소연구소다.

사실 거리 곳곳을 오가다 보면 건물 2∼3층에 ‘직업소개소’, ‘파출부소개소’ 등의 간판을 달고 있는 사무실들이 가사도우미와 이를 필요로 하는 가정을 서로 연결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1970년대 초에 이미 서울시민 중 31%가 식모(食母)를 두고 있었다는 조사가 있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1985년에 이르러 당시 총무처의 지침에 따라 가정부로 용어가 바뀌어 가사도우미까지 오게 됐다. 그럼에도 왜 그에게는 꼭 해야 하는 일이었을까.



◇ ‘카카오’ 힘을 빼고 디테일을 키우다

‘가사서비스를 편하게 아웃소싱(자원이나 인력의 외부 조달)할 수 있다면….’

워킹맘으로 살아온 연 대표가 늘 꿈꾸던 일이었다. 연 대표는 ‘극한 직업’으로 불리는 아들 삼형제를 키우는 엄마로 근무강도가 높기로 유명한 정보기술(IT) 회사인 다음, 엔씨소프트, 카카오를 거쳤다. 항상 최고의 길만 걸어온 것 같지만 가사와 육아는 늘 복병이 됐다.

아이들을 돌봐주던 ‘이모님’이 갑작스럽게 그만둔다고 했을 때는 연 대표의 커리어도 휘청거렸다. 가사도우미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파출부소개소에 회원비 60만원을 냈지만 약속한 당일 가사도우미가 나타나지 않은 경우도 흔했다.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아 도우미를 바꿔달라고 요청해도 이미 인력 배치가 끝났다는 이유로 바꿔주지 않는 일도 있었다. ‘이모님’이 바뀌거나 가사도우미가 바뀔 때마다 이들과 가족의 적응을 돕고 갈등을 조율하는 건 늘 고객인 자신의 몫이었다.

“사실 서비스를 받다가도 바꾸고 싶을 때가 있는데 ‘바꾸는 비용’이 너무 커서 엄두를 못 내는 일이 태반이었어요. 일하는 여성들이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가사노동의 전문가를 쉽게 만나는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카카오에서 ‘이모티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카카오가 아직 스타트업으로 불렸던 2012년 말 합류해 이모티콘을 플랫폼화 하고 수익모델을 만드는 사업부를 맡게 됐다. 처음에 그에게 내려진 지시는 카카오톡을 많이 쓸 수 있도록 이모티콘을 무료로 하고 디자인은 외주업체에 맡기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생각이 달랐다. 이모티콘을 만드는 사람들이 여기에 팔고 팔릴수록 더 많은 돈을 벌게 되면 재미있는 이모티콘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고객들도 돈을 내게 되면 더욱 이모티콘 이용에 가치를 부여하게 될 거라고 판단했다. 이 생각은 통했다. 어피치, 프로도, 네오, 튜브 등 개성과 사연을 지닌 캐릭터들이 탄생했고 라이언의 등장으로 카카오 프렌즈가 날개를 달았다. 이제 이 캐릭터들은 이모티콘을 넘어 게임, 캐릭터 제품 등으로 재탄생하는 생명력을 얻었다.

연현주(앞줄 오른쪽 두번째) 대표가 카카오에서 톡디지털아이템 팀장을 맡았던 시절 팀원들과 회의하고 있다. 연 대표가 기획, 제작 등에 참여한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들은 현재 게임, 영상콘텐츠, 캐릭터 제품 등으로 재생산되며 카카오의 수익모델을 안정화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사진제공=연현주연현주(앞줄 오른쪽 두번째) 대표가 카카오에서 톡디지털아이템 팀장을 맡았던 시절 팀원들과 회의하고 있다. 연 대표가 기획, 제작 등에 참여한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들은 현재 게임, 영상콘텐츠, 캐릭터 제품 등으로 재생산되며 카카오의 수익모델을 안정화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사진제공=연현주


그는 자신을 비즈니스 전략가로 설명한다. 무슨 일이든 초기에 비즈니스 모델을 잘 만드는 게 중요한데 서비스를 기획할 때도 동시에 수익 모델을 구축하는 일을 동시에 하는 게 익숙하다는 설명이다. 인터넷 광고라는 게 생소하던 시절 다음에서 광고사업을 맡은 것도 그였다.

