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대통령실

[시각]웜비어-박왕자씨 사망을 대하는 한미의 자세

민병권 정치부 차장





지난 2008년 7월11일 금강산 관광지구에서 우리 국민인 박왕자씨가 해변을 거닐다가 북한 초병이 쏜 흉탄에 맞고 절명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에 ‘유감’과 ‘조의’를 표명했다. 또 해당 사건을 ‘비극’으로 규정하며 재발 방지를 위해 북한에 남북 당국 간 대화에 응하라고 촉구했다. 당시 부시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시점은 박씨의 피격 사망 후 26일이나 지난 다음이었다. 그해 8월6일 한미 정상회담 자리에서 이 같은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발언 내용은 우리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나 시기상으로 보자면 다소 늦은 감이 있었다.

북한을 관광차 방문했다가 17개월간 억류된 후 혼수 상태로 풀려난 미국인 청년 오토 웜비어가 엿새 후인 19일 사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즉각 유가족에게 조전을 보냈다. 3주 이상 지나 박씨 사망 사건에 조의를 표한 부시 전 대통령에 비하면 매우 신속한 대응이었다. 청와대는 아직 억류돼 있는 한미 국민들을 가족에게 돌려보내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는 입장도 내놓았다.


웜비어와 박씨의 사망 사건을 대하는 한미의 자세를 보자면 우리 정부가 보다 적극적이고 성의껏 대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 내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북한을 향한 미국민들의 분노는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웜비어 사망 사건을 계기로 북한에 대한 강경 대응론은 한층 더 힘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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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문 대통령의 입장은 매우 난처하게 됐다. 이 와중에 평소 소신대로 제재와 압박만으로는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대화 병행을 통한 해결을 강조했다가는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움을 사듯 미국 내 여론으로부터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서도 굳이 성난 여론을 거스르며 문 대통령의 ‘대화론’에 손을 들어줄 인센티브는 많지 않다. 오히려 북한과의 대외 갈등을 활용해 미국 내 여론을 결속시켜 탄핵정국을 돌파하려고 할 유인이 더 크다.

따라서 한미 정상회담에 임하기 전 이 같은 미국 지도자 및 국민들의 심경과 정치적 상황을 청와대가 ‘역지사지’ 방식으로 통찰하고 협상 메시지를 정교하게 가다듬어야 한다. 그런 고려 없이 국내에서 발표한 입장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올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수용할 수 있는 방식과 내용으로 재가공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문 대통령이 “북한과의 대화는 미국과의 긴밀한 협의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최근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메시지를 던진 것은 매우 적절했다. 대북 문제 해법이 압박이 됐든 대화가 됐든 병진노선이 됐든 기반인 한미 동맹이 굳건해야 효력을 낼 수 있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문 대통령인 만큼 기존의 각론적 공약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보다 유연한 자세로 한미 정상회담에 임하시라. 이를 통해 양국의 신뢰를 회복하는 대승적 성과를 내기를 기대한다. /newsroom@sedaily.com



민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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