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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톡] ‘밤의 해변에서 혼자’부터 ‘그 후’까지..김민희로 뒤틀린 홍상수의 세계관

‘칸의 총아’임을 입증하듯, 이번 작품 ‘그 후’에서 홍상수 감독은 그 구미에 한껏 맞춘 기색이 역력하다. 특유의 자전성, 유머 감각은 유지하면서 매우 현학적이다. 제 70회 칸국제영화제가 그토록 경쟁부문에 부르고 싶어 한 요소가 곳곳에 깔려있다.






지금까지 홍상수의 세계관에서는 ‘남과 여’ ‘여성 찬양’ ‘사랑과 에로티시즘’ ‘일상 속 아이러니한 웃음’ ‘솔직하다 못해 유치함과 지질함’ ‘술과 담배’를 소재로 배치하며 극사실주의로 ‘자전적 이야기’를 그려왔다.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슬며시 고개를 내민 이 같은 색채는 ‘강원도의 힘’부터 ‘홍상수 장르’로 굳어져갔다.

이후 ‘오! 수정’ ‘생활의 발견’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극장전’ ‘해변의 여인’ ‘밤과 낮’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옥희의 영화’ ‘북촌방향’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우리 선희’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까지 대부분의 필모그래피에서 같은 패턴의 자가 변주를 반복해왔다.

‘홍상수’ 영화는 대중의 호불호가 극심한 편이다. 그 지질하고 솔직한 매력에 빠져든 자와 영화적 가치를 논하는 자로 나뉜다. 홍상수는 이 같은 논점을 ‘밤의 해변에서 혼자’ 영희(김민희)의 “맨날 자기 얘기만 하는 건 다들 지루해 한다”는 대사를 통해 노골적으로 꺼내 들었다. 아마 이 시기부터 홍상수의 세계관이 뒤틀리기 시작한 것 같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 영희의 물음에 상원(문성근)은 “내가 정상이 아니다. 괴물이 되가는 것 같다”며 “계속 후회가 되는 걸 어떡하냐. 그것도 자꾸 하다보면 달콤해진다. 계속 하고 싶다”고 자기고백을 했다. 러버(lover) 김민희와의 첫 작품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까지는 이전 홍상수식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그러다가 변곡점을 맞은 것은 이러한 대화가 등장한 두 사람의 두 번째 작품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다.

/사진=전원사/사진=전원사



이 영화의 개봉 시기가 하필 홍상수와 김민희의 ‘불륜설’ 제기 이후라 더욱 절묘하다. 홍상수는 ‘밤의 해변에서 혼자’부터 과거의 ‘시시콜콜함’보다는 ‘고뇌와 회한’에 사로잡혀있음이 보인다. 그러면서도 ‘그 순간의 사랑은 진실 된 것’임을 강조한다. 이번 영화 ‘그 후’에서 역시 마찬가지다. 아내 해주(조윤희)를 버젓이 두고 출판사 사장 봉완(권해효)이 출판사 직원 창숙(김새벽)과 바람을 피는 설정은 직접적이면서도 당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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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홍상수 영화가 사실적 배경에 역할의 배치를 어긋나게 하며 재미를 추구했듯, 김민희는 대중이 짐작할 만한 인물 창숙이 아닌 새로운 출판사 직원 아름 역을 맡았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해주에게 내연녀라는 오해를 받고선, 제 3자의 시선에서 봉완을 비판한다. 홍상수는 ‘밤의 해변에서 혼자’부터 자신을 비판하는 듯한 ‘대중의 시선’을 장치로 놓고 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는 영희가 묵는 호텔 베란다 창문을 닦는 의문의 남성이 등장한다. 남성이 아무리 깨끗이 닦고 있어도 영희는 그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다.

‘그 후’에서는 아름이 봉완에게 일침을 놓는다. 그리고 봉완은 이를 들으면서도 여전히 ‘사랑 타령’을 하고 뜻을 굽히지 않는다. 전작의 ‘무반응’에서 약간의 변화가 보인다. 여기에 봉완은 ‘하나님’을 언급하며 아내를 향해 “하나님을 믿지도 않는데 우리(봉완, 창숙)에게 악마를 논한다”고 비꼰다. 절대적 존재가 아니면 그 누구도 비판할 자격이 없다는 듯 속내를 피력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밤의 해변에서 혼자’ 이후로 현학적 고찰이 짙어졌다. 아름은 출근 첫 날 대뜸 봉완에게 “왜 사냐” 묻고 두 사람은 ‘실체와 허상’, ‘거짓과 진실’에 관한 이야기로 철학적 문제에 도달한다. 여기에 ‘그 후’는 갑작스런 창숙의 부재, 신입 아름의 단 하루만의 해고, 재회한 아름을 티끌의 존재만큼 기억하지 못하는 봉완을 그리며 만남과 이별의 덧없음을 밝히기도 한다. 사랑을 노래하면서도 인연의 지속성을 의심하는 이 같은 모순은 홍상수의 솔직한 세계관이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꿈틀대던 의문이 ‘그 후’로 입증됐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김민희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뉠 수 있겠다. ‘그녀’가 ‘그’에게 영감을 준 뮤즈임은 분명해 보인다. 7월 6일 국내 개봉.

/서경스타 한해선기자 sestar@sedaily.com

한해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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