창업을 하는 데 두렵지 않았던 이유도 그가 거쳐온 회사들이 모두 성장기에 있었던 게 컸다.

“다음이 아직 한메일 서비스만 하던 2001년에 입사해 100명에서 2,000명으로 커나가던 광경을 지켜봤고 카카오도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플랫폼을 구축하는 일을 시작했을 때였어요. 작은 기업에서 큰 기업으로 갈 때 함께 비즈니스 성장 전략을 고민하는 일이 얼마나 어렵지만 재밌는지를 알아버린 특이한 케이스였죠”

초기 기업에 익숙했지만 창업을 하는 건 또 달랐다. 카카오에 소속된 일원으로써 서비스를 준비했을 때와 ‘맨땅에 헤딩’해 사업을 책임져야 했을 때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대규모 투자와 인력 투입은 포기해야 했다. 과거에는 국내외 가사 전문가 수십 명의 조언을 받아 가사 서비스 매뉴얼을 만들고 전문가가 직접 교육을 하는 형태였다면 창업을 한 뒤에는 연 대표가 직접 서비스 교육에 나서고 직접 가사도우미로 출동해 일을 해보면서 매뉴얼을 수정해 나갔다. 소비자 불만이 있을 때도 카카오라면 대규모 콜센터를 따로 운영할 수 있었겠지만 직접 팀원 다섯명이 부딪혀 해결해야 했다.

“카카오에서는 서비스에 대해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었어요. 나와서 직접 교육도 하고 매니저, 고객들과 스킨십이 늘다 보니 우리가 어떤 것들을 놓쳤는지 빠르게 인지하고 보완하게 됐어요. 시스템 정교화 수준이 몇 달 만에 레벨 1에서 레벨7까지 올라갈 수 있게 됐죠”

카카오에서 이모티콘을 기획, 운영하는 팀을 맡았을 때 연현주(앞줄 왼쪽 세번째) 대표가 팀원들과의 워크샵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팀을 이끄는 위치에서도 권위적으로 지시하기보다는 함께 일하는 실무형 리더에 속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때부터 호흡을 맞춰온 팀원이 창업할 때 합류하기도 했다. /사진제공=연현주카카오에서 이모티콘을 기획, 운영하는 팀을 맡았을 때 연현주(앞줄 왼쪽 세번째) 대표가 팀원들과의 워크샵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팀을 이끄는 위치에서도 권위적으로 지시하기보다는 함께 일하는 실무형 리더에 속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때부터 호흡을 맞춰온 팀원이 창업할 때 합류하기도 했다. /사진제공=연현주


달라진 건 또 있었다. 다음에서는 기업 인수합병(M&A) 팀장을 맡았고 엔씨소프트에서도 투자 검토를 맡았던 만큼 투자받는 데는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다. 회사에서는 현실적으로 될 만한 일들을 기한에 맞게 해내는 것만 하면 됐다면 창업가로써 투자를 이끌어내려면 보다 높은 비전을 보여줘야 했다. 말 그대로 지를 때는 질러야 하는 승부사 기질도 필요했다.


“제가 너무 현실적으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안 통하더라고요. 벤처투자자(VC) 입장에서는 조금 더 큰 꿈도 보고 싶어했던 것 같아요. 창업가로서의 모드 전환을 하면서 알을 깨는 계기가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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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지난달 카카오의 투자전문 자회사 케이큐브벤처스로부터 10억원의 투자 유치를 하기도 했다.

◇ 수많은 그녀들의 정체성을 찾아주다

청소연구소에는 ‘도우미’, ‘이모님’, ‘아주머니’ 등의 호칭은 없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은 모두 매니저로 불린다. 고객에게도 ‘매니저님이 서비스를 시작하셨습니다’, ‘매니저님이 서비스를 종료하셨습니다’ 등으로 알림 메시지를 전한다. 단순히 집에 밥하고 청소하러 오는 사람이 아니라 ‘청소 전문가’가 온다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해서다. 사명을 생활연구소로 정하고 서비스를 청소연구소로 이름 붙인 것도 모두가 매니저분들이 하나의 전문가라는 자부심을 갖게 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가사도우미를 쓰는 고객들의 니즈에 초점을 맞췄다. 고객 입장에서 누구나 어려움 없이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도 평균 이상의 가사 서비스를 하게 하겠다는 게 목표였다. 집에 반려동물, CCTV, 영유아 등이 있는지를 미리 체크하도록 해 적합한 매니저를 연결하는 데 정성을 기울였다. 또 주의사항을 세세하게 표시한 채 신청을 받기 때문에 고객이 더 이상 본인의 요구사항에 대해 신경을 쓸 필요가 없도록 했다. 연 대표가 고객의 입장에서 불편함을 느꼈던 부분들을 반영한 결과다.

창업 후 매니저들을 직접 만나고 교육하면서 매니저의 만족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장기적으로 서비스 수요자와 공급자의 관계를 단순히 갑을 관계가 아닌 서로 존중할 수 있는 관계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그 때쯤이었다.

“매니저님들을 만나고 직접 면접을 하고 교육을 거치면서 다양한 사연을 듣게 됐어요. 출산을 하거나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 고비를 넘지 못하고 일을 그만뒀는데 아이를 키우면서도 가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소일거리를 찾거나 50대 이상의 어르신들의 경우 살아가는 활력소를 찾고 싶은 분들이 많았어요. ‘돈을 안 받아도 되니까 무엇이든 하고 싶다’고 하신 분도 있을 정도에요. 사실 저희 엄마가 하셔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어요”

청소연구소에서는 고객의 무리한 요구로부터 매니저를 보호하기 위해 사전 협의가 필요한 서비스, 불가능한 서비스를 명시해 기존의 가사도우미 중개업과는 달리 서비스 제공자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 또 현대해상 보험에 가입해 매니저들이 물품 파손 시 변상에 대한 우려없이 일할 수 있게 했다. /사진제공= 연현주청소연구소에서는 고객의 무리한 요구로부터 매니저를 보호하기 위해 사전 협의가 필요한 서비스, 불가능한 서비스를 명시해 기존의 가사도우미 중개업과는 달리 서비스 제공자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 또 현대해상 보험에 가입해 매니저들이 물품 파손 시 변상에 대한 우려없이 일할 수 있게 했다. /사진제공= 연현주


그는 고객과 매니저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매니저가 힘들어하는 부분은 일 자체이기보다는 자존감에 상처를 입는 부분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는 “매니저분들이 무시당하거나 물건이 없어져 의심받을 때면 억울해서 잠도 못 주무시는 경우가 많다”며 “저희가 문제될 상황은 다 처리해 드릴테니 규격화된 일만 하시면 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서비스를 운영하다 보니 매니저에게 무거운 가구를 옮기라고 하거나 천장을 닦으라고 하는 등 무리한 요구를 하는 고객도 겪게 됐다. 기존에 인력소개소에서는 무리한 요구로부터 가사도우미를 보호해주는 일은 하지 않았다. “일단 참고 해봐. 참다 보면 나중에 고객이 알아줄 거야”라는 무책임한 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연 대표는 과감히 ‘안 된다’고 말하도록 주문하고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은 청소연구소에서 직접 진행하도록 했다.

그는 “아직 가사도우미 중개업이 발전하지 않아서 이런 요구들이 있는 것”이라며 “인터넷 설치 기사가 오셨는데 TV 고장난 것을 고쳐달라든가 다른 요구를 하지 않는데 유독 가사도우미 서비스만 ‘배고프니 밥도 차려놓고 가’ 등의 요구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 보니 고객이 가사서비스를 이용할 때 기본 업무를 명확히 설명한다. 또 반드시 ‘사전에 협의를 한 뒤 진행할 수 있는 서비스’와 ‘제공 불가능한 서비스’를 명확히 해둔다. 음식 조리 및 상 차리기, 전기제품 내부 청소, 내외부 창문 청소 등은 제공이 불가능한 서비스다. 이는 직접 요즘에도 연 대표가 2주에 한 번씩은 직접 매니저들이 하시는 일을 하면서 정한 매뉴얼이다. 인력소개소에는 있던 소개비도 없앴다. 소비자에게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자유도를 높이고 공급자에게는 부담을 줄이기 위한 차원이다. 고객이 서비스 이용료(4시간당 5만2,800원 수준)를 내면 일정 수수료를 떼는 게 수익모델이다.

그는 현재 650명 수준인 청소 담당 매니저를 올해 안에 2,000명까지 확보하는 게 목표다.

“우리나라는 정규직, 4대보험을 중시하죠. 그런데 사실 아이를 키우는 여성분들은 돈을 적게 벌더라도 내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일할 수 있는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중요시하는 경우가 많아요. 앞으로 저희들이 시간 선택제 일자리를 늘리면서 일하는 여성도 더 자유로워질 수 있고요”

◇ 워킹맘에게도 상상력이 필요하다.

워킹맘으로 세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롤모델이 되어준 어머니 윤경숙씨. 현재 한국외대 이탈리아어과 교수로 환갑을 넘은 나이에도 일하는 할머니의 모범을 보이고 있다. /사진제공=연현주워킹맘으로 세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롤모델이 되어준 어머니 윤경숙씨. 현재 한국외대 이탈리아어과 교수로 환갑을 넘은 나이에도 일하는 할머니의 모범을 보이고 있다. /사진제공=연현주


그는 스물아홉에 결혼해 초등학교 4학년 쌍둥이 형제와 네 살 차이 나는 일곱살 아들을 두고 있다. 아이 한 명도 양육하기 힘든 시대에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정도로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와 직업인으로서의 두 가지를 해내면서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 아이들을 돌봐주시는 이모님이 갑작스럽게 그만두신다고 할 때마다 둘째 아이가 아파서 입원을 했을 때도 죄책감으로 사표를 만지작거릴 수밖에 없었다. “네가 회사를 그만둔다고 아이가 낫는 게 아니다”라고 말하며 용기를 준 건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삼 남매를 키우면서도 둘째인 연 대표가 유치원생일 때 과감히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랐다. 현재 한국외대 이탈리아어과의 윤경숙 교수다. 그때 외할머니댁에 맡겨진 연 대표는 오히려 자립심을 배우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이후 육아와 일 사이에서 갈등할 때마다 ‘어머니는 여성 인권이 더 낮은 그 시대에도 일과 육아를 했는데 내가 못 할 게 뭐야’라고 자신을 다독였다.

대신 그만큼 아이들에게 ‘골든타임’은 할애해야 한다는 철칙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를 보낼 때까지 챙기는 것과 저녁에 퇴근해 7시 반부터 10시까지 아이들의 숙제를 도와주고 잠자리에 들게끔 도와주는 일은 아직도 그녀의 몫이다

그는 “저는 어머니의 사례를 보다보니 가능한 시나리오를 찾아낸 건데 그걸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들은 아예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워킹맘에게도 상상력이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4학년 쌍둥이 형제와 일곱살 막내는 연 대표에게는 늘 힘을 주는 존재다. /사진제공=연현주초등학교 4학년 쌍둥이 형제와 일곱살 막내는 연 대표에게는 늘 힘을 주는 존재다. /사진제공=연현주


그는 모든 여성들이 ‘이렇게 가사서비스를 편하게 할 수 있구나’를 느끼는 시대가 오기를 소망한다. 나아가 이를 가사 외에도 돌봄 서비스 전반으로 확대하기 위해 회사를 설립하면서 사명을 ‘생활연구소’로 정했다. 청소연구소 브랜드를 정착시키면 앞으로 반려동물, 어르신 돌봄, 아이 돌봄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할 계획이다.

“예전에 집에서 다 손세차를 했지만 이제는 집에서 세차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자체가 없지 않나요. 시간제 일자리를 많이 늘리면서 일을 하고 싶은 이들은 ‘돌봄’에서 아웃소싱을 하고 개인이 개인을 쉽게 고용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했으면 좋겠어요”

정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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